편집자주
국민 10명 중 8명이 병원에서 사망하는 현실. 그러나 연명의료기술의 발달은 죽음 앞 인간의 존엄성을 무너뜨린다. 과연 우리는 어떻게 죽어야 할 것인가.
말기 암 환자에게 폐렴이 발생하여 심한 호흡곤란을 호소하는 상황에서 어떤 결정이 적절한지 94명의 말기 환자 가족과 담당 의료진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의료진과 보호자는 40%에서만 의견 일치를 보였다. 환자를 중환자실로 옮겨 인공호흡기를 적용하기를 가족들은 원했으나, 의료진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한 경우가 55%였다. 이런 상황에서 환자나 보호자는 '의료진이 알아서 결정해달라'고 하거나 '당신의 가족이라면 어떻게 할지'를 묻기도 하지만, 담당 의사도 환자의 경과를 정확히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에 그 결정을 대신하기가 어렵다.
항암치료를 받는 환자 중에는 '완치가 안 된다면 아예 어떠한 치료도 받지 않겠다'라고 하는 사람과 '아무것도 하지 않고 죽음을 기다리는 것은 견딜 수 없다. 더 이상 치료할 방법이 없다면 임상시험 중인 항암제라도 맞게 해달라'고 요구하는 다양한 생각들이 존재한다. 환자와 보호자, 의료진의 의견이 항상 일치하지 않는 이유이다. 환자를 간병하고 있는 보호자의 말만 듣고 연명의료 여부를 결정했다가 다른 가족이 제기한 법적인 문제가 종종 발생하기 때문에, 이런 결정은 환자 본인이 내리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불가피한 상황에서만 가족들의 합의로 이루어진다.
의료기술이 지속적으로 발전하면서, 신약이나 새로운 의료기기들이 진료 현장에 끊임없이 도입되고 있다. 새로운 치료법의 효용이 환자에 따라 개인차가 크기 때문에, 의사가 그 효과를 사전에 예측하는 것은 쉽지 않다. 환자에게 치료 효과가 있을 가능성이 높은 의료기술을 적용할 경우에는 대부분 의사가 결정하고 환자가 동의하는 절차를 밟는다. 그러나 치료 효과가 불확실한 신약이라면 기대되는 효능과 우려되는 부작용에 대한 정보를 의료진이 제공하고, 환자가 의료진과 함께 결정하는 방식을 권장한다.
의학기술의 발달은 과거에는 고칠 수 없던 많은 질병을 치료하여 인류의 평균 수명을 늘리는 데 성공했으나 우리를 또 다른 시험에 들게 하고 있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의료기술이 많아진다는 것은 좋은 일이기도 하지만, 의학적 효용성뿐만 아니라 사람마다 다른 가치관까지 고려해야 한다면 그 선택은 쉽지 않다. 어렵게 결정한 후에도 나쁜 결과가 초래되면 본인의 선택이 옳았던 것이었는지 끊임없이 자문하며 마음의 고통을 겪는 사람도 있다.
신생아 집중치료실에 입원한 회생 가능성이 없는 중증장애 유아의 인공호흡기 중단 과정에서 미국과 프랑스의 상황을 비교한 연구 내용을 보면, 프랑스에서는 의학적 전문성을 존중하여 의사가 결정하고 부모들이 따르는 것이 일반적인 관행이다. 그에 반해 미국에서는 인공호흡기 중단 결정 과정에 부모가 참여한다. 의료분쟁에 대한 법적 책임 문제와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는 사회문화적 영향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환자의 부모에 대한 추적조사에서, 인공호흡기 중단 결정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였던 미국의 부모들이 그 결정에 대한 죄책감에 오랜 기간 더 많이 시달리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다. 현재의 우리나라에서 연명의료 중단 결정 과정은 프랑스보다 미국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대부분 사람은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불행이 나한테는 오지 않으리라 생각하고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피하려 한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평소에 가족과 이러한 문제에 대해 충분히 대화를 나누고 본인의 의사를 분명히 밝혀두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많은 사람이 본인이 환자일 때와 부모나 자녀가 환자일 경우 다른 선택을 한다. 가끔은 나의 의견을 묻는 환자의 가족에게 되물어 본다. "본인이 환자라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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