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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동원 문제는 '고르디우스 매듭'... 꼬인 실타래 풀지 못하고 잘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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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동원 문제는 '고르디우스 매듭'... 꼬인 실타래 풀지 못하고 잘랐다

입력
2023.03.05 19:00
수정
2023.03.06 10:45
3면
0 0

피해자 배상금 지급, 우리 기업 돈으로
日측 "강제동원 불법 아니다" 되풀이
기시다 총리 김대중-오부치 선언 계승
강제동원 문제 따로 언급 없어 한계

박진(오른쪽) 외교부 장관이 지난해 9월 2일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인 이춘식 할아버지의 광주 우산동 자택을 방문해 큰절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진(오른쪽) 외교부 장관이 지난해 9월 2일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인 이춘식 할아버지의 광주 우산동 자택을 방문해 큰절하고 있다. 연합뉴스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푼 이후에..."

김성한 국가안보실장이 5일 미국 출국에 앞서 취재진의 질문에 강제동원 배상 문제를 ‘고르디우스 매듭’(애써도 풀기 어려운 매듭)에 비유했다. 해결하기 어려운 난제라는 의미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출범 채 1년도 안 돼 6일 최종해법을 발표한다. 한일관계 개선을 강조한 속도전의 결과다.

일단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직접 입장 표명을 하는 건 당초 예상을 넘어서는 성과다. 반면 피해자들이 간절히 원하던 일본 전범기업의 사과와 배상 참여는 이끌어내지 못한 것으로 파악됐다. 일본과의 꼬인 실타래를 원만히 풀었다고 자신할 수 없는 대목이다. '반쪽짜리 해법'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전범기업 쏙 빠진 배상 기금...피해자 대신 미래세대 지원으로 방향 틀어

2018년 대법원이 승소 판결을 내린 만큼 일본 강제동원 기업들은 원고 15명에게 배상을 해야 한다. 이에 한일 정부는 ①누가 돈을 내 배상금을 지급할지 ②누가, 어떤 내용을 담아 강제동원 행위에 사과할지를 놓고 줄다리기를 해왔다.

①은 '국내용'에 그쳤다. 정부 간 협상이 무색할 정도다.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국내기업이 낸 기부금으로 일본 피고기업 대신 피해자들에게 판결금을 지급할 예정이다. 소송 당사자인 일본 기업은 빠졌다. 일본 정부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전쟁 상황에서 조선인 강제동원은 불법이 아니다’라며 고집을 부렸다.

대신 양국 재계단체인 전국경제인연합회와 게이단렌(일본경제단체연합회)이 나설 전망이다. 청년들과 미래세대를 지원하기 위한 별도의 재단(기금)을 만들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자 측 소송대리인단의 임재성 변호사는 “외교부와 소통하는 과정에서 전혀 들어본 적 없는 방안”이라면서 "일본과의 협상 실패를 감추려고 본질과 관련없는 재단을 만들려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외교 일정 우선시한 결정" 판결금 수령 거부한 피해자와 소송 가능성

②는 한일 양국이 서로 주고받았다. 기시다 총리는 6일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계승한다는 입장을 밝힐 전망이다.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당시 양국 외교장관이 발표한 것에 비춰 급을 높였다. 당초 일본 관방장관이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다만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은 식민지배를 포괄적으로 사죄하는 내용일 뿐 강제동원 문제를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사죄의 수위도 2010년 간 나오토 전 총리 담화보다는 낮다.

윤석열 대통령의 정상외교 일정에 강제동원 합의를 짜맞춘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이 원하는 한일협력 복원을 위해 발표를 서둘렀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이 3월 일본, 4월 미국을 방문하는 시나리오가 유력하게 거론돼 왔다. 강제동원 민관합동협의회에 참여해온 이원덕 국민대 교수는 "4월 한미정상회담과 5월 일본 히로시마 주요7개국(G7) 정상회의 전에 협상을 마치려 한 것 같다"면서 "외교 일정을 우선한 결정이어서 국내 여론과 일부 피해자 그룹에서는 불만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외교부는 6일 발표 이후 생존 피해자와 유족에게 판결금 수령 의사를 재차 확인할 예정이다. 하지만 피해자 측 소송대리인단은 "국내기업이 돈을 내는 대위변제는 무효"라는 입장을 밝힌 터라 또 다른 법적 분쟁으로 치달을 우려도 있다.

정혜경 일제강제동원·평화연구회 대표연구위원은 “양국 정부는 이번 협상으로 문제가 끝났다고 생각하지 말고 피해자와 유족의 말에 더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대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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