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민경 지음, '새벽 4시, 살고 싶은 시간'
편집자주
'문송하다'는 말도 있지만, 그래도 마음을 풍요롭게 하는 건 인문학적 교양입니다. '문송'의 세계에서 인문학의 보루로 남은 동네책방 주인들이 독자들에게 한 권의 책을 소개합니다.
책방 운영을 시작하면서 생긴 작은 꿈은 많이 읽는 사람보다는 잘 읽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글자 그대로 눈에 보이는 의미뿐만 아니라 자간과 행간 사이에 담긴 보이지 않는 의미들을 잘 읽어내는 사람.
"너라면 이 책을 잘 읽어 줄 것 같아서"라는 메시지와 함께 책 한 권이 도착했다.
'새벽 4시, 살고 싶은 시간'. 모두가 깊은 잠에 빠져 있는 시간이 작가에겐 왜 살고 싶은 시간일까? 작가는 새벽 4시에 일어나서 무엇을 했을까? 내 취향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과 나에게 이 책을 건네준 이에 대한 믿음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며 책을 펼쳤다. 50페이지를 읽는 데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책을 읽는 동안 나는 눈물을 참고 호흡을 여러 번 가다듬어야 했다.
신민경 작가님은 2015년 유방암 발병으로 첫 수술을 했고, 2020년 초 다발성 전이와 함께 시한부 인생을 시작했다. 신 작가님의 표현을 빌려 쓰자면 "죽는 마당에 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일이 글쓰기였고 누군가에게 한 줄기 빛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자정 무렵부터 새벽까지 글을 썼다." 그에게 새벽 4시는 그야말로 살고 싶은 시간이었던 것이다.
이 책을 함께 읽은 이들 중에는 슬프고 아프고 고통스러운 삶을 마주하고 싶지 않아서 차마 끝까지 읽지 못했거나 아예 펼쳐보지 못한 사람도 있었다. 이해할 수 있었다. 또 다른 누군가는 죄책감을 느끼기도 했다. "죽어가는 누군가의 삶을 보며 살고 싶다는 욕망을 품는 게 괜찮은 걸까?"라는 질문 앞에서 잠시 숙연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책을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작가님의 삶이 희망과 행복으로 충만했던 삶이었음을 확신했다. 각자의 마음속에 무언가 힘이 생기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나도 이 책을 읽으면서 당연히 슬펐어요. 현기증이 날 정도였다니까요. 그런데 작가님이 원하는 게 바로 이거였는지도 모르겠어요. 남은 우리는 더 행복하게 살라고…"
2022년 12월 13일 출판사 SNS에 작가님이 환하게 웃고 있는 영정사진이 올라왔다. 작가님의 책을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던 사람들이 소리 없이 울었고, 작가님의 책을 다시 펼치며 애도의 시간을 가졌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할 수 없었다. 그저 '죽기 직전까지 주어진 삶을 살아내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이가 바로 당신이었음을 압니다'라고 들리지 않는 인사를 건넸을 뿐이었다.
"(프롤로그 중) 어쩌면 나는 살 것이다. 그렇다면, 세상엔 기적이란 게 분명 존재한다는 걸 믿길 바란다. 어쩌면 나는 죽을 것이다. 그땐, 죽기 직전까지 주어진 삶을 살아내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이가 있었음을 기억해 주길 바란다."
얼마 지나지 않은 2023년 음력 1월의 내 생일 아침, 또 다른 죽음이 내게 찾아왔다. 대전에서 3시간을 달려 도착한 장례식장에는 할머니의 사진이 놓여 있었고 조문객들의 상에는 미역국이 차려져 있었다. 할머니의 영정사진을 보고도 괜찮았던 나는, 미역국 상 위에 엎드려 엉엉 울었다. 이런 나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몇 차례의 통곡을 하고 나서야, 내 생일에 떠난 할머니를 나 홀로 추억할 수 있겠다는 위안에 다다를 수 있었다.
장례식장에서 집으로 돌아와 낮과 밤을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정신없이 잠을 잤다. 몸을 가눌 수 있는 상태가 되자 나는, 잘 살고 싶다,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일어나서 신민경 작가님의 책을 책장에서 꺼내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세워두었다.
"(p.192) 저는 자유가 되어 훌훌 떠납니다. / 그러니 웃으며 보내 주시길 바랍니다. / 언젠가 때가 되면 천국에서, 혹은 다음 생애나 그 어디에서든 다시 만나고 싶습니다.
부디 건강하게 잘 살아주기를. / 내가 당신 덕분에 웃으며 살았다는 걸 기억해 주기를. / 어디에 있든 당신을 응원하고 있다는 걸 의심하지 말기를.
나의 장례가 슬픔과 눈물이 아니라, / 앞으로의 당신의 건강한 삶을 위해 /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각오와 유머로 가득 채워지길 바랍니다."
"내가 당신 덕분에 삶의 의지를 다잡았습니다. 당신의 글과 마음에 감사를 표합니다. 그 어디에서든 다시 만나요. 좋은 벗이 되고 싶습니다"라고 작가님과 나의 할머니에게 짧은 인사를 건넸다.
글자가 인쇄되어 있는 종이 뭉치인 한 권의 책은 누군가에게 손으로 입으로 건네진다. 건네진 책은 행간과 자간을 잘 읽어내는 사람을 통해, 또 책방을 통해 삶을 이야기하게 하고 이어가게 하기도 한다. 오늘도, 내일도.
책방채움
- 신선영 채움지기
책방채움은 대전시 유성구 반석동에 있는 작은 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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