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장에서 빠져나온 닭이 울타리까지 쫓긴 끝에 머리를 풀에 처박는 불쌍한 모습을 보고 황당했던 기억이 있다. 앞으로 나가거나 뒤로 물러설 수도 없는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코너로 몰렸으니 아예 나는 모른다고 끝장나기만 기다릴 것인가. 아니면 온 힘을 다해 사태를 직시하고, 어떻게든 헤쳐나갈 실마리를 찾기 위해 노력할 것인가. 진퇴양난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공동체가 엄청난 시간, 인력, 재화를 낭비하는 경우가 있다. 우리 사회에서 이러한 문제 중 하나가 사용후핵연료 관리 이슈이다.
원전에서 타고 남은 사용후핵연료는 원전 시설 내 습식저장조를 거쳐 원전 부지 내 또는 별도 부지 건식저장시설에 보관하다가 지하 500m 이하의 심지층에 영구 처분하는 것이 안전한 장기 관리 방법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아직 부지 선정 절차를 시작도 못 하고 있다. 필자는 2013년 10월부터 20개월간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에 참여해 권고안을 제시한 바 있다. 사용후핵연료 문제를 미래세대에 넘겨서는 안 되며 고준위방사성폐기물 특별법을 조속히 제정해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지구온난화, 안보, 경제 등 생존 차원의 논의에서 에너지 체제는 정책 구조의 핵심이 된다. 우리의 지리적 여건, 국내외 정치적 상황에서 태양광, 풍력 등과 함께 원자력을 빼고 에너지 정책을 생각할 수 없다. 전기요금 인상이 논란이 되는 지금, 경제적인 전기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서는 원전의 계속운전과 가동률을 높여 가야 한다. 그만큼 사용후핵연료는 계속 발생할 것이며, 그로 인해 2030년 한빛, 2031년 한울원전 내 습식저장조가 포화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사용후핵연료 문제의 핵심은 가능한 한 빨리 중간저장시설과 최종 처분부지를 확보하는 것이다. 그러면 원전 내 보관된 사용후핵연료를 빼낼 수 있으므로 원전 지역이 영구 처분장으로 될 것이라는 걱정은 불식될 것이다.
사용후핵연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술적 측면을 넘어서는 입체적 접근이 있어야 한다. 민주적이고 투명한 절차에 따라 지역주민들의 협조를 받고,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다차원적 과업인 것이다. 이를 위해 국회는 입법을 통해 국민들과 사용후핵연료 문제 해결을 공식적으로 약속하고, 정부도 이를 기초로 책임감 있게 단계별 조치를 이행해 나가야 한다.
결국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의 시작은 특별법의 제정이 될 수밖에 없다. 현재 3개의 특별법안이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 발의돼 있으나 여야 간 논의는 원활하지 않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각자가 해야 할 역할을 확실히 인지하고 수행하는 것인 바, 국회가 때를 놓치지 않고 특별법 제정에 적극 나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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