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첫 삽 뜬 지 약 3년 만에 반환
미-베 포괄적 동반자 격상 10년 맞아
"한때 적이던 양국의 밝은 미래 상징"
7일 베트남 남부 호찌민에서 약 35㎞ 떨어진 동나이성 비엔호아 공군기지. 미국 국무부 산하 대외 원조기관 ‘국제개발처(USAID)’의 수장인 서맨사 파워 처장과 호앙쑤안찌엔 베트남 국방부 차관이 마주 본 채 삽을 들고 묘목 한 그루를 심었다. 갓 뿌리를 내린 나무에 함께 물을 준 뒤엔 환하게 웃으며 악수하기도 했다.
베트남전 당시 고엽제 피해 큰 비엔호아
두 사람이 서 있던 곳은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1960년대와 1970년대, 미군이 살포한 고엽제 ‘에이전트 오렌지’로 오염된 땅이다. 미국은 당시 게릴라전을 펼치던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 비정규군(베트콩) 근거지인 정글을 파괴하고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8,000만ℓ에 달하는 고엽제를 살포했다. 이때 베트남 국민 중 최소 210만, 최대 480만 명이 고엽제에 노출됐고, 그 이후엔 적어도 15만 명이 기형아로 태어났다는 게 베트남 측의 추산이다. 고엽제의 고통과 후유증은 현재진행형이라는 얘기다.
당시 최대 규모 미군 기지였던 지금의 비엔호아 공군기지에도 어마어마한 양의 고엽제가 뿌려졌다. 이후 2017년 양국 합동조사 결과, 기지 일대 토양 50만㎡가 다이옥신 등 독성 화학물질에 오염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따라 USAID를 중심으로 2019년 12월 제거 작업이 시작됐다. 10년간 3억 달러(약 4,000억 원)를 들여 오염 지역을 정화하는 게 목표다. 3년 3개월쯤이 흐른 이날, 미국 측이 오염물질 정화를 마친 일부 지역(2만9,382㎡)을 베트남 국방부에 우선 되돌려준 것이다.
”양국 관계 중요 이정표” 치켜세워
이날 파워 처장과 찌엔 차관의 기념 식수 행사는 50여년 전 서로를 향해 총부리를 겨눴던 두 나라가 적대적 유산을 청산하고 협력하는 모습을 보여준 상징적 조치 중 하나다. 베트남을 비롯한 동남아시아 지역에 부쩍 공을 들이고 있는 미국의 모습을 단적으로 드러낸 대목이기도 하다.
미국은 남중국해 패권을 장악하려는 중국을 견제·압박하기 위해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에 밀착하며 영향력을 강화하려 하고 있다. 특히 올해로 포괄적 동반자 관계 격상 10년을 맞은 베트남은 중국 견제와 동시에, 글로벌 공급망에서 핵심 역할을 하는 전략적 중요성 때문에도 미국의 주요 파트너로 여겨진다.
이 같은 분위기를 반영하듯, 이날 반환식에 참석한 미국 측 인사들의 면면도 화려했다. 과거 유엔주재 미국 대사를 지냈고, 현재 유력한 차기 세계은행 총재로 꼽히고 있는 파워 USAID 처장과 마크 내퍼 베트남 주재 미국 대사 등 40여 명이 총출동했다. 2019년 첫 삽을 뜰 당시엔 카린 매클랜드 주베트남 미국 부대사가 참석했던 것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미국 측 인사들의 발언도 의미심장했다. 내퍼 대사는 공군기지 내에 나란히 전시된 미군 전투기와 베트남군 전투기를 가리키며 “과거 서로 마주 보고 싸웠던 전투기들이 이제는 함께 한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때 전쟁을 벌였던 미국과 베트남이 협력하며 만드는 밝은 미래를 상징하는 모습”이라고 강조했다. 내퍼 대사는 또, “미국은 베트남과 1,200억 달러에 달하는 무역·투자 관계를 맺고 있고, 베트남 제1의 수출 시장”이라며 “많은 분야에서 양국 관계가 성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파워 처장 역시 이날 행사를 “양국 관계의 중요한 이정표”라고 표현했다. 그는 “두 나라는 오랜 상처를 치유할 뿐 아니라 기후, 경제 등에서 함께 미래로 가는 길을 찾고 있다”며 “(고엽제 피해지역 정화는) 미국이 베트남과 협력하는 것을 소중히 여기고, 양국 협력 관계를 심화하는 증표”라고 설명했다. 이어 “역사는 바꿀 수 없지만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 갈 수 있다”면서 “미국과 베트남은 미래의 협력을 위해 항상 손을 잡을 것”이라고도 강조했다. 미국은 비엔호아 기지 정화에 향후 7,300만 달러를 추가 지원한다는 방침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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