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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만에 소설집 낸 천운영 "뜨거움보다는 따스함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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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만에 소설집 낸 천운영 "뜨거움보다는 따스함으로"

입력
2023.03.10 04:30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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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9편 수록된 '반에 반의 반' 출간
여성 몸의 서사 마침표 찍는 소설집
'다정함' 공유한 다양한 여성들의 삶
남극·동물행동 연구 과정, 차기작으로

8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 본사에서 인터뷰를 한 천운영 작가는 "한 문장을 끝내는 느낌이 나서 뿌듯하다"고 이번 소설집 출간 소감을 밝혔다. 최주연 기자

8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 본사에서 인터뷰를 한 천운영 작가는 "한 문장을 끝내는 느낌이 나서 뿌듯하다"고 이번 소설집 출간 소감을 밝혔다. 최주연 기자

10년 만의 소설집이다. 대학 강의실에서 학생에게 "소설 쓰신 줄 몰랐다"는 얘기를 들었을 정도로 긴 공백이었다. 하지만 소설가는 "저 스스로에게는 공백은 아니었던 것 같다"고 입을 뗐다. 스페인 가정식 식당을 차려 사람들에게 밥을 해 먹이고, 남극에 빠져 다큐멘터리를 촬영하고, 생물학 공부를 하면서 언론사에 칼럼을 싣고, 문학 강의도 했다. 분주하게 보낸 그 시간, 소설가는 다정해졌고 그의 소설 역시 따뜻해졌다. "소설집을 내고 보니 알았어요. (나의)소설이 나와 같이 움직이고 있었구나. 다행이다."

다섯 번째 소설집 '반에 반의 반'으로 돌아온 소설가 천운영의 얘기다. 소설집 '엄마도 아시다시피'(2013)를 출간한 지 10년 만이다. 8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에서 만난 그는 "온도로 표현하면 데뷔 때는 뜨거우면서 차가웠다. 과격했고 전복에 가까웠다"고 돌아봤다. 2000년 등단한 그는 도발적인 서사, 금기에 도전하는 과감함 등을 높게 평가받으며 신동엽창작상, 올해의 예술가상을 받았다. "이번 작품은 보듬으면서 무언가를 말한다. 이제 (내가) 그런 상태가 된 것 같다. 뜨거움보다는 따스함"이라고 설명했다. 문학에 안달하고 몰입하던 때를 지나 약간 떨어져 지낸, 그 거리감에서 비롯한 변화다. 이번 소설집에는 같은 문제의식과 관심사도 다르게 표현하기 시작한 작가의 변화가 차곡차곡 담겨 있다.

반에 반의 반·천운영 지음·문학동네 발행·300쪽·1만5,000원

반에 반의 반·천운영 지음·문학동네 발행·300쪽·1만5,000원

소설집은 세대도 가치관도 모두 다른 여성들이 모자이크 조각처럼 모여 이룬 하나의 그림과 같다. 그들이 공유하는 색이 있다면 '다정함'이다. 혈육이 아닌 남에게도 내줄 수 있다면 베푸는 다정한 여자들, 엄마들, 할머니들이 중심에 있다.

수록작 9편 중 5편의 연결고리인 두 할머니(기길현, 순임)는 작가의 친·외조모에게 영감을 받은 인물들이다. 시아버지의 후처(순임)와 수십 년을 함께 산 할머니(기길현). 남보다 못할 수도 있는 관계지만 둘은 죽음을 앞둔 순간까지 서로에게 가장 가까운 존재다. "실제로 저희 할머니가 그렇게 사셨는데, 두 분이 헐뜯고 하면서도 한 분이 돌아가시니까 남편을 잃었을 때보다 더 크게 상심하시더라고요. 남인데 가족처럼, 아니 가족이 된 그런 이야기를 써보고 싶었어요."

엄마, 할머니의 삶 속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해 내는 작업이기도 했다. 그는 "80, 90년대 딸들은 엄마처럼 살기 싫다고 말하곤 했는데, 나이가 들면서 엄마의 삶을 함부로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단 생각을 했다"고 전했다. 그렇게 사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고, 그들의 최선이었을 수 있다는 걸 세월과 함께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됐다. '반의 반' 정도 알까 말까 하는 그 삶을 제대로 읽는 일에 애정과 상상력을 쏟아부었다.

동일한 인물이 등장하는 완벽한 연작소설은 아니다. 같은 이름의 할머니들이 등장하지만 가족관계를 잘 보면 조금씩 다르다. 그 혼란스러움은 작가의 전략이다. 그는 "어른들이 본인 살아온 얘기를 하시는 걸 들어보면, 비슷비슷하면서도 또 다른 각자의 고유함이 있다"며 "거기서 느슨한 연대를 생각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소설집도 그런 우리 주변의 삶과 닮아 있게 구성했다.

천운영 작가가 8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 본사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숲의 나무가 개별적 존재지만 뿌리로 서로 연결돼 있듯이 소설집 수록작들도 그렇게 연결되길 바랐다"고 설명했다. 최주연 기자

천운영 작가가 8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 본사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숲의 나무가 개별적 존재지만 뿌리로 서로 연결돼 있듯이 소설집 수록작들도 그렇게 연결되길 바랐다"고 설명했다. 최주연 기자

이번 소설집은 작가가 데뷔 당시부터 천착해 온 여성의 몸에 관한 서사의 '마침표'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관심사가 '생명'으로 옮겨 갔다. 2013년 처음 남극을 방문해 그 매력에 빠진 후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대학원에 진학해 동물행동학 공부까지 시작했다. 연구를 해야 남극에 다시 갈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총 세 차례 방문한 남극에서 보낸 시간은 약 9개월. 그는 "내가 태양과 연결돼 있는, 우주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처음 경험한 곳"이라고 남극을 설명했다. 석사학위 논문을 쓰기 전에 그 경험들을 담은 동화와 소설부터 쓸 계획이다.

그러고 보면 '딴짓'을 해도 결국 글이다. 일흔이 넘으면 스페인 작은 바닷가 마을에서 김밥집을 하고 싶다는 그에게 "결국 또 소설 쓸 거 아니냐"고 묻자 긍정의 웃음이 돌아왔다. "(소설 쓰기는) 근사한 일이에요. 사람을 이해하려고, 잘 들으려고 애쓰면서 많이 배워요. 계속 쓸 것 같아요." 10년을 또 기다리게 한다고 해도 그 시간을 차근차근 담아낸 다음 천운영 소설을 기대할 것 같다.

진달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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