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월급쟁이의 삶은 그저 '존버'만이 답일까요? 애환을 털어놓을 곳도, 뾰족한 해결책도 없는 막막함을 <한국일보>가 함께 위로해 드립니다. '그래도 출근'은 어쩌면 나와 똑같은 문제를 겪고 있는 노동자에게 건네는 전문가들의 조언을 담습니다.
#. 회사원 30대 김지수(가명)씨는 퇴근 후 상담 유튜버로 변신한다. 근무 시간에 하는 본업과 퇴근 후 카메라 앞에서 다루는 상담 내용은 같다. 그렇다면 업무의 연장일까. 아니다. 회사 공식 채널이 아닌 김씨의 개인 채널이기 때문. 사무실을 나서는 순간 업무에 대한 생각을 싹 지우고 싶을 법도 한데, 구태여 영상까지 만드는 이유는 "즐거워서"란다. 회사에서는 성과를 내야 하는 부담이 크지만, '부캐(부(副)+캐릭터)'로 변신해 이해 관계가 없는 구독자들에게 전문 지식을 나눠주다 보면 스스로 공부도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는 최근 채널을 중단할지 고민에 빠졌다. 유튜브 채널을 운영한다는 사실을 회사 측에서 알게 됐기 때문이다. 같은 팀 상사가 "재밌게 봤어. 편집하려면 아침에 피곤하겠던데"라며 은근히 눈치를 준 뒤로는 신경이 쓰인다는 김씨는 "퇴근 후 개인 시간에 하는 일까지 간섭하는 건 너무한 것 아니냐"고 하소연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계기로 재택 근무에 익숙해진 직장인들이 개인 시간을 활용해 'N잡러'에 도전하고 있다. N잡러는 여러 개를 뜻하는 N에 직업(job)의 영어 발음 '잡', 여기에 무엇을 하는 사람을 뜻하는 '~er'을 붙여 만든 새 말이다. 개인적 경험이나 직장 생활에서 쌓은 자신만의 노하우를 강의로 공유하는 이들도 있다. 온라인 플랫폼에서 청중을 모아 강의를 하고 쏠쏠한 수입도 올리고 있는 A씨 역시 상사로부터 "다음 학기엔 강의를 하지 말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그 상사는 "주말엔 푹 쉬어야 하는데 다른 일에 에너지를 쏟으면 능률이 떨어진다"는 이유를 댔다. 평일엔 야근이 일상이라는 그는 "강의 시간이 주말이라 업무엔 지장을 주지 않는데 괜히 회사에 강의한다고 말한 것 같다"고 토로했다.
N잡러가 되는 이유? 빠듯한 지갑사정 탓도
N잡러가 되는 이유는 비단 자아실현만이 아니다. 빠듯한 지갑 사정 탓에 어쩔 수 없이 아르바이트에 나서는 이들도 적지 않다. 계속 오르는 금리 때문에 새로 살 집을 마련하거나 현재 거주하는 집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돈 걱정이 커지는 상황 때문에 퇴근 뒤나 주말에 두 번째 일터를 찾는 이들이 늘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내놓은 '부업 근로자 추이 및 특징 분석'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1~3분기 평균) 부업을 한 사람은 54만7,000명으로 5년 전 같은 기간 평균(41만1,000명)보다 33.1%나 늘었다. 추광호 전경련 경제본부장은 "최근 고물가‧고금리 상황에서 근로시간 규제로 초과근로 수당을 받지 못해 실질 임금이 깎인 근로자들이 어쩔 수 없이 생계 전선에 내몰리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부업, 해도 법적으로 문제없을까
A씨 사례처럼 회사에서 "회사 일만 하라"고 하는 경우는 생각보다 흔하다. 월급을 주는 회사 입장에서는 근로자가 '딴 주머니'를 찬 것으로 볼 수 있어서다. 구독자 262만 명의 유튜버 '슈카월드'도 한 TV프로그램에 출연해 "유튜브를 계속하면 해고할 것인데 직접 나간다면 일반 퇴사 처리를 해준다"는 취지의 말을 회사로부터 듣고 전업 유튜버가 됐다고 말했다.
N잡러가 되는 것은 법적으로 문제가 없을까. 우선 대한민국 헌법이 보장하는 직업 선택의 자유(제15조)에는 겸직을 할 자유도 포함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따라서 업무 시간 이후에 다른 일을 하는 것은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경쟁 업체에 동시 취업하거나 회사 업무로 알게 된 비밀을 돈벌이에 활용하는 등 업무의 공정성을 해치는 경우는 제한된다. 또 공무원은 얘기가 다르다. 공무원은 공무 외에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업무에 종사하지 못하고 소속 기관장 허가 없이 다른 직무를 겸할 수도 없다(국가공무원법 제64조).
만약 사규에 '업무 시간이 아닌 퇴근 후나 주말에도 겸직을 해서는 안 된다' 또는 '겸직을 할 때에는 반드시 회사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규정이 있거나 회사에서 분명하게 부업을 금지하는 경우는 어떨까. 나단경 변호사는 "근로기준법상 정당성이 없는 사규는 법적으로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설명한다 그는 "취업 규칙에서 겸직을 당연 면직 사유로 정하고 있더라도 실제로 그 징계가 유효하려면 근로기준법 제23조 제1항에 해당하는 정당한 사유가 인정돼야 한다는 게 판례의 입장"이라며 "실질적으로 근로자가 겸업을 함으로써 사회통념상 더 이상 근로계약 관계를 유지할 수 없다고 볼 수 있는 경우에만 징계가 효력이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 경우에도 업무상 알게 된 영업 비밀이나, 사업과 관련된 정보를 바깥으로 흘려서는 안 된다. 회사에서 얻은 정보를 활용해 사적으로 이익을 얻는 것은 형법상 배임죄 등으로 별도로 처벌될 수 있어서다.
회사에 신고, 반드시 해야 할까
그렇다면 "괜한 간섭받지 말자"고 생각해, 회사에 알리지 않고 다른 일을 하면 어떻게 될까. 나 변호사는 "사실 법적으로는 신고할 필요가 없고, 당사자가 알리지 않으면 회사에서는 알 수 없다"고 설명한다. 다만 이 가욋일로 돈을 많이 벌었거나 그로 인해 국민연금 소득 상한액을 초과하면 다른 수입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수 있다.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고 하더라도 추가로 돈을 벌기 위한 아르바이트 때문에 본업을 잃을 수는 없는 법. 만약 슈카월드 사례처럼 직원이 회사 밖에서 돈을 벌었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받으면 근로자는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까. 나 변호사는 "징계나 해고가 유효하려면 근로기준법상 정당한 사유가 있어야 한다"며 "절차나 사유가 정당하지 않으면 부당해고로 구제신청을 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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