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는 단순하게 감정과 동의어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생리적 각성, 표현적 행동, 그리고 사고를 포함한 인간 의식의 총체적 경험을 일컫는 심리학 용어이다. 현생 인류의 직접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시대만 따지더라도 약 5만 년 전부터 인류의 생존을 위해 진화해 온 것으로, 우리 내부에서 일어나는 '어느 순간의 일시적인 느낌'을 일컫는 말이다. 흔히 기쁨, 분노, 두려움, 슬픔 같은 감정을 떠올리겠지만, 엄밀하게 말해 정서는 뇌의 작용으로 생리적 반응과 직결되어 있어 피부나 심장, 대장과 같이 몸에서도 느껴진다는 특징이 있다. 심장이 뻐근했던 감동적 순간이나 몸서리치게 싫었던 순간을 떠올려 보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정서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정서를 만족스럽고 좋은 기분과 관련된 정(+)적 정서와 불쾌하고 가라앉는 기분과 관련되는 부(-)적 정서로 구분한다. 생물학적 존재로서 우리 인류는 공포, 두려움, 분노와 같은 정서에 주의를 기울이도록 진화해왔다. 그편이 생존에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부적 정서가 느껴질 때 우리의 뇌 속에서는 변연계의 편도체가 활성화되는데, 이는 적색 경고등이 깜박이는 것과 같다. 이때는 하던 일을 멈추고 사방을 경계하며 조심해야 적의 위협으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오랜 진화의 흔적은 너무나 강력해서 발달한 문명사회에서 살고 있음에도, 우리는 여전히 부적 정서에 민감하다. 부적 정서에 집중하고 예민해서 전전긍긍하느라, 정작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할 때가 상당히 많다. 그렇기에 우리는 정적 정서 경험이 가져다주는 유익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수만 년 전 부적 정서를 알아차리는 것이 생존에 유리했듯이, 오늘날에는 정적 정서를 인식하는 것이 유리하다. 정적 정서를 경험하는 순간 우리의 사고와 행동의 레퍼토리가 확장되며, 이는 다양한 아이디어의 생성과 현명한 행동 선택을 가능하게 한다. 정적 정서를 자주 경험할수록 신체적·인지적·행동적·사회적 자원이 늘어나므로, 이렇게 축적된 자원을 통해 장기적으로 우리의 건강과 행복이 증진되는 효과가 있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정적 정서를 자주 경험한 아이가 모든 발달 영역에서 건강하고 행복하게 성장하는 것은 자명하다. 행복한 아이는 이후로도 정적 정서를 경험할 가능성이 그만큼 더 커지기에, 상향적 선순환이 반복적으로 발생한다. 이처럼 심리적인 측면에서도 경제 자본만큼이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일어나기에, 심리학에서는 심리자본이라는 개념이 등장하기도 하였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자기 삶이 마치 약육강식의 정글이나 밀림 속에서 살아가는 것과 같다고 느낀다면, 피치 못하게 정적 정서보다는 부적 정서를 자주 경험하게 될 것이고, 결과적으로 심리자본이 빈곤하게 되어 불행감에 빠지게 될 것이다.
행복을 연구하는 긍정심리학자들에 따르면, 부적 정서 대비 정적 정서 경험 비율은 3대 1 이상에서 12대 1 이하의 영역이 될 것이라고 한다. 부적 정서에 비해 정적 정서를 너무 적게 경험하는 것도, 너무 많이 경험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니, 오늘 지치고 힘든 하루였더라도 잠자리에 들기 전에 하루를 돌아보며, 정적 정서 경험 하나라도 더 찾아 음미해볼 것을 권한다. 행복을 위한 아주 손쉬운 셀프 케어 방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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