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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이 노키즈존?”... 이젠 서울 살아도 ‘구급차 뺑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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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이 노키즈존?”... 이젠 서울 살아도 ‘구급차 뺑뺑이’

입력
2023.03.12 07:00
수정
2023.03.14 11:29
0 0

서울은평성모병원도 3월부터 야간 소아응급실 중단
'지방 일'이던 의료 공백 서울까지 번져
전공의 소아과 기피... "소아 진료체계 붕괴 위기"

서울 은평성모병원이 응급의료센터에 게재한 안내문. 이 병원은 3월 1일부터 소아들의 야간 응급진료를 중단했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서울 은평성모병원이 응급의료센터에 게재한 안내문. 이 병원은 3월 1일부터 소아들의 야간 응급진료를 중단했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응급의료센터 소아청소년과(17세 미만) 야간진료 불가’

이달 1일 서울 은평성모병원 응급의료센터에 부착된 안내문이다. 은평구의 유일한 소아응급실이 야간 운영을 중단한다는 소식에 주민들의 우려가 쏟아졌다. 한 주민은 지역 주민 카페에 “뉴스에서 먼 지방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읽었던 일이 이제 코앞에서 일어난다. 밤에 아프지 말라고 할 수도 없고...”라며 걱정했다.

야간 진료 중단 원인은 의사 부족. 은평성모병원 관계자는 “전공의(레지던트) 수급이 안 돼 소아응급실 야간 진료가 어려워졌다”며 “다른 병원도 마찬가지 상황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최대한 빨리 야간 운영을 재개하기 위해 전담 인력을 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올해 필요한 소아과 레지던트 208명인데 53명만 지원

그러나 상황은 여의치 않다. 의사들은 2년의 인턴 과정이 끝나면 전공을 정해 레지던트로 일하는데, 올해 소아과 레지던트에 지원한 의사는 53명뿐이었다. 전국 66개 병원에서 208명의 전공의를 모집했지만 25%밖에 채우지 못했다. 2019년만 해도 80%였던 소아과 지원율이 급감한 것이다.

이는 소아 진료 특성상 위험 부담이 크지만 진료비는 낮고, 저출산으로 미래가 어두운 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소아과는 의료계 15개 진료과 중 진료비가 가장 낮을 뿐 아니라 지난 10년간 유일하게 진료비가 감소한 과다. 최근 5년간 폐업한 동네 소아과도 662곳에 달한다.

결국 전공의들의 소아과 기피로 비수도권에서 벌어졌던 의사 부족 문제가 서울 도심까지 번졌다. 강남세브란스병원은 지난해 10월 한 명뿐이던 1년 차 소아과 전공의가 병원을 떠나자 소아응급실 야간진료를 중단했고, 이대목동병원은 소아응급실 전체 운영을 중단한 상태다. 심지어 인천 가천대 길병원은 지난해 말 전공의가 없어 소아청소년과 입원 치료를 한 달 동안 중단하기도 했다.

지난달 경기 광명시 한 주민은 "8세 아이가 갑자기 복통을 호소해 집 근처 병원 3곳을 갔지만 모두 소아진료하는 의사가 없어서 진료가 불가했다"며 "경기도권 대형병원과 서울 대형병원도 모두 진료가 불가능하거나 전화 연결이 안 됐다"고 지역 커뮤니티에 적었다. 사진은 이 주민의 당일 통화내역. 자정 12시에 대형병원 응급실에 전화한 기록으로 빼곡하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지난달 경기 광명시 한 주민은 "8세 아이가 갑자기 복통을 호소해 집 근처 병원 3곳을 갔지만 모두 소아진료하는 의사가 없어서 진료가 불가했다"며 "경기도권 대형병원과 서울 대형병원도 모두 진료가 불가능하거나 전화 연결이 안 됐다"고 지역 커뮤니티에 적었다. 사진은 이 주민의 당일 통화내역. 자정 12시에 대형병원 응급실에 전화한 기록으로 빼곡하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소아 의료 현장 고사상태인데.... 정부는 '시범사업 중'

의료 현장에서는 이미 수년 전부터 인력 부족으로 인한 소아 응급의료체계 붕괴를 체감, 정부에 대책을 요구해 왔다. 하지만 이렇다 할 조치를 마련하지 못하다가 수도권 의료체계 붕괴가 가시화되자 부랴부랴 대책을 내놨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서울대 어린이병원을 찾아 “의사가 소아과를 기피하는 것은 의사가 아닌 정부 정책 잘못”이라며 “건강보험이 모자라면 정부 재정을 투입해서라도 바꾸라”고 말했다. 같은 날 보건복지부도 ‘소아의료체계 개선대책’을 발표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2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 어린이병원 소아외과 병실을 방문해 환아와 보호자를 만났다. 윤 대통령은 "건강보험이 모자라면 정부 재정을 투입해서라도 (소아과 의사 문제를) 바꾸라"고 말했으나, 정작 정부 대책은 인력 확충에 대한 대안이 없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서재훈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2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 어린이병원 소아외과 병실을 방문해 환아와 보호자를 만났다. 윤 대통령은 "건강보험이 모자라면 정부 재정을 투입해서라도 (소아과 의사 문제를) 바꾸라"고 말했으나, 정작 정부 대책은 인력 확충에 대한 대안이 없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서재훈 기자

그러나 이 대책은 어린이 공공전문진료센터 추가 지정, 달빛어린이병원 확대 등 시설 확충 중심이다. 당장 부족한 의사가 아니라 시설 늘리기에 초점을 둔 이 대책은 '소방관 없는 소방서'만 늘리는 꼴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당장 시급한 응급 의료 공백을 메울 방안도 없다.

류정민 서울아산병원 소아전문응급센터 교수는 “정부 대책은 의료인을 언제 어떻게 뽑을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없는 미흡한 안”이라며 “당장 고사상태인데 연구 용역사업을 하면서 시범사업을 하고 있으니 너무 답답하다”고 비판했다. 류 교수는 “의료 공백은 이미 시작되었고, 젊은 의사들이 원하는 보상과 인력 보충이 되지 않으면 5년 내에 이 공백은 완전히 고착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부터라도 차근차근 소아 진료 인력 확보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대한소아응급의학회는 지난 2일 성명서를 내 "전문 교육프로그램을 마련해 소아진료 인력을 확보하고, 매년 응급실 소아진료 현황을 조사해 지원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학회는 또 "소아의료체계의 위기상황은 저출산·인구감소 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수 있는 심각한 상황임을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보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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