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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인은 잡았는데…" '좀비 마약' 펜타닐 중독사 잇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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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유아인은 잡았는데…" '좀비 마약' 펜타닐 중독사 잇따라

입력
2023.03.12 07:00
수정
2023.03.12 08:09
0 0

아내가 남긴 펜타닐 투약해 사망한 70대
"약 먹었다" 응급실 찾아왔다 숨진 40대
펜타닐 처방량 급증…동물병원서도 처방
식약처 시스템도 '남은 약' 관리 속수무책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지난 1월 30일 세종시 아름동 한 주택에서 70대 남성 A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A씨 자택 휴지통에선 경구용 마약성 진통제인 펜타닐 포장 20여 개가 발견됐다. 이로부터 불과 일주일 후인 지난달 7일 충북 청주 한 병원에선 40대 여성 B씨가 “불상의 약을 먹었다”며 응급실을 찾아와 대기하던 중 갑자기 숨을 거뒀다.

마약성 진통제 펜타닐. 류효진 기자

마약성 진통제 펜타닐. 류효진 기자


'펜타닐' 치사량 검출…아내가 처방받은 진통제 남용

12일 세종 남부경찰서, 청주 청원경찰서 등에 따르면 부검 결과 두 사람 모두에게서 치사량에 해당하는 펜타닐이 검출된 것으로 확인됐다. 북미와 유럽에선 펜타닐이 ‘죽음의 마약’, ‘ 좀비 마약’ 등으로 불리며 심각한 사회 문제로 주목받고 있지만 한국에서 일주일 새 펜타닐을 과다 투약해 사망한 사람이 두 명이나 나온 것은 이례적이다.

경찰조사 결과, 숨진 A씨가 삼킨 펜타닐은 폐암으로 투병했던 아내가 진통제 목적으로 처방받아 사용하다 남은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 관계자는 “A씨가 투약한 펜타닐은 A씨 아내가 병원 처방을 통해 합법적으로 확보한 것”이라며 “다만 다른 마약류 투약 흔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B씨가 펜타닐을 구한 경로는 파악되지 않았다.

펜타닐은 말기 암환자나 통증 증후군 환자, 수술 환자의 통증을 덜어주기 위해 진통제로 사용된다. 단 2㎎만으로도 사망에 이를 수 있는 데다 헤로인의 100배에 달하는 중독성을 가지고 있지만 의료용 마약으로 분류돼, 처방전만 있으면 일반 의약품과 마찬가지로 약국에서 구매할 수 있다. 일단 판매되면, 처방받은 사람이 실제 용도에 맞게 사용했는지 등 남용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도 없다.

펜타닐 오남용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미국 필라델피아의 거리 모습. 마약 중독으로 뇌가 손상된 사람들이 구부정한 자세로 걷고 있는 이곳은 '좀비 랜드'라 불린다. 유튜브 캡처

펜타닐 오남용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미국 필라델피아의 거리 모습. 마약 중독으로 뇌가 손상된 사람들이 구부정한 자세로 걷고 있는 이곳은 '좀비 랜드'라 불린다. 유튜브 캡처


동물병원서도 판매…청소년들 병원 돌며 쇼핑하듯 구매

전문가들 사이에선 미국처럼 되지 않기 위해선, ‘전조’로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대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8~49세 미국 청년층 사망 원인 1위는 코로나나 교통사고, 총격 사고 등을 제치고 펜타닐 중독이 차지한다. 시민단체 ‘펜타닐에 반대하는 가족 모임’이 지난해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에선 2015~2021년 펜타닐 과다복용으로 20만9,491명이 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 펜타닐 중독자들이 길거리에 구부정한 자세로 서 있는 영상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필라델피아의 일부 지역은 아예 ‘좀비 랜드’라고도 불린다.

미국 펜타닐 사태 원인은 펜타닐을 일반 마약보다 “싼 가격에, 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한국도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단순히 관리 체계가 없기 때문에 펜타닐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 이미 심상치 않은 수준에 도달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2021년 경남지역에선 청소년 42명이 병원을 돌며 ‘쇼핑하듯’ 펜타닐을 처방받아 공원 등에서 투약해 검거된 사례도 있었다. 암 투병 등이 아닌, 허리통증 등의 증상으로도 펜타닐을 처방받을 수 있다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동물병원에서도 사람용 펜타닐을 판매하고 있다. 동물 전용 펜타닐 패치가 따로 나와 있지 않아, 사람용으로 나온 것을 잘라 사용하도록 한다는 설명이다.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선 “펜타닐 처방 가능한 동물병원 있나요”라는 질문이 올라오면 병원 초성이 공유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펜타닐 처방량은 ‘급증’ 추세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한국 펜타닐(주사제 외 패치·정제) 처방 건수는 2018년 89만1,434건에서 2021년 148만8,325건으로 67% 늘었다. 동물병원 펜타닐 패치 처방 건수도 2019년 5,602건에서 2021년 1만862건으로 약 1.9배 늘었다. 경찰과 검찰 등 수사기관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감정을 의뢰한 건수도 급증했다. 국과수에 따르면 펜타닐 감정 의뢰 건수는 2016년에는 0건이었지만, 지난해 300건이 의뢰됐다. 2020년 의뢰 건수는 80건, 2021년엔 242건이었다.


유아인.

유아인.


식약처, 유아인 프로포폴 잡았지만 A씨 사례는 "파악 불가"

A씨와 같은 죽음을 막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는 전무한 수준이다. ‘마약류 통합관리시스템’를 통해 배우 유아인의 프로포폴 남용 정황을 파악한 식약처는 이 시스템을 활용하면, 특정인이 펜타닐을 많이 처방받은 경우를 모니터링할 수는 있다는 입장이지만 A씨 경우처럼 합법적으로 처방받고 남은 양을 남용하는 경우는 파악할 수 없다.

식약처는 이런 허점을 보완하겠다며 지난해 7월부터 11월까지 약국을 통한 ‘가정 내 마약류 수거·폐기 시범 사업’을 시행했지만, 참여 약국 수가 전국 99곳에 불과하는 등 실효성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전문가들은 의료용 마약류 관리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한덕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팀장은 “중독성과 위험성에 비해 합법적인 경로를 통해 구한다는 인식 때문에 일반 마약보다 중독자들은 물론, 정부도 의료용 마약류 문제 심각성을 낮게 보고 있다”며 “펜타닐 중독사 등 관련 통계부터 전반적인 관리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펜타닐 오남용은 '좀비' 행동 원인, "뇌 손상"…숨 못 쉬어 사망

펜타닐은 중추신경계 통증 전달을 억제하는 방식으로 쾌감을 유발한다. 동시에 특히 산소 공급이 줄어 뇌 일부를 손상시키는 것으로도 알려졌다. 중독자들이 필라델피아 거리를 흡사 좀비와 같은 걸음걸이로 배회하는 것도 이 같은 이유다. 중독자들의 금단 증상으로는 구토, 피로감, 두통, 호흡억제 등이 나타난다. 통증 억제 작용 때문에, 투약하지 않을 땐 옷자락만 스쳐도 베이는 듯한 통증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

과다투약으로 사망하게 되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고통은 대부분 호흡부전이다. 배장환 충북대병원 심장내과 교수는 “심장 쇼크에 이르게 된다는 의견도 있지만, 심정지는 대부분의 사망에 수반되는 것”이라며 “펜타닐을 과다투약해 사망에 이르게 되는 경우는 숨을 못 쉬어 숨지는 사례”라고 설명했다.

펜타닐 중독의 심각성은 20대 래퍼 윤병호가 2021년 한 방송에 출연해 털어놓은 펜타닐 중독 후 경험담에서도 확인된다. 그는 당시 “벌레처럼 기어다니면서 펜타닐 부스러기라도 찾으려 쓰레기통을 뒤졌다”며 “펜타닐 때문에 치아가 삭아서 어금니 4개가 없어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지난해 자택에서 또다시 마약 투약 혐의로 체포됐다.

원다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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