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당역 스토킹 비극 반년, 바뀐 게 없다]
사건 이후 141건 판결, 실형은 8.4% 고작
600번 넘게 문자하고 폭행해도 징역 8월
"입법, 대법원 양형기준으로 보완할 필요"
60대 여성 A씨는 교제하던 B씨와 헤어진 뒤 수년간 공포에 떨었다. B씨는 허락 없이 피해자의 주거지를 침입하는가 하면, 수시로 통화 시도를 하거나 문자를 보내 경범죄처벌법 위반으로 벌금형을 받았다. 이때는 ‘스토킹처벌법’ 시행(2021년 10월 21일) 전이었다. 법이 만들어졌어도 가해자의 협박은 그치지 않았다. 지난해 2~5월 사이 그가 A씨에게 전화를 건 횟수만 55차례, 집과 직장에도 7번이나 찾아갔다. B씨는 결국 법정에 섰고, 피해자는 강력한 처벌을 원했다. 하지만 1심 재판부는 지난해 10월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충분히 반성하고 있고, 벌금형 외 형사처벌 전력이 없다”는 이유였다.
감형 사유 봤더니... "반성·자백·성품"
지난해 9월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 후에도 재판부의 ‘관대한 판결’ 관행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13일 본보가 대법원 판결문 검색 시스템을 통해 지난해 10월부터 올 2월까지 스토킹처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사건의 확정 판결문 141건을 전수 분석한 결과, 실형은 12건(8.4%)에 불과했다. 집행유예가 73건(51.8%)으로 가장 많았고, 벌금형이 52건(36.9%)으로 뒤를 이었다. 스토킹 가해자 10명 중 9명은 재판을 거쳐 풀려난 것이다.
평균 290만 원인 벌금 액수도 처벌 효과를 주기엔 한참 모자랐다. 벌금 70만 원에 그친 사례도 있었다. 이 밖에 집행유예와 벌금형을 함께 받은 게 3건, 선고유예가 1건이었다.
법원도 스토킹 범죄의 심각성을 알고는 있다. 대부분 판결에서 “심각한 정신적ㆍ신체적 피해를 야기” “다른 범죄로 발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선처했다. 집행유예ㆍ벌금형 판결문에선 피고인의 반성이나 자백, 성행(성품과 행실) 등이 감형 사유가 됐다. 은밀한 신체 사진을 피해자에게 보내는 등 2년 반이나 스토킹을 한 피고인에게도 법원은 “재범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면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부과했다.
실형 형량 역시 ‘국민 법 감정’엔 못 미쳤다. 스토킹처벌법은 징역 3년 이하 또는 벌금 3,000만 원 이하(위험한 흉기 소지 시 징역 5년 이하 또는 벌금 5,000만 원 이하)에 처할 수 있다. 그러나 실형 12건의 평균 형량은 1년 1개월이었다. 그나마 9건은 성폭력처벌법위반이나 협박, 폭행 등 중범죄가 동반된 경우다. 스토킹처벌법만으로 기소돼 실형이 나온 사례는 3건뿐이었다. 피해자에게 무려 647회에 걸쳐 전화 및 협박 문자를 보내고 폭행을 한 피고인도 징역 8월을 선고받았다.
성범죄 전문가인 이은의 변호사(이은의 법률사무소)는 “한국은 스토킹 범죄나 데이트ㆍ가정폭력, 아동학대 등 사회적 약자 피해에 대한 법 감수성이 떨어지는 편”이라며 “이런 범죄에 노출될 가능성이 낮은 판사들이 피해 정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간접 스토킹 공포 심각한데 "무죄"
부재중 전화 등 이른바 ‘간접 스토킹’을 가벼이 여기는 판결도 피해자들을 좌절하게 한다. 반복적인 전화는 피해자가 가장 공포를 느끼는 행위다. 하지만 법원은 지난해 11월 헤어진 연인에게 나흘간 51차례 전화를 건 C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전화가 피해자에게 ‘도달’하지 않았다는 근거를 댔다. 다른 사건에서도 부재중 전화(16통)는 스토킹이 아니라고 판결했다. 물론 간접 스토킹을 유죄로 본 재판부도 있는 만큼, 판사 성향에 따른 ‘들쭉날쭉’ 판결을 막기 위한 양형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한국여성변호사회 공보이사 장윤미 변호사는 “스토킹처벌법을 제정할 때 내용을 꼼꼼하게 담지 못한 측면이 있다”며 “입법이나 대법원 가이드라인으로 보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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