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과 병무청이 3개월간의 합동수사 결과 뇌전증 위장 수법으로 병역면탈을 시도한 병역면탈사범 137명을 무더기로 기소했다고 어제 발표했다. 병역면탈자 109명과 부모를 비롯한 공범 21명, 그리고 이들을 적극 도운 공무원 5명, 브로커 2명이다. ‘돈 없고 빽 없는 사람만 군대 간다’는 얘기가 1970~80년대가 아닌 2023년에도 유효한 현실에 공분이 일지 않을 수 없다.
병역면탈을 위한 이들의 작전은 혀를 내두르게 한다. 간질로 불렸던 뇌전증은 뇌파검사를 통해 걸러지는 경우가 많지 않아 신체검사일 기준 치료내역이 1년 이상이면 4급(보충역), 2년 이상이면 5급(전시근로역) 판정을 받을 수 있다. 이런 허점을 노려 브로커와 면탈자는 수년간 상담을 하며 1~3차 병원 진료기록을 세밀하게 관리했다. 119 허위신고로 구급차를 타고 대형병원 응급실로 직행해 병역면탈 소요 시간을 단축시킨 경우도 있었다.
공무원이 가담한 조직적 병무비리 사건도 적발됐다. 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하던 연예인의 출근 기록을 구청과 병무청 공무원이 허위로 꾸며 조기 소집해제를 시도했다. 복무 부적응 근태자료를 만들기 위해 무려 141일간의 출근부를 조작했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병역비리는 입시비리와 함께 우리 사회 공정 가치를 무참히 짓밟는 중대 범죄다. 이번에 기소된 병역면탈자는 본인이 운동선수나 연예인, 혹은 의사 등 전문직이거나 부모가 변호사나 한의사 등 사회지도층인 경우가 상당수다. 이들은 병역컨설팅 명목으로 브로커에게 최대 1억 원을 지급했다고 한다. 성실하게 병역 의무를 다하고 있는 장병들의 분노는 말로 표현하기 힘들 것이다.
당국은 뇌전증 면제자 7년치 전수조사, 중점관리대상질환 확대 등의 후속 대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돈 있고 힘 있는 이들의 병역면탈 욕구가 있는 한 브로커들의 수법은 날로 교묘해지고 지능화할 것이다. 대책을 내놓는데 그치지 말고 병역비리 발본색원을 위한 강력하고 지속적인 단속 의지를 보여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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