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2009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준우승 등으로 한국 야구의 황금기를 열어 젖혔던 베테랑들의 ‘라스트 댄스’가 허망하게 끝냈다.
2023 WBC 야구 대표팀 주장을 맡았던 김현수(35·LG)는 13일 중국과 최종전을 마친 뒤 눈시울을 붉히며 “이제 내려올 때가 된 것 같다. 코리아 유니폼을 입는 건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 10년 넘게 마운드를 지켰던 김광현(SSG)과 양현종(이상 35·KIA)도 나이를 감안할 때 사실상 마지막 태극마크였다.
이들은 이번 대회에서 뚜렷한 한계를 노출했다. 10번째 대표팀에 뽑힌 김현수는 3경기에서 타율이 0.111(9타수 1안타)에 그쳤다. 종전 9차례 국제대회 통산 타율이 0.364에 달했던 정교한 타격이 실종됐다. 수비에서도 무리하게 다이빙 캐치를 시도했다가 장타를 내주는 실수도 했다.
김광현, 양현종도 기대를 밑돌았다. 김광현은 일본전에 선발 등판해 2회까지 잘 버텼지만 3회에 와르르 무너졌다. 2009 WBC에서 김광현을 상대했던 일본의 강타자 출신 후쿠도메 고스케는 한일전을 본 뒤 “이제 김광현도 확실히 나이가 들었다”고 진단했다. 양현종은 8강 진출의 분수령이었던 호주전에서 구원 등판해 아웃카운트 1개를 잡지 못한 채 통한의 3점포를 맞고 이후 자취를 감췄다.
대표팀의 투타 기둥이 국제대회 경쟁력을 잃으면서 한국 야구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아직도 이들이 주축으로 자리하고 있을 만큼 세대교체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나마 타자 쪽은 상황이 낫다. 메이저리거 김하성(28·샌디에이고)이 중심을 잡아주고, 이정후(25·키움)와 강백호(24·KT)가 버티고 있어서다.
문제는 투수다. 이강철 대표팀 감독이 이번 대회에서 확실한 선발 보직을 정하지 못한 것처럼 상대에게 두려움을 줄 만한 투수가 대표팀 내에 없었다. KBO리그 최고의 에이스 안우진(23·키움)이 뛰고 있지만 ‘학교 폭력’이라는 꼬리표가 따라 붙어 태극마크를 달기가 어려운 현실이다. 강력한 구위를 갖춘 20대 초반의 문동주(20)나 김서현(19·이상 한화), 장재영(21·키움)이 ‘영점’을 잡지 않고서는 한국 야구의 투수 세대교체도 없다. 그나마 수확은 ‘안경 에이스’ 박세웅(27·롯데)이 일본 타자들을 상대로도 밀리지 않고 굳건한 모습을 보였다는 점이다.
세대교체가 성공적으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부담감도 즐길 수 있을 만한 실력을 갖추는 게 먼저다. 일본 대표팀은 이번 대회 개막을 앞두고 단체 회식 사진을 공개하는 등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이었지만 이는 한국 대표팀에서 절대 찾아보기 힘든 광경이다. 베테랑 김광현조차 “대표팀에 오면 눈치 보는 게 일상”이라고 했고, 빅리거 김하성도 “외출도 신경 쓰인다. 성적을 내야 한다는 부담감에 즐기지 못한 게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실제 처음 대표팀에 합류한 김윤식(23·LG), 이의리(21·KIA) 등은 너무 긴장한 나머지 제대로 스트라이크 존에 공을 던지지도 못했다.
김현수는 “부담감을 이기지 못하면 안 된다”며 “나도 긴장했고, 선수들도 긴장했다. 긴장감 속에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부담감을 갖지 않고, 즐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선수들한테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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