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VB 몰락에 그레그 베커 CEO 지목
"금리 내린다"며 '위험 관리' 등한시
자본조달 공시 두고 "파산 기름 부어"
주주들, CEO 상대 '손해배상 소송'도
"그레그 베커 최고경영자(CEO)가 시장에 폭탄을 던졌다."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이 순식간에 파산한 것을 두고 이 같은 비판이 거세다. 설립된 지 40년, 미국 내 16위권 중견은행이 맥없이 무너진 배경엔 물론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급격한 긴축과 기술기업계에 퍼진 불황이 깔려 있다. 하지만 고금리에 민감한 상품에 자산 비중을 과도하게 할애하면서도, 위험(리스크) 관리는 등한시한 경영진의 실책이 이번 사태의 직접적인 도화선이 됐다는 평가도 만만치 않다.
금리 인상에도 채권 '위험회피' 외면한 SVB
13일(현지시간)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SVB가 금리 인상에 대비한 위험 회피(헤지·Hedge)를 외면한 결과가 이번 파산 과정에 기름을 부었다"며 "그 중심엔 12년간 SVB를 이끌어 온 베커가 있다"고 보도했다. 베커는 20대였던 1993년 SVB에 대출 담당자로 입사해 2011년 CEO에 오르는 등 30년간 이곳에서 근무한 '정통 SVB맨'이다. 경력이 말해 주듯, 은행 업무를 꿰뚫고 있는 베테랑이기도 하다.
WSJ에 따르면 연준이 지난해 금리를 4.0%포인트나 끌어올리는 사이, SVB는 같은 기간 매도가능증권(AFS) 260억 달러 중 5억6,300만 달러(2.2%)에 대해서만 헤지에 나서는 등 '청개구리'나 다름없는 선택을 했다. 헤지 규모 자체도 전년(153억 달러)보다 크게 줄었다. 지난해 말 재무보고서엔 아예 "대규모 채권 포트폴리오에 대한 금리 헤지가 사실상 없다"고 적기도 했다.
금융사는 통상 대출이나 채권 같은 보유자산의 고정금리와 변동금리를 일정기간 교환(Swap)하는 식으로 '금리 헤지'에 나선다. 급격한 금리 변동에 따른 손실을 줄이기 위해서다. 자산의 상당 부분이 미 국채 등 금리에 민감한 채권에 쏠린 경우라면, 금리 헤지는 기본 중 기본이다. 실제로 10년물 미 국채 금리는 2021년 12월 연 1%대에서 2022년 말 4%대로 치솟았다. SVB가 위험 대비에 소홀한 결과, 평가 손실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SVB는 금리가 다락같이 오르던 지난해 중반에도 투자자들에게 "금리가 하락할 경우를 대비한 자산 운용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설명했다고 한다. WSJ는 "SVB 경영진은 (다른 산업보다) 보수적이라고 알려진 은행 산업에 낙관론을 투영했다"며 "지난해 연준이 수십 년 만에 가장 빠른 속도로 금리를 올렸는데도, 그들은 이를 무시하고 금리 인하에 베팅했다"고 꼬집었다.
"바보 같은 CEO" 직원들은 한숨, 주주는 소송
경영진을 향한 내부 비판도 신랄하다. SVB 직원들은 지난 9일 대규모 손실과 자금조달 계획을 공개한 CEO의 '성급한' 결정이 화를 키웠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당시 SVB는 "210억 달러에 달하는 매도가능증권을 매각해 총 18억 달러 손실을 봤다"며 22억5,000만 달러 규모의 자금 조달 계획을 공개했다. 직원들은 이 발표가 시장의 불안감을 과도하게 키웠고, 그 결과 파산으로 치달았다고 본다. 실제로 발표 직후 36시간 만에 스마트폰 뱅킹 등으로 420억 달러(약 55조 원)에 달하는 예금이 빠져나가는 '뱅크런(대규모 인출 사태)'이 일어났다.
SVB의 한 직원은 "40년 된 은행이 20억 달러를 못 구한다고 인정한 것"이라며 "사람들은 CEO가 완전히 바보짓을 한 데에 충격을 받았다"고 CNN방송에 말했다. 제프리 소넨펠드 예일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당시 SVB는 금융당국의 규제 수준을 웃도는 유동성이 있었던 만큼, 자본 조달 공개는 불필요한 행동이었다"고 지적했다.
SVB 주주들은 베커 CEO와 대니얼 벡 최고재무책임자(CFO)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집단소송을 냈다. 주주들은 "금리 상승으로 사업 기반이 약해지면서 취약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사실을 경영진이 공개하지 않았다"며 SVB가 2021년 1월부터 지난 10일까지 발생한 투자자들의 불특정한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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