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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글로리' 문동은의 복수, 초라해진 국가 형벌권

입력
2023.03.15 19:0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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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랑
박미랑한남대 경찰학과 교수

편집자주

범죄는 왜 발생하는가. 그는 왜 범죄자가 되었을까. 범죄를 막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리 곁에 존재하는 범죄의 세상 속으로 들어가 본다.

학교 폭력 피해자의 사적 복수 스토리를 다룬 '더 글로리' 주요 장면. 넷플릭스 제공

학교 폭력 피해자의 사적 복수 스토리를 다룬 '더 글로리' 주요 장면. 넷플릭스 제공


더 글로리 드라마가 드러낸 우리 사회의 권력관계
가해자 반성 이끌어내지 못하는 국가 형벌권
처벌 내용에 가해자 반성 담아내는 방안 찾아야

최근 N사의 드라마 ‘더 글로리’ 시즌2가 공개됐다. 그 드라마로 학폭 문제가 재점화되었다. 드라마 속에서 학폭 가해자는 사회 제도권에서 매우 잘 자리 잡았고, 피해자는 사적 복수를 인생의 목표로 삼는다. 2023년 피해자의 복수혈전을 그린 드라마가 인기를 얻는다는 건 뭘 의미할까? 사적 복수가 화두인 그 드라마는 정순신 변호사 가족이 사는 사회를 조명한다. 드라마 밖 현실의 가해자 아빠는 권력을 가진 법조인이었고, 가해자는 공부를 잘하는 학교 내 권력자였다. 아빠의 지인들은 법기술을 부려서 공부를 잘했던 학폭 가해자가 최고 대학교에 진학하도록 도와주었다. 드라마는 폭력을 이야기하지만 실상은 권력관계에 대한 이야기이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사적 복수가 쉽지 않다. 사적 복수를 하면 또 다른 범죄자가 되는 사회이다. 국가가 형벌권을 행사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형벌의 국가화가 진행되기 이전의 법률체계가 정비되지 않았던 사회는 사건의 발생은 곧 가해자에 대한 응징과 복수의 시작을 알린다. 그러나 형벌 발전사에서 복수의 용인이 허용되었던 시기가 까마득한데도 우리는 아직도 이렇게 사적 복수를 보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있다. 그 배경은 국민들이 무기력하고 비겁한 국가의 형벌권에 만족하지 않아서다. 더 글로리 드라마가 공개된 이후 사람들은 드라마가 학폭 피해자에 대한 위로와 응원, 그리고 당위를 보여준다고 평가하였다. 국민은 학폭 이후 피해자가 잘 살아가도록 형사사법기관이 조력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형벌권은 가해자를 처벌하는 절차에만 집중하고, 절차상의 하자 없이 죄형법정주의에 근거하여 잘 처리했다는 형법의 일부분만 반복 재생하고 있다. 피해자의 감정과 삶을 들여다보지 않는 것이다. 국민은 정확하다. 절차상 하자 없이 처벌받는 가해자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가해자가 반성하는 처벌이어야 하고, 피해자가 사과받고 용서를 할 수 있는 주도권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학폭 가해경험 응답인원 및 응답률. 자료: 교육부

학폭 가해경험 응답인원 및 응답률. 자료: 교육부

대전에는 해맑음센터라는 학폭 피해 학생 및 학부모를 위한 대안학교이자 치유기관이 있다. 그곳의 학폭 피해자들은 가해자에게 바라는 것이 진정한 사과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피해자들이 아픔을 잊고 목표를 향해 나갈 수 있는 사회이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현실 속 형벌권은 학교폭력 피해자를 은둔시키고 가해자와 법기술자들의 기교만을 보고 듣고 있다. 사과에도 골든타임이 있다. 국가의 형벌권은 그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도록 피해자의 목소리에 귀기울여야 할 것이고, 가해자를 향한 처벌의 내용을 재고민해야 한다. 처벌의 내용 속에 가해자의 사과가 자리 잡을 수 있는 방안이 핵심이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학폭뿐만 아니라 모든 폭력에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피해자의 감정이 외면되는 형벌권 속에서는 가정학대 피해자였던 자녀들이 노인학대 가해자로 진화하고, 가정폭력 피해자는 사적 복수를 위해 살인자가 되며, 학교폭력 가해자는 군대 내 폭력 가해자가 되며, 직장 내 괴롭힘의 주체가 된다.

학폭 피해경험 응답인원 및 응답률. 자료: 교육부

학폭 피해경험 응답인원 및 응답률. 자료: 교육부

범죄학자로서 형사정책의 방향성을 조언한다면, 감정을 버리고 합리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을 제시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가해자를 지금보다 얼마나 더 강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학폭 가해자를 인지하는 것이 낙인효과라는 교장 선생님, 그것이 폭력이냐고 반문하는 교장 선생님의 무식함은 교정해줘야 할 것 같다. 학생의 개인정보라서 알려줄 수 없다는 대학의 보직 교수는 무기력하고 비겁한 형벌권이 낳은 악마와 한편이다. 국가의 형벌권이 폭력이라는 권력관계 앞에서 더욱 정의로워지면 이 사회가 달라질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형벌권은 회복을 염원하는 오늘의 드라마를 더 열심히 시청해야 할 것 같다.


박미랑 한남대 경찰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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