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 넘어 한글 깨친 칠곡 할머니 5명
칠곡군 성인문해프로그램 수강생 중
5명 선정 넉 달간 1만 장 이상 맹연습
5가지 서체로 개발, 무료로 공개
박물관으로, 오피스 프로그램으로도 진출
5월엔 다음카카오 이모티콘도 출시 예정
칠곡할매글꼴이 탄생 2년여 만에 전국적인 유명세를 타고 있다. 2020년 말 출시 이후 관공서 명함, 황리단길 현수막에서 한글오피스 MS오피스 등 워드프로세서, 박물관에다 대통령 연하장까지 진출했다. 투박하게만 보이는 칠곡할매글꼴은 어떻게 태어났을까.
시작은 칠곡군이 배움의 기회를 놓친 어르신을 대상으로 한 한글문해교실에서 시작했다.
칠곡군은 2006년부터 관내 2개 마을에서 성인문해교실을 열었다. 수강생은 일제강점기에 태어난 어르신이 대부분이었다. 처음 40명으로 시작, 그 동안 누적 수강생은 2,100명을 돌파했다. 대부분 할머니들이었다. 가난과 뿌리깊은 남녀차별 영향 때문이다.
칠곡군은 프로그램이 끝날 때마다 전시회 등을 열었다. 2020년 6월 400여 명의 수강생 중 개성 있고 따뜻한 글씨체를 보인 5명을 선발했다. 5명의 할머니들은 넉 달여 동안 1인당 A4용지 2,000장 이상에 연습해 필체를 정립했다.
그해 12월16일 칠곡할매글꼴 5종이 세상에 나왔다. 할머니들의 이름을 따서 김영분체, 권안자체, 이원순체, 추유을체, 이종희체로 정했다. 칠곡군은 칠곡 할매의 마음이 담긴 글꼴을 무료로 배포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삐뚤빼뚤한 획 등 외형은 단숨에 이목을 집중시켰다. 출시 3주 만인 2021년 1월 칠곡군에서 130㎞나 떨어진 충북 충주시 우리한글박물관에 '인자는 내 이름 어디 가서 부끄럽지 않게 쓴다' 등의 칠곡할매글꼴 표구가 전시됐다. 같은 해 4월 국립한글박물관의 문화유산에도 등재됐다. 당시 심동섭 국립한글박물관장은 "칠곡할매글꼴은 정규 한글교육을 받지 못한 마지막 세대가 남긴 문화유산으로 한글이 걸어온 역사에 큰 발자취를 남기고 새 역사를 쓴 것"이라고 말했다.
칠곡군수 등 공무원들은 명함을 칠곡할매글꼴로 새겼다. 상인들은 포장용기에 칠곡할매글꼴 메시지를 붙이는 등 확산에 앞장섰다. 2021년 5월엔 한컴오피스에, 지난해 10월엔 MS오피스에 탑재됐다.
지난해 말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발송한 연하장에도 칠곡할매글꼴이 쓰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칠곡할매글꼴은 '대세'에 올랐다. 대통령실은 지난 1월 5명의 칠곡할매글꼴 주인공을 초청했다. 이 자리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국비 200억 원을 들여 칠곡할매문화관 건립도 약속했다.
경북도는 칠곡할매글꼴 주인공 할머니들에게 지난 1월 명예졸업장도 수여했다. 교사 출신인 이철우 경북도지사가 교단에 올라 호국과 선비 등 경북의 4대 정신을 주제로 수업을 진행했다. 할머니들은 검은 치마 저고리에 하얀 칼라의 옛 교복 차림으로 책상에 앉았다.
칠곡군은 이번 제주 특별전에 이어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칠곡할매글꼴을 담은 카카오톡 이모티콘도 출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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