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호크마 샬롬'은 히브리어로 '지혜여 안녕'이란 뜻입니다. 구약의 지혜문헌으로 불리는 잠언과 전도서, 욥기를 중심으로 성경에 담긴 삶의 보편적 가르침을 쉽고 재미있게 소개합니다.
주기철 목사는 슈퍼맨이 아니었다. 일제강점기에 일왕을 살아있는 신으로 숭상하며 절을 하라는 신사참배를 끝까지 거부했던 항일 목사였지만, 구속되어 당한 고문을 무척이나 두려워했다고 한다. 주 목사의 손자 주승중 목사는 그렇게 말했다.
그때 한국의 교회는 시편의 다음 기도를 목메어 부르짖었을 것이다. 교회 밖에서도 이 시구절은 우리 민족의 울분과 함께했을 것이다. 일제의 억압에 교회와 나라는 하나가 될 수 있었다. "주님의 적들이 소리를 질러 댔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만나 주시던 곳에서. 그들이 자신들의 깃발들을 승리의 표로 세웠습니다. 그들은 도끼를 위로 드는 사람 같아 보입니다, 우거진 나무 덤불 속에서."(시편 74:4-5, 새한글성경)
한국 교회의 신앙과 항일 정신을 꺾으려는 일제의 계략은 잔혹했다. 주 목사를 따르던 자들에게 신사참배만 한다면 더는 그를 고문하지 않겠지만, 계속 저항하면 고통을 가할 것이라며 회유성 협박을 했다. 그러나 주 목사는 신자들에게 인간 주기철이 아니라 십자가의 주님만 바라보라면서 고문을 감당했다. 면회 온 어머니와 아내, 아들 앞에서 주 목사는 입과 코에 고춧가루 물을 들이붓는 고문을 당했다. 물로 팽창한 복부에 의자를 얹고 그 위에 뛰어내리자 주 목사는 핏물과 고춧물을 쏟아냈다. 그래도 꺾이지 않자, 그 자리에서 식구들이 보는 가운데 주 목사의 아내를 성고문했다. 이를 보고 충격받은 아들은 한동안 실어증을 겪었다.
위 시편은 한국인의 상실감과 분노를 일으킨 일제의 악행도 노래하는 듯하다. "그들은 마음속으로 말했습니다. '이들을 모조리 짓눌러 버리자!' 그들은 땅에서 우리가 하나님 만나 뵙는 곳을 모두 불살랐습니다. 우리의 깃발들을 우리는 보지 못했습니다. 더는 예언자가 없었고, 아는 사람도 우리에게는 없었습니다, 언제까지 이럴지를. 언제까지, 오, 하나님, 적이 비아냥거리겠습니까? 원수가 깔보아도 괜찮습니까, 주님의 이름을 영영?"(74:8-10)
한국의 미래를 흐리게 하고 세금을 늘리기 위해 일제는 공창제를 도입했다. 아편과 담배도 장려했다. 당연히 한국의 교회는 금주와 금연을 강화했으며, 한국 기독교의 항일은 이념을 초월한 신앙 투쟁이 되었다. 이를 잠재우기 위한 일제의 탄압은 질기고 독했다. 이는 잠시 석방되어 교회로 돌아와서 했던 유언과 같은 그의 기도문에 드러난다. "장기간의 고난을 견디게 하여 주시옵소서. 단번에 받는 고난은 견딜 수 있으나 오래 끄는 장기간의 고난은 참기 어렵습니다. 칼로 베고 불로 지지는 형벌이라도 한두 번에 죽는다면 그래도 이길 수 있으나 한 달, 두 달, 일 년, 십 년 계속되는 고난은 견디기 어렵습니다."
시편은 이런 고초를 겪는 우리 민족의 마음도 대변한다. "이것을 기억해 주십시오. 원수가 비아냥거립니다, 오, 여호와님! 못난 백성이 깔봅니다, 주님의 이름을. 짐승에게 넘겨주지 마십시오, 주님의 비둘기의 목숨을! 주님께 속한 불쌍한 사람들의 삶을 영영 잊어버리지 마십시오."(74:18-19)
1944년 4월 21일 주기철 목사는 고문 끝에 하늘나라로 갔다. 염을 하던 중 식구들은 주 목사의 손톱이 고문으로 인해 모두 뜯겨 나가고 발이 망치로 짓이겨진 것을 보게 되었다. 나는 이 이야기를 그분의 손자 목사님의 입을 통해 직접 들었다. 일제의 만행은 나도 어릴 적에 아버지께 들은 바가 있었다. 아직은 우리에게 그 상처와 쓰라림이 너무 생생하다. 그 상처가 아물기엔 아직 우리는 낫지 못했다. 추운 감옥에서 주기철 목사가 아내에게 남긴 마지막 말은 "여보 따뜻한 숭늉 한 사발 먹고 싶소"였다.
"짓밟히는 사람이 다시 부끄러워하지 않게 해 주십시오. 불쌍하고 가난한 사람이 찬양하게 해 주십시오. 오, 하나님! 잊지 마십시오, 주님 적들의 소리를. 주님께 맞서는 사람들이 질러 대는 소리가 계속 올라갑니다."(74: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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