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정 78년 동안 식목일 기온 크게 올라
지자체와 묘목시장 식재 대목은 '2, 3월'
국회도 '3월 21일 변경' 발의... 계류 중
정부 "탄소중립 맞게 의미 확장할 필요"
“식목일에 나무 안 심은 지 한참 됐어요. 이제 날짜 변경도 고민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국내 최대 규모인 충북 옥천 묘목시장에서 모종나무를 파는 민모(43)씨의 말이다. 민씨는 올해 봄 장사를 지난달 1일 시작했다. 식목일(4월 5일)보다 2개월 이상 빠른 셈이다. 수십 년 전만 해도 4월 초순이 나무 심기에 가장 적정한 온도(6.5도 안팎)였으나 지구온난화로 기온이 계속 오르면서 고객들의 묘목 구매 문의 시점도 훨씬 앞당겨졌다.
‘식목(植木ㆍ나무 심기) 없는 식목일’이 올해도 반복되고 있다. 2, 3월이 전국 묘목시장의 ‘대목’이 된 지는 오래다. 현실을 반영하지 못해 국가기념일의 의미가 퇴색된 만큼 날짜를 바꾸자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지난해 국회에서 관련 법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정부는 신중한 입장이다. 식목일의 역사적ㆍ상징적 가치를 봐야지, 나무 심는 행위 자체에 매달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1946년 제정 후 기온 3도 가까이 상승
식목일은 해방 이듬해인 1946년 제정됐다. 일제의 수탈로 황폐화된 산림을 다시 가꾸기 위해서였다. 4월 5일이 선택된 건 조선시대 성종이 백성들과 함께 선농단에서 제사를 지내고 밭을 간 날이라는 역사적 의미가 담겨 있다. 당시엔 계절적으로도 나무 심기에 알맞은 기온이었다.
그러나 한반도에도 기후 위기가 닥치면서 4월 초순 기온은 꾸준히 상승했다. 기상청에 따르면 4월 5일 평균 기온은 1940년대(1940~1949년) 7.54도에서 2010년대 들어 10.15도로 2.6도 이상 치솟았다. 2021년엔 최고 11.9도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렇게 높은 기온은 묘목 심기에 적합하지 않다. 박형순 전 국립산림과학원 연구실장(세경대 부설 평생교육원 교수)은 23일 “모든 나무는 물이 오르고 잎을 틔우기 전에 식재하는 게 원칙”이라며 “이미 싹이 나고 뿌리가 자리 잡은 뒤 심으려 하면 옮기는 과정에서 뿌리가 다쳐 나무가 죽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지방자치단체들이 식목일 전에 관련 행사를 진행한 지도 꽤 됐다. 올해 역시 경북 성주군과 대전 서구는 지난달 28일과 이달 9일, 제78회 식목일 맞이 나무 나눠주기 행사를 시작했다. 상대적으로 기온이 낮은 강원 양양과 강릉조차도 각각 이달 15일, 21일 행사를 열었다.
식목일 변경을 주장하는 쪽은 이 같은 ‘현실론’을 들어 국가기념일과 실제 묘목 심는 시기를 일치시켜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고 본다. 지난해 10월엔 식목일을 ‘세계 산림의 날(3월 21일)’로 바꾸는 내용의 산림기본법 일부개정안도 국회에서 발의됐다. 기후 변화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자는 취지도 담겨 있지만, 아직 법안 소위에 상정되지 못했다.
국회 "날짜 옮겨야", 정부는 "신중"
정부의 생각은 다르다. 우선 78년이나 이어진 국가기념일을 변경하는 작업은 다수 여론의 동의를 얻어 차근차근 절차를 밟아야 된다는 입장이다. 지역 특성에 맞게 식재 시기를 달리 할 수 있도록 산림청 산림자원 관리지침에 규정돼 있다는 점 역시 신중론의 근거다. 날짜에 매몰되지 말고 ‘탄소중립’이라는 시대정신에 맞게 기념일의 의미를 확장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산림청 관계자는 “식목일 제정의 가장 큰 이유인 국토녹화사업이 일찌감치 성공리에 마무리돼 이날을 꼭 나무 심는 날로 국한할 필요가 없다는 논의도 이뤄지고 있다”면서 “학계와 임업단체 등의 다양한 의견을 청취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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