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정책 발표에 앞서 '과정'을 부쩍 강조하고 있다. 충분한 여론 수렴을 거쳐야 혼선을 줄일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일방적인 발표'로 논란을 자초했던 근로시간 유연화는 뼈아픈 자성의 계기가 됐다. 속도보다 절차를 중시하는 새 접근법이 민심에 얼마나 와닿을지 주목된다.
26일 대통령실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최근 참모들과의 회의에서 "국민이 모르는 정책은 정책이 아니다"라며 정책 마케팅의 중요성에 대해 수차례 강조했다고 한다. 특히 윤 대통령은 "정책을 잘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홍보하고 설득하는 과정도 중요하다"면서 "국민들의 시각에서 사고하고 홍보하라"고 당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대통령실의 태도가 신중해졌다. 더불어민주당이 23일 국회 본회의에서 쌀 초과생산량 매입을 의무화한 양곡관리법을 가결시키자 윤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즉각 발표할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하지만 대통령실은 공식적으로 사흘이 지난 이날까지도 "각계의 우려를 포함한 의견을 경청하고 숙고하겠다"며 조심스런 반응을 내놓는 데 그치고 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쌀 매입에 재정을 투입해 미래세대에 부담을 떠넘기는 것보다 스마트팜과 청년 농가를 육성해 농업생산성을 뒷받침하자는 게 현재까지의 입장이었지만, 우리가 혹시나 놓쳤을지 모르는 여론을 듣는 것도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최종 결정은 그 이후에 대통령이 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양곡관리법은 대통령의 국정철학과 맞지 않아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지만, 최소 다음 달 4일 국무회의 전까지 농민 단체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도 이날 기자들과 만나 "법안에 대한 법률적 검토를 하는 데 (최장) 15일이라는 기간이 있다"면서 "법적인 과정도 있고 농민분들의 입장도 들어보고 종합적으로 판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저출산 정책도 실효적 해법 찾는 '과정'에 무게
정부는 이번 주 저출산 종합대책을 공개할 예정이다. 하지만 이 또한 일방향의 정책 발표에 그치기보다는 실효성 있는 해법을 찾는 과정으로 만들 계획이다. 단순하게 결혼을 장려하거나 현금을 지원하는 정책에서 벗어나 '아이 키우기 좋은 나라'에 초점을 두고 구조적인 개선책을 찾겠다는 것이다. 난임 시술 지원 강화, 경력 단절 여성 일자리 문제 해결 등이 정책 방향으로 거론된다. '주52시간제 개편안 발표' 당시처럼 정부 주도로 정책을 확정해 단발성으로 내놓는 방식은 최대한 자제할 방침이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취임 후 저출산고령사회위 회의를 처음 주재하는 만큼 큰 틀의 방향성을 이야기하게 될 것"이라며 "저출산 정책의 중요성이 상당하고 파장도 크기 때문에 여론을 수렴해 정책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무게를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번 회의는 출발점에 맞는 방안을 발표하고, 추후에 계속 보완하면서 국민들이 납득할 정책을 내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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