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위기의 자유주의
17세기 독재 향한 저항에서 피어난 자유주의
밀 "국가 권력 제한으로 자유로운 사회 구현"
스미스 "정부는 자유로운 경제활동 보장해야"
정치·경제 자유, 인류 번영에 커다란 기여 평가
빈부 격차·불평등 확대 따른 자유주의 위기 확대
언론·사상 자유 퇴조되는 움직임 곳곳에서 감지
편집자주
주로 수치로 묘사되는 경제학은 추상적인 사회과학의 영역입니다. 하지만 인간의 삶으로 결국 구현되는 것은 경제 현상이라고 다르지 않겠죠. 경제 분야 대표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연구원들이 문학과 역사학, 철학에 등장하는 경제 이야기를 소개하는 ‘인문학 속 경제’를 3주에 한 번씩 화요일마다 연재합니다.
“개인은 개성 발전에 비례하여 자신에게 더욱 가치 있는 존재가 되고, 타인에게도 더욱 가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다. 또 자신의 실존과 관련해서 삶이 더욱 충만해진다. 이처럼 각 단위의 삶이 충만할수록 그 단위로 구성된 집단의 삶도 더욱 충만해진다.”
존 스튜어트 밀 '자유론(On Liberty)', 1859
“개성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즉 ‘자유와 생활환경의 다양성’이다. 이 두 가지의 결합에서 ‘개성의 활력과 다양성’이 발생하며, 그것이 결합되어 ‘독창성’을 낳게 한다.”
빌헬름 폰 훔볼트 '국가행동의 한계(The Limits of State Action)', 1792
전제정치 vs. 자유주의 정치철학
17세기는 여러모로 격변의 시대였다. 한국의 병자호란(1636), 중국의 명·청나라 교체(1644), 그리고 일본의 에도 막부 성립(1603) 등이 모두 이 시기에 일어났다. 또 1649년 영국에서는 국왕이 처형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찰스 1세는 잉글랜드 의회와의 권력 투쟁으로 인한 잉글랜드 내전에서 패배하면서 처형됐다.
왕권과 의회의 대립이 지속된 17세기 영국의 혼란한 정치 상황에서 자유주의 정치철학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자유주의 정치철학은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권위주의적 독재에 대한 저항 속에서 형성됐기 때문에, 개인의 존엄성을 인정하고 국가에 대한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려는 정치적 사상이다. 따라서 정치적 자유주의에서는 개인 자유의 범위와 국가 권력의 제한 범위가 중요한 문제로 대두된다.
영국 권리장전(1689) 저자로도 잘 알려진 17세기 영국 존 로크(1632-1704)의 사상은 자유주의 정치철학의 중요한 기반을 이루고 있다. 그는 개인의 생명, 자유, 재산권은 신이 개인에게 부여한 자연법적 권리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는 것이 국가의 주요 목적이며, 국가는 개인의 권리와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권력을 행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로크는 권력을 입법부와 행정부로 분산시켜서 권력의 남용을 막고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의 이권분립론은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1748)'에서 현대적 모습의 삼권분립론으로 발전했다. 이런 존 로크의 철학은 미국의 독립선언서(1776년 발표)와 미국헌법(1789년 발효)의 기반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19세기 영국의 대표적인 자유주의 정치철학자인 존 스튜어트 밀(1806-1873)은 개인의 자유와 권리에 대한 이론을 발전시켰다. 그는 인간의 자유에는 보호받아야 할 세 가지 고유 영역이 있다고 주장했다. 첫째 양심과 사상의 자유이고, 둘째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방해받지 않을 행동의 자유이며, 마지막으로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어떤 목적을 위해 단결할 자유이다. 그에 따르면 이러한 자유가 전반적으로 존중되지 않는 사회는 그 어떤 통치형태라도 자유롭다고 할 수 없다. 그는 또한 자유로운 토론과 의견 교환을 통해 진리를 발견하고, 지식의 진보를 이루어 나가는 것이 개인의 발전과 민주주의에 중요하다고 믿었다. 밀은 국가 권력의 제한을 위해 권력의 분산, 자유주의적인 법적 체계, 개인의 자유를 보호하는 법적 제재 등을 강조했다. 이를 통해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최대한 보호하고, 국가의 권력을 제한함으로써 자유로운 사회를 구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봤다.
중상주의 vs. 자유주의 경제학
15세기 대항해시대를 통해 유럽에서는 상업이 급속하게 성장했다. 유럽 절대왕정 국가들은 식민지 무역 등을 통해 금·은과 같은 화폐를 축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를 위해 수출을 장려하고 수입은 제한하는 보호무역 정책을 채택했다. 이와 같이 국가의 부를 증진시키기 위한 국내 산업 육성과 보호무역을 통한 무역수지 흑자로 국내에 외환과 자본을 축적해야 한다는 경제사상을 중상주의라 한다. 16~18세기 서양은 중상주의라는 경제적 민족주의 시대였다.
이런 중상주의를 비판하고 자유주의 경제학을 처음으로 논리적이고 설득력 있게 제시한 사람이 애덤 스미스(1723-1790)이다. 그는 금·은을 국부라고 보았던 중금주의를 비판하고, 노동이 가치의 원천이며 그 가치의 향상이 국부의 증진이라는 노동가치설을 주장했다. 그는 개인이 경제의 주체이며 이들의 자유로운 경쟁을 통해 시장이 균형을 이뤄 나갈 수 있다는 자유시장 경제, 각 개인별 전문분야에서의 분업생산을 통한 생산성 향상, 국가 간 무역이 자국과 상대국 모두에 이점을 가져다준다는 자유무역을 주장했다. 그리고 정부의 역할은 공정한 법질서의 확립과 모든 불합리한 경제규제 철폐를 통한 개인의 자유로운 경제활동 보장에 그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이런 애덤 스미스의 자유주의적 경제학은 데이비드 리카도(1772-1823)의 국제무역 비교우위론으로 더욱 발전했다.
자유주의 쇠퇴 징후들
전제정치와 중상주의에 대항하여 발전해 왔던 정치적·경제적 자유주의는 인류의 번영에 크게 기여했다고 평가된다. 그러나 최근 이러한 자유주의가 쇠퇴하고 있다는 징후들이 발견된다. 2011년 미국 뉴욕에서는 1% 경제 엘리트의 탐욕이 가져온 2007~2008년 세계금융위기 피해가 나머지 99%에게 돌아갔다며 월가를 점령한 시위가 시작됐다. 이 ‘월가를 점령하라’는 시위는 소득 양극화와 불평등 문제를 수면 위에 올려놓으며, 미국을 넘어 영국 런던, 프랑스 파리, 독일 베를린 등 82개국 900여 개 도시로 확산됐다. 또 정치의 영역에서는 독재정부의 등장으로 인해 사상과 언론의 자유가 퇴조되는 움직임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그리고 미중 갈등의 여파로 인한 미국과 EU의 보호주의적 산업정책도 경제적 자유주의 관점에서 매우 염려되고 있다.
물론 이런 자유주의 쇠퇴 징후들은 과거에도 있었다. 유럽 대륙 전반에서 일어난 1848년 대규모 혁명 움직임은 통치계층의 부패와 불평등, 경제적 고통, 국민주권의 요구, 민주주의적 움직임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발생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리고 같은 해 발표된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공산당 선언'은 19세기 후반부터 확산된 유럽의 사회주의 기초가 됐다. 19세기 후반 미국의 급속한 경제번영과 독과점 심화로 인한 도금시대(Gilded Age), 1914~1918년 제1차 세계대전과 1917년 제정 러시아의 붉은 혁명, 1929년 대공황, 독일 나치즘과 이탈리아 파시즘 확산, 1939~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이 모든 사건이 18세기 영국에서 시작한 정치적·경제적 자유주의의 퇴조를 가져오게 된다. 그러나 이런 움직임은 1930년대 미국의 뉴딜정책과 존 메이너드 케인스(1883-1946)의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 이론(The General Theory of Employment, Interest, and Money) 1936', 프리드리히 하이에크(1899-1992)의 '노예의 길(The Road to Serfdom), 1944', 밀턴 프리드먼(1912-2006)의 '자본주의와 자유(Capitalism and Freedom), 1962'와 '선택할 자유(Free to Choose), 1980' 등의 논의를 거쳐 1980년대 신자유주의의 확산으로 이어졌다.
서두에 인용한 훔볼트(1767-1835)와 밀의 지적과 같이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이 가능한 자유는 개성의 활력과 다양성을 결합시켜 개인의 독창성을 증진시키고, 삶을 더욱 충만하게 만들어 인류 문명의 발전을 가져온다. 자유주의에 대한 가장 큰 위협은 ‘권력의 집중을 통한 독재의 등장’에서 온다. 따라서 자유주의를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정치적 독재를 막기 위한 사상·언론·출판의 자유 보장 및 ‘법 앞의 평등’ 실현, 그리고 경제적 독재를 막기 위한 독과점법의 강력한 집행이 필요할 것이다. 또한, 자유주의의 근간인 생각의 다양성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밀이 '자유론'에서 지적한 것과 같이, 개인 판단의 독단과 오류를 방지하기 위해 열린 사고의 자세로 반대되는 주장과 적극적이고 활발하게 토론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열린 사고를 위해 프랜시스 베이컨(1561-1626)이 '신기관(Novum Organum), 1620'에서 지적한 대로, 열린 사고를 막는 4대 우상으로부터 탈피하기 위한 개인적 노력과 함께 귀납적이고 과학적인 사고를 위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송영관 KDI 산업ㆍ시장정책연구부 선임연구위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