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경림 KT 차기 대표이사 후보가 선임을 확정 짓는 주주총회를 나흘 앞둔 27일 사퇴했다. 이에 따라 KT는 차기 대표 공모 절차를 다시 밟아야 해, 짧아도 5월까지 수장 공백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민영화 이후 뚜렷한 대주주가 없는 KT는 대표 교체기마다 크고 작은 내홍을 겪었지만, 이번처럼 혼란스러운 적은 없었다. 지난해 11월 초 구현모 현 대표가 연임 도전을 선언하자, 최대 주주(지분 10%)인 국민연금이 나서 경선을 요구했다. 경선을 거쳐 이사회에서 구 대표를 차기 대표로 선정한 후에는 국민연금이 주총에서 반대 의결권 행사를 천명하고 여권에서 비판이 이어졌다. 결국 올해 2월 대표이사 선임 재추진 절차를 거쳐 이달 7일 윤 후보가 내정됐으나, 윤 후보에 대해서도 여당 의원들이 ‘구현모의 아바타’라며 노골적으로 거부감을 드러냈다. 이어 윤 후보가 영입한 사외이사 후보와 계열사 대표가 줄줄이 사의를 표명하면서 윤 후보를 고립시켰고, 검찰까지 수사에 나서자 결국 윤 후보가 두 손을 든 것이다.
이렇게 KT는 대표 선임을 둘러싼 정치권의 노골적 개입으로 5개월을 헛되게 보냈으며, 이런 혼란은 올 상반기 내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그사이 KT 주가는 약세가 이어지며 올해에만 8% 가까이 떨어졌다. 같은 기간 코스피는 8.5% 상승했다. KT 주가가 추락하자,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와 소액 주주들이 나서 윤 후보의 대표 선임 찬성을 공개 표명하기도 했다.
여권이 KT 사장 선임에 개입하며 내세운 명분은 ‘KT 내부 이권 카르텔 해체’와 ‘지배구조 개선’이다. 하지만, 그 명분을 실현할 능력을 갖춘 차기 대표 찾기는 더 어려워졌다. 외부 후보는 정치권 입김이 작용했다는 의심을 피하기 힘들고, 사내 후보는 여권의 압박을 이기기 힘든 상황에서 어떤 유능한 인재가 대표직을 맡겠다고 나서겠는가. 원칙과 절차를 무시한 정치권의 민간 기업 대표 인선 개입은 명분도 실리도 모두 잃고 말았으며, 그 피해는 고스란히 KT와 주주 고객의 몫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