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8000개 지명 실린 '동여도' 정보 보완 수록
조선의 지리학자인 김정호가 제작한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 목판본 가운데서 내용이 가장 자세한 판본 1점(환수본)이 일본에서 한국으로 돌아왔다. 환수본은 1864년 제작된 대동여지도 목판본(갑자본)에 채색 필사본 지도인 동여도(東輿圖)의 상세한 지리 정보를 필사한 것이다. 대동여지도와 동여도의 정보가 함께 담긴 지도는 이번에 처음 확인됐다.
문화재청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재단)은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환수본을 공개했다. 이 지도는 색인 역할을 하는 목록(1첩)과 지도(22첩) 등 모두 23첩으로 구성된 병풍식 지도첩이다. 각 첩의 크기는 세로 30㎝, 가로 40㎝에 불과하지만 첩들을 모두 펼치고 이어 붙여 늘어놓으면 조선 전역이 담긴 지도(가로 4m, 세로 6.7m)가 된다. 조선을 남북으로 120리 간격으로 구분해 22층으로 만든 것이다. 일반적 대동여지도는 목록이 없어 22첩으로 구성됐다. 재단은 지난해 7월 일본의 한 고서점이 환수본을 소장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올해 2월 환수본을 매입, 3월 17일 한국으로 들여왔다.
대동여지도는 조선의 지리학자이자 지도 전문 출판자인 김정호(1804~1866년 추정)가 제작한 조선의 전국 지도다. 대동여지도는 일반적으로 목판으로 제작됐는데 환수본을 제외하면 국내에 21점, 해외에 14점이 남아 있다. 국내 판본은 제작연도에 따라서 1861년 판본(신유본) 13점과 갑자본 4점, 미상 판본 4점이다.
다만 대동여지도는 제작 기법의 한계 때문에 그 이전에 제작된 필사본 지도에 담겼던 지명과 주기 가운데 많은 수가 생략됐다. 주기는 지도의 여백에 표시한 영토의 역사, 지도 제작법, 지도 사용법 등의 정보를 말한다. 김정호가 대동여지도를 만들면서 참고했다고 추정되는 동여도에는 조선시대의 교통로, 군사시설 등 지리 정보와 약 1만8,000개에 달하는 지명이 실려 있지만 동여도는 필사본 지도여서 현재 4점만 남아 있다.
환수본에 수록된 지명은 약 1만1,600개로 동여도보다는 적지만 동여도의 주기 내용은 대부분 기록돼 있다는 점에서 기존 대동여지도와 구별된다. 고을의 통계나 역사, 해로, 육로 등의 정보가 상세하게 기록돼 있다. 문화재청은 목판본의 한계를 보완한 첫 사례로 평가했다. 대동여지도가 보급되면서 형태가 변용됐다는 것이다. 김기혁 부산대학교 지리학과 명예교수는 "대동여지도는 목판으로 만들었으니 모두 똑같이 생겼을 것으로 여겨지지만 남아 있는 판본 35점의 구성, 채색 등이 모두 다르다. 모든 지도가 개별성을 갖고 있다"면서 "목판으로 첩들을 제작해 놓고 각 첩은 주문자의 요구대로 했을 수 있다고 추정한다"고 설명했다.
대표적 차이점을 살펴보면 백두산 일대가 묘사된 제2첩의 경우 1712년 백두산에 세워진 조선과 청나라의 국경선을 표시한 비석(백두산정계비)과 군사 시설 사이의 거리가 필사돼 있다. 또 울릉도 일대가 묘사된 제14첩에는 울릉도로 가는 배의 출발지가 적혀 있다. 다른 대동여지도 판본에는 없는 내용들이다. 또 지도 제작 목적, 중요성을 밝힌 글인 지도유설이 다른 대동여지도에는 1첩에 간인돼 있으나, 이번 유물에는 지도의 빈 공간이 표시돼 있고 내용도 동여도의 것과 같다. 이 밖에 다른 대동여지도에는 2면에 걸쳐 인쇄된 강원도 삼척부와 울릉도 일대가 1면으로 축소돼 배치된 점은 동여도의 형식을 따른 것으로 보인다.
환수본에 동여도 내용을 필사한 사람이 누구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당시로서는 고급 정보였던 지리 정보를 잘 아는 권력층에 의해서 지도가 제작되고 사용됐을 것으로 보인다. 김 교수는 "두 지도를 모두 접할 수 있는 상당히 높은 지식이 있는 사람이 필사를 했을 것"이라고 추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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