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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살균제 '천식' 17세 피해자 "골리앗 옥시 상대 첫 승소 기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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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가습기살균제 '천식' 17세 피해자 "골리앗 옥시 상대 첫 승소 기다려"

입력
2023.04.03 04:00
수정
2023.04.03 17:15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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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수양, 옥시 상대 4년간 법정싸움
옥시에 손배소 제기 아버지 인터뷰
"몸 약한 딸에 쓴 살균제가 독이 돼"
정부 "살균제가 천식 유발" 인정에도
옥시 조정안 거부 인과관게 인정 안해
국내 최대 로펌과 싸움 "꼭 이겨야죠"

지난달 28일 옥시레킷벤키저의 가습기살균제로 천식 진단을 받은 신지수(17·가명)양이 서울 모처 자택에 마련된 병상에 누워 있다. 이한호 기자

지난달 28일 옥시레킷벤키저의 가습기살균제로 천식 진단을 받은 신지수(17·가명)양이 서울 모처 자택에 마련된 병상에 누워 있다. 이한호 기자

"처음엔 폐 질환이 아니라고 합의를 거부했어요. 대한민국 정부가 가습기살균제 사용으로 천식이 발생한 게 맞다고 인정했는데, 옥시레킷벤키저(이하 옥시)가 인정을 안 한 겁니다. 이 논리가 깨질 것 같으니 이번엔 딸이 천식 기왕증이라고 주장합니다. 이 주장도 대한의사협회 감정과 1차 병원 의사 소견서로 깨졌어요. 이번엔 어떤 주장을 할까요. 살균제 구매 영수증이 조작됐다고 할까요?"

옥시를 상대로 4년째 손해배상 청구소송 중인 신정훈(가명)씨는 스스로 '다윗' 같다고 했다. 옥시가 고용한 국내 최고 로펌 김앤장이 '골리앗'이라면 자신이 다윗이라는 것이다. 딸 지수(17·가명)가 2018년 12월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로 인정받아 구제급여를 받은 뒤 신씨는 옥시를 상대로 합의를 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옥시는 천식은 가습기살균제 피해 보상 대상이 아니란 이유로 합의를 거부했고, 결국 소송으로 이어졌다.

△살균제 성분(PHMG)이 천식을 유발했는지 △실제 지수가 살균제 때문에 천식이 발병했는지 여부가 최대 쟁점으로, 사실상 법원 선고만 남은 상황이다. 신씨가 옥시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 이길 경우 살균제 사용으로 천식 피해를 배상받은 첫 승소 사례가 된다. 선고 금액이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조정위원회가 지난해 4월 내놓은 피해보상 합의안보다 많을 경우 의미는 더욱 크다. 옥시와 애경의 거부로 중단된 조정안이 다시 논의될 경우, 기업들은 배상액을 다투는 것보단 기존 조정안을 선택하는 게 더 합리적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지난달 28일 옥시레킷벤키저의 가습기살균제로 천식 진단을 받은 신지수(17·가명)양이 서울 모처 자택에 마련된 병상에 누워 있다. 이한호 기자

지난달 28일 옥시레킷벤키저의 가습기살균제로 천식 진단을 받은 신지수(17·가명)양이 서울 모처 자택에 마련된 병상에 누워 있다. 이한호 기자


뇌병변 장애 지수, 가습기살균제 피해 집중

한국일보는 지난달 28일 서울 영등포구 신씨 자택 거실에서 1시간 30분간 인터뷰를 진행했다. 지수는 지난해 8월 원인 모를 폐 낭종으로 기관지절제 수술을 받아 누군가의 도움이 없으면 움직이지 못했다. 어쩌면 지수가 하고 싶은 말이 가장 많을 텐데, 인터뷰에는 참여할 수 없었다.

지수는 태어날 때부터 몸이 조금 약했다. 2006년 4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뇌전증을 진단받았다. 그렇다고 지금처럼 누워 있지만은 않았다. 집에서 혼자 기어 다니고 몸을 가눌 수 있었다. 생후 만 1년이 조금 지났을 때 사진만 보더라도 여느 아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2009년 4월 세브란스병원에서 폐렴과 천식 의심 증상을 진단받고 중환자실 입원 치료를 받으면서 몸 상태는 급격히 나빠졌다. 이때 처음으로 위루관(위장관에 음식물을 주입할 수 있도록 연결한 관)을 달았다. 신씨는 "뇌병변 장애까지 있는 지수가 위루관을 통해 영양분을 섭취하다보니 뇌 운동 기능이 현격히 줄었을 것"이라며 "인지 능력도 더 떨어졌을 거고 발달이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땐 지수가 왜 폐 질환과 천식으로 고통을 받는지 알 수 없었다. 병원에서도 "알 수 없다"고만 했다. 거의 매달 폐 질환과 천식으로 병원을 오가는 사이 2014년 2월에는 폐에 물혹이 생겨 오른쪽 폐 일부를 절제해야 했다. 그러다 2016년 4월 옥시를 비롯한 관련 기업들이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보상안을 논의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신씨는 '아차' 싶었다. 지수가 어렸을 때 자신이 직접 가습기를 청소했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옥시레킷벤키저의 가습기살균제로 천식 진단을 받은 신지수(17·가명)양의 아버지가 지난달 28일 서울 모처 자택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이한호 기자

옥시레킷벤키저의 가습기살균제로 천식 진단을 받은 신지수(17·가명)양의 아버지가 지난달 28일 서울 모처 자택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이한호 기자


어렵게 구한 영수증… 2018년 12월 천식 피해 '인정'

2017년 1월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특별법'이 제정되면서 신씨도 피해구제 신청을 준비했다. 관건은 당시 구매했던 영수증이었다. 자주 다녔던 집 근처 주요 대형마트에 가습기살균제 구매 영수증을 달라고 요청했다. 대형마트 대부분은 영수증 폐기 등을 사유로 '제공불가' 답변이 왔지만, 유일하게 롯데마트에서 제공 가능하다는 회신을 받았다. 이를 토대로 2009년 4월부터 2013년 4월까지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했다는 사실을 주장할 수 있었다. 2009년 4월 둘째를 출산한 아내가 임신 중이었을 때도 신씨는 살균제로 가습기 청소를 한 기억이 뚜렷한 만큼, 구매 시점은 2009년 전으로 추정되지만, 해당 영수증은 없어 아쉬운 대로 받아들여야 했다.

신씨는 먼저 폐 질환에 대해 피해구제를 신청했지만, 2018년 3월 폐 질환에 대해선 인정받지 못했다. 정부는 폐 섬유화(폐가 딱딱해지는 증상) 위주로 가습기살균제 피해를 인정했기 때문이다. 신씨는 질환을 천식으로 바꿔 다시 신청했다. 결국 지수는 2018년 12월 제11차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위원회로부터 '인정' 통보를 받았다. 2019년 11월 중등도장해로 피해등급도 나왔다. 인정률이 극히 낮았던 걸 고려하면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지난달 28일 옥시레킷벤키저의 가습기살균제로 천식 진단을 받은 신지수(17·가명)양이 서울 모처 자택에 마련된 병상에 누워 있다. 이한호 기자

지난달 28일 옥시레킷벤키저의 가습기살균제로 천식 진단을 받은 신지수(17·가명)양이 서울 모처 자택에 마련된 병상에 누워 있다. 이한호 기자


옥시 '금융치료' 가능할까…국내 최고 로펌과 다투는 건 부담

구제급여를 받을 수 있어 신씨는 딸의 치료비 부담을 덜 수 있었지만, 기가 막히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건강한 아이들보다 몸이 약한 지수를 위해 유해균에 노출되는 걸 막겠다며 살균제를 썼는데 오히려 독이 됐으니 말이다. 신씨는 "지수가 힘든 병원 생활을 견디면서 당연히 보장받아야 할 일상과 발달, 모든 게 멈춰버렸다"며 "기저질환이 있다고 보상 범위를 축소할 게 아니라 더 보상해줘야 맞다"고 강조했다.

신씨는 불법행위를 저지른 옥시에 책임을 물리고 싶었다. 옥시를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 막대한 위자료를 물려 '금융치료'도 해보고 싶었다. 그러나 옥시는 지수가 폐 질환이 아니란 이유로 합의를 거부했다. 신씨는 결국 2019년 12월 옥시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원료 제조사업자인 한빛화학과 정부까지 피고에 포함시켰다. 신씨는 김앤장과 다퉈야 하는 게 부담스럽고 돈도 많이 들었지만, 이것만이 지수의 억울함을 알릴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래픽=김문중 기자

그래픽=김문중 기자


배상액이 조정안보다 많으면 의미 커

소송은 지수에게 유리한 상황이다. 옥시는 가습기살균제(PHMG)와 천식과의 인과관계 자체를 부정하고 있지만, 2021년 5월 정부기관인 안전성평가연구소에서 인과관계가 있다는 내용의 논문이 나오면서 힘이 실렸다. 정부가 앞서 천식을 가습기살균제 질환으로 인정했기에, 신씨는 환경부 등에서 "천식을 인정한 건 과학적 근거가 충분하다"는 취지의 답변을 받았다.

지수의 천식은 기왕증이라는 옥시의 주장도 힘을 잃고 있다. 대한의사협회 감정평가원에선 진료기록부를 검토해 '신규 천식'임을 인정했고, 지수가 다니던 1차 병원까지 신규 천식이라고 판정했다. 하지만 옥시 측은 사(私)감정을 통해 반박하고 있는 상황이다.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은 "법원이 천식과 가습기살균제 간의 인과관계를 처음으로 인정하는 판결을 내리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실질적 의미를 지니려면 지난해 조정위에서 합의한 보상액보다 많은 배상액을 선고해야 한다"며 "선고액이 조정안보다 낮으면 피해자들 입장에선 소송을 제기해 보상받는 것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당시 조정안에 따르면 생존 피해자는 연령이나 피해등급 등에 따라 2,500만~5억3,500여만 원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옥시와 애경이 조정안을 거부하면서 실제 피해보상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성원 기자
조소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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