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 돈 내고 출근 안 하는 노동자들
생활용품 판매 등 사적 활동으로 수익
"2017년 이후 보건 분야도 배급 끊겨"
텃밭에서 직접 경작하면 먹거리 확보
"북한에 살던 2018년 도시건설여단 소속이었는데 수익금을 내면 출근하지 않아도 됩니다. 대신 공업품 장사를 했는데 월급여인 30위안(한화 약 5,600원)보다 훨씬 많이 벌었죠."
통일부의 북한인권 설문에 한 탈북자의 증언
북한 체제의 근간인 배급제가 사실상 붕괴된 것으로 나타났다. 당국이 운영하는 공장, 농장 등에서는 끼니를 때울 만한 급여조차 받지 못해 저마다 가욋벌이에 나서는 것으로 파악됐다. 벌이가 신통치 않으니 곳곳에서 뇌물을 요구하는 통에 주민들의 삶은 더욱 피폐해지고 있다.
이처럼 고단한 북한의 현실은 통일부가 30일 내놓은 '2023 북한인권보고서'에 담겼다. 이에 따르면 주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이윤을 추구하며 사적인 경제활동에 나섰다.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이후 '투잡'을 뛰지 않으면 먹고 살기 어려울 만큼 경제사정이 악화했기 때문이다.
특히 당국이 정해준 직장에 출근하지 않는 대신 상납금으로 때우는 노동자도 등장했다. 한 탈북민은 "직장에 매달 30위안의 수익금을 납부하고는 골목 등에서 생활용품을 파는 '또아리 장사'를 했다"면서 "직장 다니는 것보다 훨씬 벌이가 낫다"고 말했다. 오징어잡이 그물을 만들거나 결혼식·돌잔치 촬영 영상을 편집하며 돈을 버는 경우도 있었다. 진료소 소속 의사는 오전 근무만하고 오후에는 따로 왕진을 돌며 돈을 벌기도 했다.
형편없는 식량배급 탓에 북한 주민들은 먹을 권리를 보장받지 못했다. 세계기아지수에 따르면 북한 인구의 41.6%가 영양부족을 겪고 있다. 양강도의 한 진료소에서 일했던 탈북민은 "2015~2016년 보건·교육 분야 종사자는 배급 우대 대상이라 매달 젖은 옥수수 6㎏을 받았지만 그 이후로는 배급이 아예 없었다"고 말했다. 월급은 북한돈으로 2,450원이었는데 각종 기금과 분담금을 빼고 나면 실제 주머니에 들어오는 돈은 1,000원이 안됐다고 한다. 사탕 10개를 살까 말까한 돈이다. 그나마 군부대 등 체제보위집단과 평양시의 배급 사정은 상대적으로 나은 편이었다.
윤여상 북한인권정보센터 소장은 “코로나19 이후 탈북민이 급감하면서 이번 보고서에 최근 식량난은 반영하지 못한 것으로 안다”면서 “실제 북한 사정은 더 심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검사 뇌물 흔히 받아…병원 진료 받으려 인맥·뇌물 동원"
당국에 기대할 게 없으니 주민들은 직접 경작하며 입에 풀칠을 했다. 야산에 화전을 일궈 경작하는 뙈기밭과 텃밭이 흔하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행위는 단속 대상이다. 염소, 돼지를 사육하거나 산골에서 약초와 나물을 뜯어다 팔아 부족한 식량을 확보하기도 했다.
권력기관 종사자들은 부족한 월급을 뇌물로 채우려 주민들을 핍박했다. 탈북민 증언에 따르면 북한에서는 판사보다 검사가 재판을 주도하는데 이들은 흔히 뇌물을 받는다고 한다. 또 주소지가 아닌 곳에서 숙박하다가 적발되면 처벌받는데, 이때도 단속원에 뇌물을 주고 무마한 사례가 있었다. 도 인민병원이나 평양의 중앙병원에서 진료를 받으려면 인맥과 뇌물을 동원해야한다는 증언도 여럿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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