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우원씨, 유족·피해자들 만나 무릎꿇어
"우리 일가 민주화운동 왜곡된 교육받아"
"역사의 죄인… 죽을 때까지 뉘우치겠다"
유족들 "용서와 화해 향한 큰 결심 환영"
전두환 전 대통령의 손자 우원씨가 31일 5·18 기념문화센터 리셉션 홀에서 유족·피해자들을 끌어안고 사과하고 있다. 광주=김진영 기자
“5ㆍ18은 다신 있어선 안 될 대학살입니다. 그리고 그 주범은 제 할아버지 전두환입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 손자 우원(27)씨가 31일 5ㆍ18민주화운동 유족들에게 무릎을 꿇고 사죄했다. 그러자 “43년 만에 사과를 들었다”는 오열이 터져 나왔다. 일부 유족은 박수로 학살자 후손의 사죄를 받아들였다.
전씨는 이날 오전 광주 서구 5ㆍ18 기념문화센터 리셉션 홀에서 민주화운동 유족 및 피해자들과 만났다. 그는 “제 할아버지 전두환씨는 5ㆍ18 앞에 너무 큰 죄를 지은 죄인”이라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민주주의의 발전을 도모하지는 못할망정 군부 독재에 맞선 영웅들을 군홧발로 짓밟았다”고 비판했다.
반성도 이어졌다. 전씨는 “저와 제 일가족은 추악한 죄를 짓고도 피해가 올 것이 두려워 외면해 왔다”며 “죽어 마땅한 죄인인 저를 따뜻한 마음으로 받아주고 사랑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발언 도중 목이 멘 듯 자주 숨을 고르는 모습도 목격됐다.
성장 과정에서 5ㆍ18 민주화운동에 대해 왜곡된 집안 교육을 받은 사실도 털어놨다. 그는 “어렸을 때 (5ㆍ18에 대해) 물어본 기억이 난다”면서 “민주화운동은 폭동이고, 우리는(전씨 일가) 피해자이며 할아버지는 영웅인데, 오히려 안 좋게 얘기한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광주를 직접 찾은 이유에 대해선 “할아버지의 은닉 재산은 사회구조상 처벌받을 수 없기 때문에 가족 구성원인 저라도 사죄를 드리러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죽을 때까지 회개하고 잘못을 뉘우치는 마음으로 살아가겠다”는 다짐도 곁들였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손자 우원씨가 31일 광주 망월동 5‧18민주묘지를 찾아 헌화하고 있다. 광주=김진영 기자
전씨의 사과를 들은 5ㆍ18 민주화운동 유족 대부분은 울음을 터뜨렸다. 당시 학생시민군으로 활동한 고 문재학 열사의 어머니 김길자씨는 “이런 결정을 하기까지 얼마나 두렵고 고통이 컸을지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면서 “광주를 제2의 고향처럼 여기고 얽힌 실타래를 풀어가는 심정으로 화해의 길로 나아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1980년 상무대에 끌려가 고문을 받은 김관씨는 “20대 초반 겪은 상처로 예순 살이 넘은 지금까지도 제 인생은 존재하지 않는다”며 “5ㆍ18 유공자들 역시 모두 정신적 트라우마와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어 “저희는 항상 화해와 용서로 여러분의 손을 잡아줄 준비가 돼 있다. 오늘을 계기로 많은 분들이 나와서 진실규명에 최선을 다해주길 바란다”고 덕담했다. 기자회견을 마친 전씨는 피해자들을 끌어안았다. 일부 유족에게는 무릎을 꿇고 큰절도 올렸다.
전씨는 행사 후 광주 망월동 5ㆍ18민주묘지도 찾아 첫 희생자 김경철 열사, 12세 나이로 계엄군 총에 맞아 숨진 전재수군 묘와 행불자 묘역을 차례로 참배했다. 방명록에 “저라는 어둠을 빛으로 밝혀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민주주의의 진정한 아버지는 여기에 묻혀 계신 모든 분들입니다”라는 글귀도 남겼다.
참배를 끝낸 전씨는 5ㆍ18 당시 계엄군이 쏜 총탄의 흔적이 남아 있는 전일빌딩과 옛 전남도청을 방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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