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첩첩산중 가루쌀]
가공업체 "밀가루 대체 부적합" 판정
제과 장인 "가루쌀 특성 오해 때문"
정부 "연내 가루쌀라면 등 시제품 개발"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신의 선물’이라며 밀가루 대체 가능성을 높이 평가한 가루쌀이 정작 정부가 의뢰한 가공적합성 평가에선 밀가루 대체 ‘부적합’ 판정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쌀 공급과잉 문제를 해결하고자 정부가 추진하는 가루쌀 정책이 자리 잡으려면 부족한 가공적합성을 상쇄할 연구개발(R&D)과 정책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3일 한국일보가 입수한 ‘분질미(가루쌀)의 제분 특성과 품목별 가공특성 보고서’를 보면, 가루쌀로 식빵과 단과자빵, 만두피 등을 만들어 본 민간 업체들은 밀가루를 대체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이번 평가는 지난해 6월 농식품부 의뢰로 대한제과협회·CJ제일제당·SPC 등이 참여했다.
농식품부가 임기 내 재배면적을 420배 늘리기로 한 가루쌀(바로미2)로 식빵과 바게트를 만든 대한제과협회는 “가루쌀로 만든 빵은 팽창이 적어 가공하기 부적합하다”고 밝혔다. 앙금빵·크림빵 등 빵집에서 수요가 많은 단과자빵 제조 역시 가루쌀은 같은 평가를 받았다.
유통기한과 경제성에 대한 우려도 제기됐다. 가루쌀로 카스텔라를 만든 SPC는 “노화 진행이 빨라 유통기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보고했다. 노화는 빵이 단단해지고 부스러지기 쉬운 상태로 변하면서 맛과 향이 감소하는 현상이다.
밀가루에 가루쌀을 일부 비율로 섞어 만두피를 제조한 CJ제일제당은 “가루쌀을 포함한 반죽으로 만든 만두피는 신장성이 부족해 잘 찢어진다”고 평가했다. 신장성은 반죽이 끊어짐 없이 길게 늘어나는 성질이다. 이 업체는 “가루쌀 함량을 늘리려면 신장성 보완제를 넣어야 해 원재료 비용이 오르게 된다”며 “가루쌀 함량 증대는 비효율적”이라고 밝혔다.
다만 이 같은 혹평은 가루쌀 특성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제과기능장 홍동수 홍윤베이커리 대표는 “가루쌀은 물을 많이 흡수하기 때문에 밀가루와 같은 양의 물을 넣으면 반죽이 되(물기가 적어 빡빡해) 빵이 부풀지 않고 노화도 잘된다”고 설명했다. 생소한 가루쌀이 연착륙하려면 맞춤형 가공법 개발 등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얘기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올해 가루쌀 제품개발 지원 사업에 15개 업체가 참여해 연내 라면·과자·쌀빵 등 19개 시제품 개발을 마치기로 했다”며 “가루쌀로 만들기 적합한 가공식품부터 확대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현재 100㏊ 안팎인 재배면적을 임기 내 4만2,100㏊까지 늘려 2026년엔 가루쌀 20만 톤(지난해 475톤)을 생산, 밀가루 수요의 10%를 대체한다는 계획이다.
가루쌀(분질미)은
2019년 농촌진흥청이 개발한 가루쌀(바로미2)은 밀처럼 바로 빻아 가루를 만들 수 있는 쌀 품종이다. 2012년 개발한 가루쌀 '수원542'를 개량했다. 전분 구조가 밀가루처럼 둥글고 성글어 물에 불리지 않고도 건식 제분이 가능하다. 제분비용이 덜 들기 때문에 쌀 제품화에 효율적일 것으로 정부는 보고 있다. 생육기간이 일반 벼보다 20~30일 짧아 생산비가 적게 들고 밀·조사료와 이모작이 가능하다는 점도 장점이다. 정부는 가루쌀로 밀가루의 10%를 대체, 쌀 공급과잉 문제를 해결하고 낮은 식량자급률도 높인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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