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해나 지음, '빛을 걷으면 빛'
편집자주
'문송하다'는 말도 있지만, 그래도 마음을 풍요롭게 하는 건 인문학적 교양입니다. '문송'의 세계에서 인문학의 보루로 남은 동네책방 주인들이 독자들에게 한 권의 책을 소개합니다.
성해나 작가의 단편소설집 '빛을 걷으면 빛' 중에서 '화양극장'을 읽다가 내 고향이자 서점이 있는 곳, '상주'라는 지명을 발견했다. 심지어 상주에 대한 설명이나 묘사가 꽤 구체적이다. 맥도날드에 가려면 근처 도시인 김천까지 가야 한다는 것도 여전히 유효하고, 녹원빌라도 실제로 존재한다. (소설과는 달리 이젠 스타벅스와 설빙도 생겼고, 여러 개성 있는 카페도 많이 생겼다.) 놀랍고, 반갑고, 이 젊은 작가와 상주는 무슨 관계일까 궁금했지만, 소심한 서점지기는 그저 추측만 할 뿐이다.
소설의 중심인물은 임용고사에 여덟 번 낙방한 후 고향인 상주로 내려온 서른 즈음의 경과 과거 스턴트 배우였던 영화광 할머니 이목씨다. 경과 이목씨는 상주에 하나뿐인 단관극장인 화양극장에서 영화를 보면서 만나게 된다. (실제로 화양극장은 상주가 아닌 서울의 마지막 단관극장이었다.) 이들은 영화를 본 후 영화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고, 시간이 지나면서는 속내까지 털어놓는 관계가 된다.
"전 나이 들어도 지금이 그립지 않을 것 같아요. 지금까지 내 인생은 거하게 말아먹은 영화 같거든요." (65쪽, 경의 말)
포기와 좌절 후 체념 상태인 경에게 이목씨는 섣부른 위로나 조언 대신 자신이 젊은 시절 출연했던 영화를 함께 보자고 한다. 그러고는 젊은 시절의 자신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을 경에게 털어놓는다.
"저 시기의 나는 참 위태로웠어요. 다시 저때로 돌아간다면… 나는 결코 내 마음을 속이지 않을 거예요. 속 편히 웃고 울고 싸우고, 견디지 않을 거예요." (69쪽, 이목씨의 말)
가족들로부터 은근히 '사람 구실'을 요구받던 30대의 경과 여성 감독은커녕 남성 스턴트 배우도 희귀하던 젊은 시절에 액션 대역을 하다 부상을 입어도 괜찮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던 70대 이목씨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가족들에게 '남들처럼 살라'는 말을 들은 것.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들은 가혹한 말은 그 어떤 말보다 상처가 큰 법이다. 몸에 난 상처야 연고도 바르고 밴드도 붙일 수 있지만 마음에 난 상처는 어찌해야 할까. 결국 상처 난 마음을 일으켜 주는 것은 비슷한 상처를 이미 통과해 온 또 다른 마음이라는 것을 이 소설로 확인했다. 마음이 마음을 사려 깊게 들여다보는 법, 나는 그걸 이목씨에게 또 한 번 배웠다.
나는 경이 되어 (실제로도 내 이름의 마지막 글자는 경이다) 이목씨를 바라본다. 손녀뻘인 경에게 이래라저래라 함부로 말하지 않고 자신과 동등한 존재로 대하려는 태도, 상대의 심란한 표정을 살피고는 더 캐묻지 않고 따뜻한 국물을 먹으러 가자는 담담한 위로의 방식. 나는 그런 이목씨가 좋았다.
이목씨는 말했다.
"어둠을 걷으면 또 다른 어둠이 있을 거라 여기며 살았는데 그게 아니었다고, 어둠을 걷으면 그 안에는 빛이 분명 있다고."
"나는 이제 살아내지 않고, 살아가고 싶어요. 견디지 않고 받아들이면서."
"경은 어떤 삶을 살아가고 싶어요?" (91~92쪽)
상주 어딘가에 실제로 이목씨 같은 할머니가 살고 계실까 싶어 극장을 갈 때나 길을 걸을 때, 혹은 한적한 골목의 어느 집 앞을 지날 때 두리번거리곤 한다. 그러다 문득 깨닫는다. 이미 내 곁에는 많은 이목씨들이 존재하는구나. 기운 빠진 표정을 살피곤 슬며시 건네는 갖가지 방식의 위로들, 세대를 넘어 건네는 다정들, 먼 곳에서 전해지는 뭉클한 안부들. 좋은 것을 받으면 좋은 것으로 나누고 싶어진다. 여전히 위로에 서툰 나 같은 사람도 언젠가는 소설 속 이목씨처럼, 내 곁의 이목씨들처럼 누군가를 담담히 위로할 수 있는 날이 올까. 자신이 살아온 삶, 그 자체가 누군가에겐 위로가 되기도 한다. 그러려면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오롯서점
- 이혜경 서점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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