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섬에 가다] (21) 충남 서산 웅도
'경운기 질주' 가로림만 너른 갯벌 유명
'수중' 유두교 철거… 다리로 연결 계획
'인생샷 찍자' 관광객 몰리고 펜션·카페도
바지락 감소 등 생태계 오염 우려도 제기
"난개발 원산도 반면교사 삼아야" 목소리
편집자주
3,348개의 섬을 가진 세계 4위 도서국가 한국. 그러나 대부분 섬은 인구 감소 때문에 지역사회 소멸 위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한국일보는 생존의 기로에서 변모해 가는 우리의 섬과 그 섬사람들의 이야기를 격주로 소개합니다.
“도대체 어딜 봐서 곰이라는 건지!”
곰을 닮아 웅도(熊島)로 불린다는 충남 서산 대산읍 웅도리. 그러나 외지인은 물론 마을 주민조차 고개를 갸웃거린다. "여기 곰이 사는 것두 아닌데유.” 충남도는 물론 서산시도 웅도의 매력을 알릴 사진 하나 갖고 있지 않다. 행정안전부와 한국관광공사가 나서서 ‘휴가철 가고 싶은 섬’ 리스트에 올려 봤지만, 여태 제대로 된 사진조차 찾을 수 없다. 큰 관심을 받는 섬은 아니라는 얘기다. 그랬던 웅도에 최근 뭍사람들 발길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섬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1일 웅도를 찾았다.
잠수교로 연결된 섬
섬으로 들기 전 객을 먼저 맞는 것은 가로림만의 너른 갯벌이다. 몇해 전 대박을 터뜨린 한국관광공사 홍보영상 ‘머드맥스’가 촬영된 곳이다. 3월이면 바지락을 캐기 시작하고, 갯벌 위로 경운기가 질주하는 모습이 장관이라는 얘기에 기대를 잔뜩 품었지만 허탕이었다. 갯벌은 텅 비어 있었고 바지락을 채취하는 사람도, 경운기도 없었다. 이유를 묻는 질문에 섬 주민들은 “바지락 가격이 너무 낮아 캐면 인건비도 못 뽑는다”고 답했다.
섬으로 들어가자면 반드시 지나야 하는 다리가 있다. 모개섬을 징검다리 삼아 뻘밭 가운데로 난 유두교다. 밀물에 잠겼다가 썰물에 다시 모습을 드러내는 잠수교다. 사리 때는 물론, 센 조금 때도 하루 두 차례씩 다리가 바닷물에 잠기는 탓에 섬은 물때에 따라 섬도 됐다가 육지가 되기를 반복한다. 이 풍광에 끌려 섬에 들어왔다는 펜션 주인 구자경(63)씨는 “많은 섬 방문객이 다리가 물에 잠기는 때를 기다렸다가 사진을 찍는다”며 “유두교가 웅도를 먹여 살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했다. 관광객이 들어오는 통로이자 60여 가구 120여 명의 어민이 잡은 바지락과 굴, 낙지 등 수산물이 팔려나가는 길목이다.
주민들에 따르면 유두교는 과거 바다의 징검다리였다. 그러다가 차량이 다닐 수 있는, 썰물에만 잠시 모습을 드러내는 자갈길 작업로로 확장된 후 2007년쯤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김종운 웅도리 마을 이장은 “다리로 연결돼 육지와 다름없는 섬이지만, 그 다리가 하루 두 차례씩 끊기는 탓에 섬에 사는 맛이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이 묘미도 2025년이면 사라진다. 조회수 4,000만 회를 훌쩍 넘긴 ‘머드맥스’에서도 소외됐던 웅도에 뒤늦게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한 이유다. 지난해 웅도 갯벌생태계 복원사업의 일환으로 폐쇄형의 유두교를 걷어내고 소통형 다리를 설치하기로 결정한 데 이어, 지난달 16일 본격적인 사업을 알리는 착공식이 섬 입구에서 열렸다. 서산시 관계자는 “예전에 잡히던 바지락 양을 100%로 치면, 현재는 60% 수준까지 감소하는 등 갯벌 수산생물 어획량이 크게 감소했다”며 “유두교가 해수의 원활한 소통과 갯벌 퇴적을 막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서산시는 2025년까지 총 250억 원을 투입해 왕복 2차로, 총연장 300m의 해수 소통형 다리를 놓은 뒤 잠수교 철거에 나설 예정이다.
생태계 복원사업의 역설
차량이 교행할 수 있는 크기의 다리가 생긴다는 소식에 들뜰 법도 하지만 섬 주민들의 심정은 복잡하다. 김경태(60) 웅도 어촌계장은 “큰 다리가 생기면 생활이 편해지고, 사람들이 많이 오면 섬에 활기도 돌 것”이라면서도 “난개발로 섬이 파괴되고, 갯벌이 오염되면 그게 무슨 생태복원이냐”고 되물었다.
실제로 곰섬은 다리가 놓인다는 소식 때문에 들썩였다. 각종 공사 자재와 장비를 실은 트럭들이 분주히 섬을 드나들고 있다. 일찌감치 땅을 매입한 육지 사람들이 카페와 펜션을 올리고 있고, 깎아낸 산의 황토가 빗물에 쓸려 내린 곳도 눈에 띄었다.
섬 초입 길가의 한 식당 주인은 “섬에 공사하러 들어오는 인부들이 급증했고, ‘함바집’ 노릇이나 할 요량으로 지난해 5월 문을 열었는데, 요즘엔 관광객들도 더러 와서 밥을 먹는다”고 했다. 한 펜션 주인은 “1박에 20만 원 안팎의 요금을 받는 방 90%가 찼다”고 전했다. 섬을 찾는 이들이 늘고 있고, 이 때문에라도 섬 개발은 더욱 가속화할 것이라는 얘기다.
섬 주민들은 "2년 뒤면 펜션이 마을 전체 집보다 많아질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서너 군데서 펜션 단지 공사가 진행 중이고, 단지마다 20채씩만 지어도 마을 전체 가옥 수를 능가하기 때문이다. 김 이장은 “자기 땅에 자기 건물 올리는 걸 뭐라고 할 수는 없다”면서도 “정화조를 갖췄다고는 하지만, 결국 그 폐수가 갯벌로 흘러들 수밖에 없어 걱정이 많다”고 말했다. 생태계 복원사업으로 다리가 생기고, 그 다리를 타고 더 많은 사람이 섬으로 들어올 수 있지만, 결국 가로림만의 생태계가 망가지는 부작용을 피할 수 없다는 얘기다.
“제2의 원산도 될라…”
우려가 커지면서 인근 태안 원산도를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원산도는 해저터널로 육지와 연결된 뒤 전국에서 몰려든 관광객이 투기한 쓰레기와 오물, 갑작스러운 물 사용 증가에 따른 잦은 단수, 과거엔 상상도 못했던 차량 정체로 몸살을 앓았다. 해저터널 개통 1년이 지났지만 예상과 달리 섬 인구는 되레 줄어들었고, 예기치 않은 문제들만 쌓여가고 있다.
웅도를 찾는 외부인들도 섬 주민들과 같은 걱정을 한다. 다리 완공에 맞춰 섬 도로와 주차장 등 편의시설을 키우고 늘린다는 얘기만 들리는 탓이다. 오토바이로 드라이브 왔다는 엄태운(48)씨는 “전국 곳곳을 다녀봤지만, 조용하고 아기자기한 분위기의 웅도 같은 섬은 흔하지 않다”며 “정화조 설치와 같은 환경 보존 문제에 당국이 큰 관심을 두지 않는 것 같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웅도를 끼고 있는 가로림만은 2016년 해양생물보호구역으로 처음 지정됐다. 이후 점박이물범 등 해양생물 서식지와 산란지 보호, 수산생물 서식지 보호를 목적으로 2019년 지정 지역이 확대됐다. 서산시 및 태안군 가로림만 해역 92㎢에 이른다. 웅도의 변신은 기대되면서도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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