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뱅크데믹은 또 온다···느리지만 강하게

입력
2023.04.07 04:30
26면
0 0
지난달 28일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트레이더들이 모니터를 응시하고 있는 모습. AFP 연합뉴스

지난달 28일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트레이더들이 모니터를 응시하고 있는 모습. AFP 연합뉴스

지난달 망하지 않았으면 평생 이름 한 번 들어보기 힘들었을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총 자산의 절반 이상을 미 국채 투자에 몰빵했다가→예금 인출 압박에 시달려 헐값에 이를 팔더니→부실한 곳간이 들통나→55조 원 규모의 뱅크런(대규모 예금인출 사태)으로→위기 발생 이틀 만에 초고속 파산한 은행이다. 가장 안전해야 할 은행이, 다른 나라도 아닌 미국의 은행이, 그것도 총 자산이 우리 돈 260조 원대에 달하는 중견은행이 맥없이 부도를 맞았다. 위기를 직감한 글로벌 금융시장의 발작은 당연했다.

망하려면 나라도 망한다지만, 일반 기업과 달리 은행이 망하는 건 차원이 다른 파급력을 가진다. 이런 식이다. 내 돈 맡긴 은행이 휘청거린다는데 느긋할 사람은 없다. 뱅크런은 불가피하다. 문제는 ①한 번 뱅크런이 발생하면 그 여파가 해당 은행에서 멈추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른 은행 예금자들도 덩달아 공포에 질린다. 멀쩡했던 은행까지 잇따라 휘청대는 이른바 '뱅크데믹(은행과 팬데믹을 합친 말)'이다. ②은행이 망하면 기업은 돈줄이 쩍쩍 마른다. '얼마나 상황이 안 좋길래 은행이 다 무너지냐'는 극도의 불안 심리가 시장을 파고든 결과 ③금융시장을 굴러가게 하는 신뢰(신용)가 깨진다. 반년 전 우리도 '레고랜드 사태' 때 경험했고 경악했던 일이다.

정부가 은행발(發) 위기에 발벗고 나서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은행을 혼자 망하게 내버려두면 너무 큰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걸 알아서다. SVB 사태 직후 미국 정부가 예금 전액 보장을 선언(이후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이 한 발 빼긴 했지만)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자금난에 빠져 허우적대던 167년 역사의 투자은행 크레디트 스위스(CS)도 스위스 정부의 대규모 자금 수혈을 발판 삼아 현지 1위 은행인 UBS에 겨우 팔렸다. 망할 때 망하더라도 '연쇄 부도'는 막자는 절박함이 정부의 등을 떠민다.

SVB 사태 한 달. 그래서 위기는 끝난 걸까. 파도는 잠잠해진 듯하다. 하지만 소위 전문가들은 고개를 가로젓는다. 급한 불은 껐지만 워낙 잔불이 많아 또 다른 위기에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아미트 세루 미 스탠퍼드대 교수는 급격한 금리 인상 여파로 SVB보다 더 큰 자산가치 손실률을 기록 중인 미국 은행이 500여 곳에 달한다는 연구 결과를 최근 내놨다. 미국 전체 은행의 11%에 달하는 규모다. '제2의 SVB'가 수두룩하단 얘기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천천히 시스템을 갉아먹는 '슬로 모션(Slow-Motion)' 위기에 금융계가 대비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수습에 나섰던 '소방수 트리오'의 회고록 '위기의 징조들'(2019)을 다시 꺼내본다. 연방준비제도(Fed)의 14대 의장을 지낸 벤 버냉키, 각각 조지 W.부시와 버락 오바마 정부에서 재무장관을 지낸 헨리 폴슨 주니어와 티머시 가이트너는 "금융위기는 반드시 재발한다"고 경고한다. "금융위기를 막아낼 완전한 예방책은 없다"면서 평화를 위해 전쟁에 대비하듯 "금융 시스템 개혁에 나서야 한다"는 게 최악의 금융위기를 눈앞에서 마주했던 이들의 조언이다. 대내외 악재로 가뜩이나 살얼음판인 한국 금융시장에 주는 메시지가 적지 않다. 언제나 위기는 천천히, 그러나 강하게 세계를 덮친다.

조아름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