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 사망사고에 법원은 집유 남발
법정형 허물고 형량 축소한 양형위
중대재해법 판결에는 달라야 한다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아르바이트로 로프공 일을 하던 대학생 김민수(22·가명)씨. 2021년 9월 8일, 서울 구로구의 아파트 20층에서 외벽 청소를 하다, 줄이 끊어져 사망했다. 사건이 발생한 지 1년 6개월이 넘은 지난달 22일, 이 사건 1심 판결이 나왔다. 산업안전보건법을 위반한 원청 법인에 벌금 1,000만 원이 선고됐고, 원청 현장소장과 하청업체 사업주에겐 각각 징역 6개월과 징역 10개월, 집행유예 2년씩이 선고됐다.
책임자들이 집유로 형을 살지 않으니 민수씨 사망의 실질적 처벌은 벌금 1,000만 원이 전부라고 하겠다. 22세 청년은 줄이 건물 모서리에 반복 접촉하면 마모돼서 끊어질 수 있다는 것을, 추락을 막기 위해 구명줄에 연결된 추락방지대를 착용해야 한다는 것을, 마모를 막기 위한 로프보호대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을까. 그는 제대로 관리도, 교육도 받지도 못한 채 짧은 생을 마쳤다. 서울남부지법 전범식 판사는 “산업재해 예방을 위해 필요한 조치를 게을리했고, 그로 인해 근로자인 피해자가 사망에 이르게 됐다”고, 또 “피고인들이 피해자의 유족들로부터 용서받지도 못했다”고 했다. 그러고 마치 영화의 마지막 반전처럼 “모든 양형조건을 고려했다”며 집행유예와 푼돈에 가까운 벌금을 선고했다.
특이한 사례는 아니다.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산업안전보건범죄 피해 실태 및 특성에 관한 연구)은 건설업 관련 270개 판결문을 분석한 결과, “피해자가 사망한 경우가 약 80%에 달하고 있음에도 높은 집행유예율 및 낮은 벌금액을 선고했다”고 밝혔다. 실형은 11.9%, 집유는 88.1%였다.
지난해 9월, 인천지방법원 오기두 판사는 법원 동료들을 비판했다. 역시 줄이 끊어져 추락사한 29세 로프공 사건에서 “많은 사례에서 이 사건과 같은 산업안전보건범죄에 대해 아주 가벼운 집행유예형이나 벌금형이 선고되고 있다”며 “마땅히 시정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산업현장에서 많은 근로자들이 죽어 나가는 사고를 방지할 수 없게 될 것이다”고 판결문에 적시했다. 오 판사는 현장 책임자에게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한 뒤 법정구속하고, 법인에 8,500만 원의 벌금을 선고했다. 항소심에선 징역 6개월, 벌금 2,500만 원으로 깎였다.
사실 법정형은 높다. 산업안전보건법(167조)은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아 근로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법인에는 10억 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173조)한다. 그런데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안전·보건조치의무위반치사 기본형을 징역 1년~2년 6개월로 제시한다. 감경요소가 적용되면 더 깎인다. 양형위가 명시한 집유 참작사유에는 ‘사회적 유대관계 분명’이라는 황당한 요소도 있다. 친구가 많은 사람은 산재를 저질러도 집유라는 뜻인가.
대법원이 이런 가이드라인을 통해서 중대범죄의 법정형을 사실상 무력화시킨 것을 보면, “위헌적이지 않나”하는 생각마저 든다. 중대재해처벌법이 등장한 이유도 노동자의 사망이 별거 아니라는 듯 ‘집유, 집유, 또 집유’를 선고해온 법원의 역할이 컸다. 사법부가 하도 처벌의 하한을 헐어버리자, 중대재해법(6조)에는 1명 이상 사망 사건에서 아예 ‘1년 이상의 징역(또는 10억 원 이하 벌금· 병과 가능)’이 명시됐다. 그럼에도 6일 법원은 중대재해법이 적용된 첫 사안(산재 사망사건)에 또 집유를 선고했다. 대법원은 아직 중대재해법 양형기준을 마련하지 않았다. 법원은 부디, 노동자들의 잇단 사망에 분개하는 시대의 마음을 읽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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