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YT "한국, 미 압력과 자국 정책 사이서 갈등"
미국 정부가 우크라이나 포탄 우회지원 여부와 관련된 한국 외교안보라인의 기밀 대화 내용을 도·감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미 정부가 구체적인 해명을 내놓지 않는 가운데, 사안의 진위 여부에 따라 정상회담을 앞둔 양국 외교 관계에도 중대 파장이 일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9일(현지시간) 미국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유출된 미국 정부 기밀 문건에는 지난해 말 우크라이나 포탄 우회지원을 우려하는 한국 외교안보라인의 대화 내용이 고스란히 노출됐다. 우선 문건은 미국이 지난해 말 한국에 "포탄을 수출해 달라"고 요청한 시점 이후 정황을 기술했다.
당시 미국의 입장을 확인한 이문희 전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외교비서관은 김성한 전 국가안보실장과의 통화에서 "한국이 미국 요구에 응해 포탄을 미국에 제공할 경우 정부는 미국이 '최종 사용자'가 아니게 될지 걱정해야 하는 난처한 상황에 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한국은 이 문제에 대한 분명한 방침이 서지 않은 상태라 (관련 내용이 언급될) 정상 간 통화를 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도 강조했다.
이 전 비서관은 또 "한국이 (전쟁 중인 국가에) 살상 무기 지원을 하지 않는다는 정책을 어길 수 없으며, (현재로선) 공식적으로 해당 정책을 바꾸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보고했다. 그는 "임기훈 국가안보실 국방비서관이 (살상 무기 지원 정책 변경에 대한) 최종 입장을 3월 2일까지 결정하기로 약속했다"고도 부연했다. 살상 무기 지원 방식을 바꾸는 게 어떻겠느냐는, 사실상의 정책 변경을 제안한 것이다.
이 전 비서관의 말을 들은 김 전 실장은 에둘러 반대의 뜻을 밝혔다. 그는 "윤석열 대통령의 워싱턴 국빈 방문 발표와 우크라이나에 대한 살상 무기 제공 관련 입장 변경 발표가 겹치게 되면 국민은 두 사안 간 거래가 이뤄진 것으로 여길 것"이라고 우려했다. 우크라이나에 살상 무기를 주는 조건으로 한미 정상회담이 성사된 것처럼 비치는 일은 막아야 한다는 취지다.
다만 김 전 실장은 그 해법으로 '폴란드 카드'를 제안했다. 그는 "포탄을 우크라이나에 신속하게 제공하는 것이 미국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이라며 155㎜ 곡사포용 포탄 33만 발을 폴란드에 우회 판매하는 방안을 대안으로 제시한 것이다. 이에 이 전 비서관은 "폴란드를 통해 (한국의) 포탄을 우크라이나에 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동의하면서도 "폴란드가 어떻게 할지 한국이 먼저 검증할 필요가 있다"고 답했다.
둘의 대화가 끝난 뒤인 지난달 7일 한국 정부는 윤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 일정을 확정 발표했다. 현재로선 이들의 우려가 양국 정상회담에 어떤 변수로 작용했고, 최종 조율이 어떻게 됐는지 알 수 없다. 대화의 주체인 두 핵심 외교안보라인이 최근 교체된 데다, 양국 정부 역시 입을 다물고 있기 때문이다.
NYT는 이와 관련, "한국과 관련한 문건을 보면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포탄을 제공하라는 미국의 압력과 전쟁 중인 국가에 무기를 지원하지 않는다는 공식 정책 사이에서 갈등했음을 알 수 있다"고 평가했다.
김 전 실장과 이 전 비서관 간 대화의 정보 출처는 ‘신호 정보 보고(a signals intelligence report·시긴트)’라고 명시돼 있었다고 NYT는 전했다. 미 정보기관이 전화 통화나 전자 메시지 통신을 중간에 가로채는 식으로 한국 정부 내부 논의를 감청 중이었다는 의미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