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소비 감소 대응과 온실가스 감축하려면
지난 30년 ‘쌀 지키기 정책’ 지속 힘들어
쌀 부족 대비와 식량 자급률 높이기 조화를
“여당 민생 특위에서 남아도는 쌀 문제 해결을 위해 ‘밥 한 공기 다 비우기’ 운동을 논의했다”는 국회의원의 말이 웃음거리가 됐다. 야당은 ‘먹방(먹는 방송) 정치냐’라고 논평했다. 야당 양곡법에 대통령 거부권 행사 뒤 내놓은 대안이 고작 이것이냐는 조소일 것이다.
눈을 밖으로 돌리면 사정은 정반대다. 전 세계 쌀 생산량의 90% 이상을 담당하는 아시아 전역에서 쌀 생산이 부진해, 글로벌 쌀 부족 사태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1960년대 후반 이후 1995년까지 아시아 지역에서 진행된 농업 혁명 덕분에 쌀 수확량이 두 배가 늘었다. 하지만 영국 주간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아시아의 연간 쌀 수확 증가율은 1% 미만으로 낮아졌다. 토양 오염과 급격한 도시화·산업화가 주범이다. 결국 합쳐 인구 4억 명이 쌀을 주식으로 하는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은 주요 쌀 수입국이 됐다. 설상가상으로 쌀 수출국 인도 파키스탄 베트남은 기후변화로 인한 홍수와 가뭄 그리고 해수면 상승으로 흉작이 계속돼, 최대 수출국 인도는 수출 금지 조치를 내렸다.
그런데 문제가 쌀 생산량이 아니라 쌀 자체로 옮겨가고 있다. 쌀 위주 식사가 당뇨병과 만성 영양실조를 유발한다는 인식이 동남아시아에서 확산하고, 벼농사가 대량의 온실가스를 발생시킨다는 경고음도 커진다. 벼가 익는 시기 논에 물을 대는 과정에서 논의 토양 속 산소가 줄어들며 메탄가스가 대량으로 발생한다. 우리나라도 농업 분야 온실가스 배출량의 30%가 벼농사에서 나온다. 결국 인도와 인도네시아에서는 쌀 부족 위기에도 쌀 대신 기장 등을 심게 유도하는 등 쌀 감산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한국인은 대대로 “임금은 백성이 하늘이고, 백성은 밥이 하늘”이란 믿음을 지키며 살아왔다. 그 믿음은 오늘날 “정부가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더라도, 쌀농사만큼은 지켜야 한다”로 이어지고 있다. 이는 1993년 ‘우루과이라운드’ 농업협상 체결 이후 줄곧 우리나라 농업정책의 최우선 과제였다. ‘정부의 쌀 의무 매입’을 골자로 한 최근 야당의 양곡법 개정 시도도 같은 맥락에서 추진됐을 것이다.
하지만 지난 30년간의 ‘쌀농사 지키기’ 정책은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 우선 식량 안보에 큰 구멍이 뚫렸다. 식량 자급률은 2017년 52%에서 지난해 44%로 감소했고, 특히 곡물 자급률은 21%에 불과하다. 국내 농업에서 쌀 비중이 지나치게 높은 것이 주요인이다. 쌀 자급률은 84%가 넘지만, 밀은 1%, 콩은 24%에 그친다. 최근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쌀 소비가 주는 대신 대부분 수입하는 콩, 귀리, 수수 등의 수요는 늘고 있다. 게다가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해 논농사 방식 혁신이 시급하다. 화학 비료를 규산질 비료로 교체, 물 사용량 최적화, 메탄 발생 감축을 위한 유기물 관리 등 벼농사 일손과 생산비는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물론 국제적 쌀 부족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에 대비해 미리 쌀 재고를 확보하는 것은 중요하다. 야당이 정부의 쌀 의무 매입을 담은 양곡법 개정안을 재추진하는 과정에서 여야가 적정한 의무 매입 규모를 합의하길 기대한다. 동시에 농업과 농민의 미래를 위해 쌀 생산을 줄이는 정책도 서둘러야 한다. 이미 해결 방법도 있다. 문재인 정부 때 만든 ‘공익직불제’를 통해 쌀 대체 작물이나 친환경 작물에 보조금 지원을 늘리면 된다. 윤석열 정부도 그 예산을 5조 원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줄어드는 쌀 매입 예산을 여기에 더해도 좋을 것이다.
더 이상 밥만 백성의 하늘이 아니다. 귀리빵도, 콩으로 만든 대체육도 모두 백성의 하늘인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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