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침묵을 깬 캠퍼스엔 학생들로 활기를 되찾았다. 낙타가 바늘구멍을 뚫듯 대학에 온 신입생들은 합격소식에 가슴이 벅찼을 것이다. 오리엔테이션이든 어디서든 학생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장밋빛 찬사가 귀에 현란하게 들린다. 수강신청 때부터 전쟁은 다시 시작된다. 듣고 싶은 강의는 3분 만에 마감된다. 시간에 앞서 대기하고 있다가 광클릭을 해야 한다. '마일리지'라고 하여 아파트 청약금 써내듯이 자기 포인트 점수를 많이 써야 광클릭한 학생에게 유리하게 수강권이 배분되는 대학도 있다. 눈치나 촉으로 마우스 클릭을 해야 그나마 조금이라도 얻을 수 있는 생존현실을 느낀다. 고민고민 끝에 수강 정원을 좀 늘려 달라고 메일을 보내도, 침묵으로 일관하는 교수도 많다.
장비교체니 뭐니 이유로 서버가 마비되거나 온라인 오류가 생겨서 광클릭하려고 기다렸는데도 학생들은 컴퓨터 화면 앞에서 초조와 불안의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담당 직원에게 전화해도 계속 통화 중 음성만 들린다. SNS에 떠도는 것은, '담당 직원이 빗발치는 항의 때문에 수화기를 내려놨다'이다.
이토록 수강신청이 하늘의 별 따기이니 이번 학기 듣고 싶은 강의 '한 개도 못 건졌다'는 학생도 적지 않다. 지어낸 얘기가 아니고 실제로 일어난 일들이다. 그것도 이른바 SKY 대학에서. '이게 대학이냐?'라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이러 저런 곡절에 의해서 어떻게든 수강신청 마치고 강의실에 들어가면 또 다른 좌절감이 생긴다. 입시준비 때 요점 위주의 머리에 쏙쏙 들어오는 학원강의에 비하면 형편없다. 도대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을 정도의 강의도 있다.
강의는 그렇다고 치자. 장밋빛 대학생활이라더니 도처에 극심한 경쟁과 좌절이 첩첩산중으로 있다. 취업 걱정으로 이른바 스펙이라는 걸 또 쌓아야 한다기 때문이다. 인기 동아리나 학회(이때 학회는 전문연구자들의 모임이 아니고 학생들 공부모임이다) 가입 자체가 하늘의 별 따기이다. 온갖 머리를 써서 자소서를 써야 하고, 면접까지 한다.
더 큰 문제는 이런 낙타바늘식 관문을 거친 학생도 졸업 후 진로는 절벽 위에 서 있는 것같이 불투명과 불확실 자체라는 것이 선배들의 경험담이다.
이상이 학생들의 눈높이에서 본 대학의 솔직한 현실이다. 문과학생의 현실은 더욱 심각하다. 교수들 입장에서 보면, 학생들 쪽 문제도 크다. 교수 말보다는 온라인상에서 떠도는 정보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재밌고, 부담 없고, 학점 잘 주는 이른바 '꿀강' 때문이다. 싸고 좋은 물건 없듯이, 무엇을 얻으려면 각고의 노력이 필요한 것 아닌가.
어떻든 대학의 본질이 교육이라면, 매 학기 벌어지는 수강신청 문제는 해결해야 된다. 강좌 수도 늘리고, 인기 강의는 대형강의 혹은 분반을 해서라도 수용해야 한다. 전임교수 충원이 어려우면 시간강사라도 대폭 충원해야 한다. 그동안 등록금 동결로 각 대학의 재정이 어려워 강의를 충분히 개설하지 못한 것이 근본적 원인이다. 졸업 이수학점을 낮추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당장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부터 해야 한다. 덧붙이자면, 전산문제로 모든 학생들이 불편을 겪었을 때 취한 대학의 태도가 학생들을 분노케 했다. 대학 측 누구든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미래세대에게 보여줘야 하는 교육자의 모습일 것이다.
거창하게 교육개혁을 외치기 전에, 광클릭으로 학점 채워서 학위증 따는 곳이 되어버린 대학의 현실을 당장 고치지 않으면, 학문의 전당인 상아탑은 무너져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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