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베 엠레 '성격을 팝니다: MBTI의 탄생과 이상한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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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가 변해야 개인도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때로 어설픈 희망을 품기보다 ‘사회 탓’하며 세상을 바꾸기 위한 힘을 비축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민낯들' 등을 써낸 사회학자 오찬호가 4주에 한번 ‘사회 탓이 어때서요?’를 주제로 글을 씁니다.
마이어스-브릭스 유형지표(Myers-Briggs Type Indicator)를 뜻하는 MBTI는 원래 BMTI였다. 이사벨 마이어스는 검사의 시작이었던 어머니(캐서린 브릭스)의 성이 앞에 오길 원했다. 하지만 어머니가 평생을 몰두하고, 딸이 16년간 미국 교육평가원(ETS)으로부터 전문성을 인정받기 위한 노력이 물거품이 되면서 운명은 달라진다. 1975년에 판권을 산 출판사는 대중성을 목표로 내용을 간결하게 수정한다. BM도 '배변활동'(Bowel Movement·바울 무브번트)이 연상된다는 이유로 MB가 된다. 발명자의 손을 떠난 1980년대 이후 MBTI는 하나의 현상이 되었고 한국에는 이력서에 유형을 기재하라는 곳도 있다.
'성격을 팝니다'는 책 부제(MBTI의 탄생과 이상한 역사)로 요약한 주제를 충실히 설명한다. 저자 메르베 엠레는 거의 한 세기에 해당되는 MBTI의 역사를 팩트로 촘촘히 연결해 현상을 추동하는 사회적 힘을 증명한다. MBTI 비판은 비전문적이라는 게 큰 얼개지만 모녀는 죽을 때까지 자신들의 검사가 가볍게 사용되는 걸 경고했다. 어머니는 심리학자 칼 융과 해롤드 머레이와 부단히 소통했고 딸은 결실을 얻고자 동분서주했다. 그만큼 진심이었다는 것인데, 그 열정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1900년대 초 미국은 산업화의 부흥 속에 자녀교육의 목표가 뚜렷해진다. 내 자녀가 관리자가 될 성격인가를 묻는 추임새가 흔해질수록 여성들의 육아부담은 커졌다. 똑똑한 경력단절 여성 캐서린은 똑똑한 엄마가 되고자, 어떤 유형이 인재상인지를 고민했다. 작은 행동 하나에 얌전하냐, 활발하냐 등의 해석이 붙기 시작했다. 캐서린은 자신의 집을 '무한한 육아 실험실'로 부르며 비슷한 처지의 여성들과 바람직한 아이 성격을 찾으려고 지속적으로 토론했다.
MBTI는 전쟁과 냉전시기를 거치며 구체화된다. 당시는 심리검사가 대유행이었는데, 히틀러 심리분석은 늘 언론의 토픽이었고 정보국은 첩보원 선발에 이를 활용해 입이 가벼운 사람을 찾거나 상대 심리유형에 맞추어 정보를 캐내는 방법을 고안했다. 분류라는 목적은 테일러주의에 기반한 기업문화에 안성맞춤이었다. 표면적으로는 직무 적합도를 파악한다는 이유였지만, 노조 할 사람, 공산주의 선호자를 적출하려는 속내가 있었다. 전문성 논란을 떠나 ‘자본가가 좋아하는’ MBTI의 덩치는 커질 수밖에 없었다.
심리검사가 ‘사회와 만나면’ 결과는 오용된다. 책에 인용된 에리히 프롬의 말을 빌리자면 “유쾌, 건전, 적극적, 믿음직, 야심 찬” 등의 용어로 포장되길 원하는 개인들이 늘어난다. 테오도르 아도르노가 괜히 심리검사를 “우리를 서서히 좀먹는 음흉한 술책”이라 비판했겠는가. MBTI는 탐욕이 본능으로 인정받는 대중자본주의와 함께 성장했다. 성공하고 싶으면 자신을 알라는 다그침이 없었다면, 지금처럼 유행도 비판도 없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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