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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주제에" 폭언 퍼붓고 적반하장… 기피 1순위 대민 공무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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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주제에" 폭언 퍼붓고 적반하장… 기피 1순위 대민 공무원들

입력
2023.04.14 10:00
수정
2023.04.14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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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구 안 들어 주면 욕설 예사 “해달라” 생떼
“시장에 이른다” 협박도… 흉기 휘두르기도
폭언·폭행에 정신적 외상 휴직·극단 선택도
민원인 갑질 5만 건… '웨어러블 캠' 도입까지

충북 보은군공무원노동조합은 5일 보은군청 군정홍보실에서 성명서를 통해 공무원을 폭행한 악성 민원인에 대한 엄중 처벌을 촉구하고 있다. 보은= 뉴시스

충북 보은군공무원노동조합은 5일 보은군청 군정홍보실에서 성명서를 통해 공무원을 폭행한 악성 민원인에 대한 엄중 처벌을 촉구하고 있다. 보은= 뉴시스

경기 구리시의 한 행정복지센터에 근무하는 30대 공무원 A씨는 지난달 60대 남성 민원인을 응대하다 황당한 경험을 했다. 위임장 없이 다른 사람 인감증명서 발급이 불가하다고 하자 민원인은 대뜸 욕부터 한 것이다. 그다음은 더 가관이었다. 욕을 한 민원인이 더 큰 소리로 "시장한테 전화해 불친절 공무원으로 조치하라고 얘기하겠다”며 되레 협박을 했기 때문이다. A씨는 "안 되는 행정 업무를 차분하게 설명하면 폭언부터 하면서 '무조건 해 달라'고 생떼를 쓰는 민원인이 적지 않아 대민 부서 근무를 기피하는 동료들이 많다"고 하소연했다.

폭언·폭행 가장 많고 협박에 성희롱도

12일 경기도의 한 행정복지센터 대민 부서 직원들이 민원인들을 상대하고 있다. 이종구

12일 경기도의 한 행정복지센터 대민 부서 직원들이 민원인들을 상대하고 있다. 이종구

지방자치단체 최일선 민원 담당 공무원들을 향한 폭언과 협박이 끊이지 않고 있다. 악성 민원인들의 갑질 행태가 도를 넘으면서 지자체마다 수년째 대응 방안 마련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한계를 보이면서 대민 부서는 지자체 공무원들의 기피 1순위가 되고 있다.

악성 민원인들은 보통 폭언으로 시작해 폭행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다반사다. 세종북부경찰서에 따르면 민원인 B씨는 12일 오후 조치원읍 행정복지센터사무소에서 복지 담당 공무원에게 흉기를 휘둘렀다. 이를 말리던 다른 공무원 2명은 손가락 등을 다쳤다. B씨는 생계·의료비와 주거급여비를 신청했으나 ‘심사 통과가 어려울 것 같다’는 직원 얘기를 듣고 말다툼 끝에 읍사무소를 찾아 폭력을 행사했다. 지난해 12월 경남 창원시청에서는 공무원 C씨가 60대 악성 민원인에게 폭행당해 머리를 다쳤다. 2020년부터 보상금 문제로 민원을 넣으며 시청을 찾아 담당 공무원에게 폭언을 퍼붓다 폭행으로 이어졌다. 지난해 12월 충남 천안시 직산읍 행정복지센터 내에서는 한 민원인이 "여권 사진이 잘못됐다"며 공무원 뺨을 때리는 일도 발생했다.

급기야 극단적 선택을 하는 공무원까지 발생했다. 지난 4일 구리시의 행정복지센터 1년 차 공무원 D씨가 극단적 선택을 해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D씨는 사고 전날 근무지에서 민원인을 상대한 뒤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픽=김문중 기자

그래픽=김문중 기자

공무원을 상대로 한 민원인의 폭언과 폭행 등의 사례는 매년 급증하고 있다. 12일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민원인의 위법 행위는 2019년 3만8,054건에서 2020년 4만6,079건, 2021년 5만1,883건으로 증가했다. 피해 유형은 폭언·욕설이 80%로 가장 많았고, 협박과 폭행, 성희롱 등이 뒤를 이었다.

악성민원인 탓에 정신적 외상(트라우마)을 겪다가 휴직을 하는 공무원도 늘고 있다. 경기 고양시 의 30대 여성 공무원 E씨는 2021년 6월 악성 민원인에게 시달리다 정신과 치료를 위해 1년 2개월을 휴직했다가 지난해 말 업무에 복귀했다. 그는 "50대 여성이 민원인 의자에 앉아 장시간 전화통화를 하길래 ‘전화 좀 끊고 용무를 알려 달라’고 말했다가 '공무원 주제에 뭐라 한다'며 입에 담지 못할 욕설 등 폭언을 10분 넘게 들었다”면서 "하지만 민원인과 부서장까지 저한테 사과를 요구해 결국 원치 않는 휴직을 했다”고 토로했다.

지자체들, 휴대용 영상 장비 등 공무원 보호조치

4일 서울시 관악구청 민원 담당 직원이 악성 민원인으로부터 공무원을 보호하기 위해 도입한 휴대용 영상 촬영 장비 '웨어러블 캠'을 살펴보고 있다.

4일 서울시 관악구청 민원 담당 직원이 악성 민원인으로부터 공무원을 보호하기 위해 도입한 휴대용 영상 촬영 장비 '웨어러블 캠'을 살펴보고 있다.

악성 민원인이 줄지 않으면서 지자체들도 대응 수위를 높이고 있다. 지난달 29일 충북 보은군 보은읍행정복지센터에서는 욕을 하고 담배를 피우는 등 난동을 피우다 이를 말리는 공무원을 폭행한 60대 민원인이 경찰에 체포된 일도 발생했다. 이후 보은군은 악성민원 발생에 대비해 경찰과 합동으로 비상 대응능력 구축을 위한 모의훈련을 실시했다. 악질·고질민원 응대요령에 대한 교육은 이제 전국의 모든 지자체에 필수가 됐다.

첨단 장비도 등장하고 있다. 서울 관악구와 경기 고양시는 민원인의 언어 폭언 등을 기록할 수 있게 음성 녹음과 전·후방 촬영이 가능한 휴대용 영상 촬영 장비인 ‘웨어러블 캠’을 도입했다. 충남 천안시와 경기 양주시 등은 공무원증과 행정전화 등에 녹음 기능을 장착해 운영 중이다. 행안부 관계자는 “공무원들이 안전한 환경에서 민원 업무를 처리할 수 있도록 영상정보처리기기와 호출장치, 안전요원의 배치 등의 대책을 확대 시행할 방침이다”고 말했다.

악성민원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고발 등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장혜진 고양시 공무원노조 위원장은 “도를 넘는 횡포에 대해 경찰 고발 등에 강력한 조치가 뒤따라야 악성 민원 행태에 대한 경각심이 올라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종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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