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반복되는 동해안 대형 산불
고성능 산불진화차 맹활약
전신주 지중화 등 세밀한 대책 필요
매년 봄철에 동해안 지역 대형 산불 피해가 되풀이되고 있다. 11일 발생한 강원 강릉 산불도 건물 100여 채와 임야 379㏊를 잿더미로 만들고 주민 1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동해안은 화재에 취약한 침엽수림이 많고 강한 계절풍이 불어 화재가 났다 하면 크게 번지기 때문에 더 세심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강릉 산불도 양간지풍 탓에 거세져
12일 산림당국과 소방당국 등에 따르면 전날 강릉 산불 현장에 순간풍속 초속 30m에 달하는 강풍이 불었다. 워낙 바람이 거세 주력 자원인 대형(담수량 3,000ℓ) 진화헬기와 초대형(담수량 8,000ℓ) 진화헬기가 뜨지 못하고 발이 묶여 버렸다. 불길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고, 바람을 타고 연기마저 옆으로 누운 형태로 퍼져 진화인력을 투입하기도 어려웠다. 그야말로 속수무책이었다. 산불 발생 6시간이 지난 오후 2시 30분 즈음 바람이 잦아들어 헬기가 가까스로 이륙할 수 있었지만, 얼마 뒤 천둥번개가 치고 비가 내리는 악천후에 다시 철수해야 했다.
이번 강릉 산불처럼 동해안 대형 산불의 가장 큰 원인은 ‘양간지풍(襄杆之風)’ 또는 ‘양강지풍(襄江之風)’이라 불리는 강풍이다. 양간지풍은 ‘양양’과 고성 ‘간성읍’ 사이에, 양강지풍은 ‘양양’과 ‘강릉’ 사이에 부는 국지적 바람을 뜻한다. 봄철 서풍이 태백산맥을 넘어가면 고온ㆍ건조해지고 속도가 빨라져 작은 불씨도 크게 키운다. 불을 부른다는 의미에서 화풍(火風)이라고도 불린다.
실제 강원도산불방지센터에 따르면 1996년부터 지난해까지 도내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 32건 중 30건이 양간지풍이 기승을 부리는 3~5월 발생했다. 2019년 4월 4일 고성 원암면에서 시작된 산불이 속초까지 번져 산림 1,266㏊를 태웠고, 같은 날 강릉 옥계면 산불은 초속 20m 규모 양간지풍을 타고 동해로 번졌다. 지난해 3월에도 60대 남성이 “주민들이 나를 무시한다”는 이유로 방화를 저질러 또다시 강릉과 동해 일대 4,190㏊가 초토화됐다. 무려 축구장 5,868개에 해당하는 면적이다.
전문가들 "기상 영향 덜 받는 장비 도입 필요"
전문가들은 강풍이 잦은 동해안에선 헬기를 이용한 공중 진화에 의존하기보다 기상 여건에 영향을 덜 받는 새로운 진화 장비와 기법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고성능 산불진화차’가 대표적이다. 고성능 산불진화차는 담수량이 3,000ℓ로 기존 진화차보다 3배 많고, 가파른 산길도 오르는 등 험준한 산악 지형에 적합하다. 야간 작업이 어려운 헬기와 달리 밤에도 운용이 가능하다. 산림당국 관계자는 “이번 산불 현장에도 3대가 투입돼 헬기 대신 맹활약했다”고 말했다. 산림청은 이달 안에 동해안 지역에 고성능 산불진화차 6대를 추가 배치할 계획이다.
양간지풍을 막을 수 없는 만큼 산불 발생 요인을 없애는 선제 조치도 필요하다. 이번 산불도 바람에 쓰러진 나무가 전깃줄을 건드려 불꽃이 튄 것이 원인이었다. 불가항력적인 상황으로 보일 수 있지만, 엄연히 따지면 ‘인재’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전력선에 흐르는 전압이 워낙 높아서 불꽃이 튀어 옮겨 붙는 사례가 많다”며 “전신주와 가까이 있는 나무는 미리 제거하거나 장기적으로 전신주를 지중화하는 등 세심한 대책이 아쉽다”고 짚었다.
이영주 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산불도 태풍처럼 불가피한 자연재해라는 측면에서 완벽한 예방은 어렵지만 점화원을 제거하는 등 최소한의 조치는 할 수 있다”며 “진압 인력 전문화와 장비 고도화로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안도 고심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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