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 불통은 남한 길들이기 1단계 전술
전 정권의 물밑 구애는 바람직하지 않아
한미동맹 기반, 대형 도발에 대응해야
북한이 남북 통신선 전화기를 꺼 놓고 고체연료를 사용한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8형'을 시험 발사했다. 북한이 남북 공동연락사무소와 군 통신선 정기 통화에 응답하지 않고 있다. 사실 아침저녁 남북 전화 통화는 의례적이다. 전화 통화를 했다고 해서 북한이 도발을 안 하는 것도 아니고 통화를 안 한다고 해서 반드시 도발이 있는 것도 아니다.
연락 채널은 남북한 간에 상징적인 수단이나, 서울과 평양의 전화 통화에 대한 관념은 서로 동상이몽이다. 남측은 연락 채널을 우발적 상황 방지 등을 위한 소통 채널로 간주해 왔다. 반면 북한은 대남정책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바로미터로 활용해 왔다. 남한은 전화 통화가 없으면 불안하고 북한의 도발을 우려한다. 북한은 대남 주도권 확보 차원에서 전화 수화기를 관리한다.
그동안 북한의 변덕에 따라 연락 채널은 연결과 단절을 반복했다. 평양이 남북관계에 긴장을 조성할 때면, 연락 채널 단절이 그 시작이었다. 국면전환의 신호탄으로 먼저 연락 채널을 복원하는 등 시그널로 활용했다. 연락 채널은 서울의 보수, 진보 정부에 반드시 도식적으로 적용되지는 않는다. 진보 정부에서 단절되기도 하고 보수 정부에서도 개통되었다.
북한이 가장 최근 연락 채널을 장기간 단절한 것은 2020년 6월이다. 당시 북한은 대북전단 살포에 대한 불만으로 통신선을 끊고 연락사무소 건물을 폭파하며 긴장을 고조시켰다. 2021년 7월 남북 정상 간 친서 교환을 바탕으로 두 가지 북측의 물밑 요구를 수용하여 13개월 만에 연락 채널을 복원했다. 당시 국정원팀은 친서 전달을 내세워 판문점 및 제3국에서 북측의 요구 수용을 약속했다. 그해 8월 박지원 국정원장은 통신선 복원에 대해 "김정은 위원장이 요청한 것"이라고 밝혔다. 문재인 정부 임기가 1년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북한이 차기 정부를 염두에 두고 남북관계를 관리하려는 것 아니냐는 평가도 나왔다.
북한은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에도 남측을 막말 비난하면서도 연락 채널은 유지해 왔다. 이번 연락 채널 단절은 북한이 윤석열 정부의 대북정책 초반 1년을 탐색한 소결론이다. 하긴 우리 대통령에게 인간 자체가 싫다고 막말을 퍼부었으니 꽤 기다린 셈이다. 평양 입장에서는 오는 4월 26일 대북 압박이 심도 있게 논의될 워싱턴 한미정상회담에 급브레이크를 거는 것이 시급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을 둘러싼 한·미·일과 북·중·러의 신냉전 구도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한미 연대를 이완시키는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든든한 중·러를 등에 없고 향후 강 대 강 구도를 예고하는 전조 증세이기도 하다.
하지만 전화선에 연연해하지는 말자. 전화를 받지 않는 변심한 애인을 붙잡기 위한 눈물겨운 노력은 2022년 국방백서에서 주적으로 표기된 북한에는 적절치 않다. 전화 불통은 북한의 남한 길들이기 1단계 전략이다. 숨은 의도를 파악하고 철저한 대응 태세를 갖추는 것이 우선이지 문재인 정부처럼 물밑으로 구애를 하는 자세는 바람직하지 않다. 전화선은 통신수단일 뿐이다. 대화를 거부하는 상대방과는 냉담기를 가질 수밖에 없다. 특히 단기간에 북한이 전화를 받을 가능성도 높지 않은 만큼 북한의 조치에 일비일희할 필요는 없다. 북한의 일방적인 통신선 불통은 스스로 고립을 자초하는 격이다.
다만 북한의 불편한 심사가 도발로 이어질 확률이 높기 때문에 다각도의 대비책 마련이 중요하다. 4월 이후 김여정이 정찰위성 발사를 예고했고 최근 김정은이 전방 군단장을 집결시켜 놓고 타격지점으로 한반도 지도의 평택 미군기지, 서울 및 계룡대 등을 가리켰던 만큼 한미동맹을 토대로 우리 군의 대형 도발 억지와 예상치 못한 기습에 대응하는 노력이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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