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청 집계 음주운전 재범자 단속현황
단속에 2회 이상 걸린 사람 5만1,582명
'7회 이상' 2010년 478명→2021년 977명
상습범도 2~5년 후면 면허 재취득 가능
"음주운전사고를 '사고'라고 부르지 말아주세요. '사고'라는 건, '실수'라는 의미인데, 스스로 술을 마시고 운전대를 잡은 건 실수가 아니잖아요. 오늘 사람을 치지 않고 집에 돌아왔을 뿐이지, 내일도 모레도 술 마시고 운전대를 잡을 거잖아요."
최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와 화제가 된, 음주운전사고 피해 유족이 쓴 글 일부다. 지난해 아버지가 음주운전자가 몰던 차에 치어 세상을 떠났다는 작성자 A씨는 음주운전은 반복성과 고의성이 큰 범죄라고 주장했다. 자신의 아버지를 죽게 한 가해자가 불구속 수사를 받고 있는 데다 현재로선 집행유예를 받을 가능성이 크다면서 "음주운전 사망사고가 언론에 많이 나오면 음주운전자를 강하게 처벌할 것 아니냐, 그래서 음주운전 사고가 날수록 반갑다"고 토로해 많은 이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내기도 했다.
음주운전단속에 7번 이상 걸린 사람 977명
음주운전을 '어쩌다 한 번 의도치 않게 저지른 실수'로 보기 어렵다는 A씨의 주장은 통계로 확인된다. 16일 경찰청 '연도별 음주운전 재범자 단속 실적 현황'에 따르면 7회 이상에 음주운전 단속에 걸린 상습범은 2021년 기준, 977명에 달했다.
음주운전에 2회 이상 걸린 재범 이상자는 5만1,582명으로 집계됐다. 재범률은 44.8%로, 2명 중 1명은 음주운전에 단속되고도 다시 술을 마시고 운전대를 잡았다. 구체적으로는 △2회 2만7,355명 △3회 1만3,278명 △4회 6,150명 △5회 2,636명 △6회 1,186명이었다. 음주운전에 처음 단속된 사람은 6만4,300명이었다.
음주운전 관련 각종 처벌이 강화됐다는 사실이 무색하게 7회 이상 단속에 걸린 상습 음주운전자 숫자는 급증세를 고수했다. 2010년엔 478명이었는데, 2021년엔 두 배 수준에 가까웠다. '운 좋게' 음주운전 단속에 걸리지 않을 수 있었던 상습 음주운전자 숫자를 파악할 방법은 없다.
상습 음주운전자도, 2년 지나면 다시 면허 취득 …해외선 '영구 취득 제한'
문제는 이런 상습 음주운전자들이 일정 기간만 지나면 또다시 면허를 따고 운전대를 잡을 수 있다는 점이다. 도로교통법상 2회 이상 음주운전에 단속된 경우, 사고는 내지 않았다면 2년 동안 운전면허를 취득할 수 없다. 음주운전으로 2회 이상 교통사고를 낸 사람에게는 3년 동안, 음주운전에 뺑소니인 경우라면 그나마 최대 기간인 5년 동안 취득이 제한된다.
해외에선 경우에 따라 상습 음주운전자들의 면허 취득을 일정 기준에 해당한다면 '영원히' 제한한다. 한 번 음주운전을 한 사람은 또다시 음주운전을 하고, 큰 사고를 낼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2018년 국회 입법조사처가 발간한 보고서 '음주운전 처벌에 관한 국제비교・분석 및 시사점'에 따르면 미국, 독일, 호주 등에선 면허 취득을 최대 영구 제한하고 있다. 특히 독일의 경우, 사고를 내지 않았다 하더라도 반복적으로 음주운전으로 적발된 경우, 향후 음주운전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료심리학적 감정서를 제출해야만 운전면허를 다시 딸 수 있다.
한국에서도 이런 제도의 도입 논의는 있었다. 국민권익위원회가 2020년 국민생각함에서 1,85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음주운전 예방 대책 마련 위한 국민 의견수렴 결과'에 따르면 국민 89.2%가 음주운전으로 한 번 단속된 경우, 영원히 취득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데 찬성했다.
그러나 관련 법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송기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19년 발의했던 '도로교통법 일부개정법률안'에는 음주운전으로 사망사고를 낸 경우, 영구히 운전면허 취득을 제한하는 내용이 담겼지만 소관 상임위조차 통과하지 못했다. 당시 논의가 중단됐던 이유는 "무면허 운전자 증가로 이어질 뿐 음주운전을 모두 근절하기는 어렵다", "생계형 운전자에겐 너무 과한 처분이다"는 소관부처인 행정안전부 등의 의견 때문이었다.
이에 음주운전자가 운전석에 앉은 경우, 시동이 걸리지 않도록 하는 '음주운전 방지장치'가 대안으로 논의되기는 했지만 이 역시 답보상태다. 개당 200만 원에 달하는 장치의 구입·설치·유지 비용을 누가 부담하도록 해야 할지에 더해 인권침해 논란까지 제기됐기 때문이다. 다만 1986년 음주운전 방지장치를 도입한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운전자가 장치 비용을 부담하도록 하고 있다.
음주운전 사고 피해자, 2021년 한 해 206명
상습 음주운전자에 대한 제재가 느슨한 사이, 2021년 한 해만 음주운전자가 몰던 차에 치어 숨진 사람은 206명이었다.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수(2,916명)의 10%에 달하는 숫자다. 목숨을 건졌지만 음주운전 차량에 치어 다친 사람은 2만3,653명으로 나타났다. 같은 해 살인사건으로 숨진 사람은 270명이었다.
음주운전자 때문에 가족을 잃었다는 마음 아픈 사연도 반복되고 있다. 1월 20일 인천 서구에선 치킨집 하나 차리는 게 꿈이었던 30대 오토바이 배달원이 신호 대기하던 중, 만취한 의사가 몰던 차량에 치어 숨졌다. 아홉 살 배승아양은 친구들과 함께 8일 대전 서구 한 어린이보호구역을 걷다 등산모임에서 술을 마신 뒤 운전하던 방모(65)씨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9일 경기 하남에선 분식집을 운영하며 세 자녀를 키워오던 40대 가장이 사고 당일 새벽까지 마신 술이 깨지 않은 채 차를 몰던 30대 남성 때문에 목숨을 잃었다.
평범한 하루였던 그날도 가족이 무사히 집에 돌아오리라 의심치 않았기에, 제대로 된 작별인사도 채 나누지 못했던 유족들에겐 너무 갑작스러운 이별이다. 배양의 어머니(49)는 딸의 발인이 있었던 11일 대전을지대병원에서 딸이 아기 때부터 '꿀꿀이'라고 부르며 아끼던 돼지 인형에 얼굴을 파묻고 오열했다. 운구차에 딸의 시신을 실을 때엔 "우리 딸 멀미 많이 해요. 천천히 움직여주세요"라고 해 안타까움을 더하기도 했다. 밝고 꿈 많았던 배양에게 어머니가 해줄 수 있었던 건 대전추모공원 봉안함 유리문에 입을 맞추며 "엄마 다시 올게. 매일 올게. 사랑해"란 말을 남기는 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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