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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골드바 곧 1억"... 장롱 속 돌반지·금목걸이 다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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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골드바 곧 1억"... 장롱 속 돌반지·금목걸이 다 나온다

입력
2023.04.17 04:30
수정
2023.04.17 14:22
2면
0 0

'불안 먹고 자라는' 금값, 역대 최고가
경기 나빠지자 "차익실현" 판매 러시
한국금거래소 한달 매입한 금 600kg
"더 오를까?" 직·간접투자 관심도 ↑

12일 서울 종로구 한국금거래소 종로본점을 방문한 한 시민이 금 거래를 하고 있다. 안다은 인턴기자

12일 서울 종로구 한국금거래소 종로본점을 방문한 한 시민이 금 거래를 하고 있다. 안다은 인턴기자

“금 팔러 왔는데요.”

12일 낮 12시 서울 종로3가의 한 귀금속 매장. 회사원 김모(40)씨가 드러그스토어 쇼핑백을 들어 보이며 시세를 물었다. 점심시간을 쪼개 방문한 듯 목에는 사원증이 걸려 있었다. 쇼핑백 안에 들어있던 건 아기 돌반지 다섯 개와 한 돈(3.75g)짜리 순금 골드바. 175만 원 상당 감정가를 듣더니 흔쾌히 계좌번호를 적는다. 김씨는 “금값이 최고 수준으로 올랐다기에 4년간 간직해온 아이 돌선물을 챙겨왔다”며 “이 돈은 주식 계좌에 넣어 목돈으로 불려줄 예정”이라고 말했다.

정모(26)씨는 이날 오래된 14K(금 함량 58.5%) 금목걸이 두 개를 24만 원에 팔았다. 돌아가신 할머니가 생전 정씨 어머니에게 물려준 장신구다. 정씨는 “유품 정리 중인 어머니 부탁으로 심부름 왔다”면서 “요즘 금값이 많이 올랐다더니 기대보다 좋은 가격에 판 것 같다”고 방긋 웃어 보였다.

한 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매장에는 5분에 한 팀꼴로 손님 발길이 이어졌다. 20대 청년부터 사이 좋은 중년 부부, 중절모를 눌러 쓴 노신사까지 연령대도 다양했다. 대부분 갖고 나온 금목걸이, 반지, 팔찌 등을 조금이라도 비싸게 팔기 위해 발품을 파는 중이라 했다. “예전엔 금값이 오르면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이 골고루 늘었는데, 요즘에는 경기가 나빠서인지 파는 사람만 급격히 는 것 같다”는 게 직원 이야기다. 손님이 빠져 잠시 한가해졌을 땐 매입가를 묻는 전화가 쉴 새 없이 걸려왔다.


12일 서울 종로구 한국금거래소 본사에서 직원들이 매입한 금제품 중량을 확인하고 순도와 종류에 따라 분류하고 있다. 안다은 인턴기자

12일 서울 종로구 한국금거래소 본사에서 직원들이 매입한 금제품 중량을 확인하고 순도와 종류에 따라 분류하고 있다. 안다은 인턴기자


비슷한 시각 인근 한국금거래소 본사에선 전날 사들인 금제품의 검수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국내에서 금제품을 유통하는 이 회사는 전국 각지에 100여 개 가맹점을 운영하고 있는데, 매일 아침 각 매장으로부터 금 매입품을 배송받는다. 행낭에서 제품을 꺼내 하나하나 저울에 달아보고, 순도에 따라 24K(금 함량 99.99%), 18K(75%), 14K 등으로 분류하는 게 본사 직원 일이다.

감정실에 붙어 앉은 직원들이 분주하게 손을 움직이자 플라스틱 도시락통 하나가 금세 돌반지로 가득 채워졌다. 다른 통엔 순금 골드바가, 또 다른 통엔 누군가의 훈장과도 같았을 회사 근속메달, 금배지, 금박 명함 등이 쌓여갔다. 송종길 대표이사는 “3월 16일부터 4월 14일까지 가맹점을 통해 매입한 금 총량이 약 600kg, 액수로 480억 원”이라며 “직원 한 명이 한 시간 안에 끝냈던 작업을 이제는 5명이 5시간을 꼬박 매달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금 유통 시장에 차익 실현용 매물이 쏟아지기 시작한 건 지난달 중순, 금 가격이 치솟기 시작하면서부터다. “금은 불안을 먹고 자란다”는 말 그대로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와 함께 글로벌 금융시장 불안이 커지던 때였다. 한국거래소(KRX)에서 금 1g은 지난달 14일 처음으로 8만 원을 넘어섰고, 고공행진을 이어가 이달 7일엔 역대 최고가인 8만6,330원을 찍었다. 업계에선 금 1kg당 소비자판매가가 종전 최고치인 9,800만 원을 넘어 조만간 1억 원에 도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국내 금값 추이. 그래픽=박구원 기자

국내 금값 추이. 그래픽=박구원 기자

귀금속거리에선 도통 구매 손님을 찾아보기 어렵다며 불황이 불러온 역(逆)골드러시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하지만 자산가들 사이에선 실물 골드바를 찾는 수요가 계속 느는 추세다. KB국민·하나·우리·NH농협은행의 골드바 판매액은 지난해 11월 11억7,168만 원에서 지난달 39억5,424만 원으로 4개월 사이 3배 넘게 급증했다. 이달도 증가세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4월 1~12일까지 판매된 금액만 29억1,656만 원으로 이미 3월 판매액의 73%를 넘어섰다.

추가 상승 기대감에 금을 주식처럼 거래하는 KRX금시장도 뜨거워졌다. 지난달 10일부터 이달 10일까지 한 달간 활동계좌 수가 1만9,958개를 기록, 직전 한 달 대비 53.3%나 급증한 것이다. 시장참가자가 늘자 거래대금도 같은 기간 1,004억 원에서 1,719억 원으로 71.2% 불어났다. 펀드 실적도 준수하다. 14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국내 12개 금펀드(10억 원 이상)의 설정액은 반 년 사이 209억 원 늘었고, 6개월간 평균 21.67% 수익률을 기록 중이다.

금 가격과 함께 움직이는 은값 역시 들썩이고 있다. 한국금거래소에 따르면 살 때 기준 은 한 돈 가격은 지난달 8일 3,740원에서 이달 14일 4,750원으로 27%가량 올랐다. 같은 기간 금 한 돈을 사는 가격이 33만1,000원에서 36만4,000원으로 약 10% 오른 것과 비교하면 상승세가 훨씬 가파르다. 이 업체 창고 한쪽에 매일 10㎏씩 낡은 은괴와 은그릇, 은수저들이 쌓이고 있는 이유다.


12일 서울 종로구 한국금거래소 본사로 매입돼 들어온 은 제품들이 상자 안에 쌓여있다. 안다은 인턴기자

12일 서울 종로구 한국금거래소 본사로 매입돼 들어온 은 제품들이 상자 안에 쌓여있다. 안다은 인턴기자



강유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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