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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컹대는 재생에너지 앞길

입력
2023.04.18 00:0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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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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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철에 접어들면서 태양광 발전량이 급등하자 태양광 발전설비가 집중된 호남지방을 중심으로 태양광 발전제한 조치가 불가피하게 되었다는 뉴스가 나오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주말 등 전력수요가 낮은 시간대에 이 지역의 원자력 발전소들의 출력을 낮추어야 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태양광과 풍력 발전 비중이 20%에 이르는 제주도에서는 이미 수년 전부터 재생에너지 발전기들에 대한 출력제한이 수시로 발생하고 있었는데, 이제 이런 현상이 우리나라 본토에까지 상륙하게 된 것이다. 현재 전체 재생에너지 비율이 발전량 기준으로 9% 정도에 불과하여 2030년까지의 목표인 21.6%에 한참 못 미치는데 벌써 이런 문제가 발생하면서 우리나라 전력부문의 여러 난맥상이 드러나고 있다.

계통에 연결되고 전력시장에 참여하는 각종 발전기들의 권리와 의무를 사전에 명확히 규정해 놓지 않았기 때문에 출력제한으로 소득을 창출할 기회를 잃은 발전사업자들의 불만과 보상 요구가 터져 나오고 있으며, 계통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뒤늦게 재생에너지 발전기들에 적용된 기술적 요구조건들은 소급적용 논란을 낳고 있다. 눈앞의 문제에만 임기응변식으로 대처하는 우리나라의 근시안적 에너지 정책의 소산이다.

제도적 준비 부족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재생에너지를 수용할 수 있는 계통에 대한 투자 부진이다. 호남지방의 출력제한은 결국 잉여전기를 다른 지방으로 보내거나 저장할 수 있는 능력과 비상사태에 대한 계통 대응능력 부족 때문에 발생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계통의 한계를 무시하고 재생에너지를 너무 빨리 보급한 것이 화근이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지만, 재생에너지 목표에 비하면 현재까지의 보급 속도는 너무 빠른 게 아니라 오히려 너무 느리다. 2013년부터 2022년까지 9년 동안 우리나라의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겨우 6%포인트 증가에 그쳤다. 현 정부 들어 2030년의 목표를 대폭 낮추었지만, 이 목표마저도 7년 동안 12%포인트 이상 증가해야 하므로 이제까지보다 두 배 이상 빠른 속도로 나아가야 겨우 달성 가능하다. 그러나 현재의 계통은 이를 감당할 능력이 없어 벌써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버스를 타고 정해진 시간에 목적지에 도달하려면 시속 100㎞로 쉼 없이 달려가야 하는데 버스가 너무 낡아서 70㎞로 달리는 것도 불안한 상황이라면, 버스가 너무 빠르다거나 혹은 너무 느리다고 걱정만 할 게 아니라 한시바삐 버스를 고쳐 제 속도로 가야 한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2030년 재생에너지 목표 달성에 진심이라면 최대한 신속히 계통보강에 착수하여 재생에너지 보급의 병목을 해소해야 한다. 물론 이런 사업에는 대규모 자금이 소요되므로 당장 전기요금 인상 압력과 천문학적 한전 적자에 시달리는 정부로서는 달갑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대안이 없다. 지금 투자를 미루고 있다가 나중에 가서 엄청난 예산을 쏟아부으며 초단기적으로 계통을 보강하고 재생에너지를 늘릴 수도 있겠지만, 미리부터 차근차근 준비하는 것보다 훨씬 비효율적이고 불확실성도 크다. 털털거리는 버스로 가다가 막판에 시간에 쫓기어 총알택시로 갈아타는 것은 돈도 많이 들고 위험도 크다. 그나마 총알택시가 안 잡히면 아예 제시간에 도착 못 할 수도 있다. 계통에 대한 투자가 수반되지 않는 재생에너지 목표는 실현 가능성도, 의지도 없는 공염불에 불과하다.


김영산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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