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숙 지음, '요가 다녀왔습니다'
편집자주
'문송하다'는 말도 있지만, 그래도 마음을 풍요롭게 하는 건 인문학적 교양입니다. '문송'의 세계에서 인문학의 보루로 남은 동네책방 주인들이 독자들에게 한 권의 책을 소개합니다.
나는 소설을 읽지 않는다. 아니, 좋아하지 않는다. 가짜 이야기 같아서 일부러 찾아 읽지 않는다. 하지만 소설가가 쓴 에세이는 완전히 다르다. 유독 편애하는 수준이다. 그런데 마침 또 내가 빠져있는 요가에 대한 에세이라고? 그럼 안 읽을 이유가 없지 않나??
15년 만에 펴내는 신작 에세이 '요가 다녀왔습니다'는 그가 소설 쓰기 외에 가장 오래 해온 일인 요가를 통해 오랫동안 쓰기만 하고 돌보지 못했던 몸과 마음을 응시하고, 함께 요가를 해온 사람들이 남긴 삶에 대한 따뜻한 태도를 담아낸 기록이다. (신경숙, '요가 다녀왔습니다' 중에서)
제목에 끌려 책을 선택했고, 책날개에 적힌 작가 소개 글을 읽어 내려가며 확신했다. 이 책은 나의 요가 생활에, 나의 삶의 태도에 온기를 불어넣어 줄 것이라는 걸.
10년 동안 하이힐에 발을 욱여넣고 드넓은 공항을 휘저었던 생활을 두둑한 퇴직금과 함께 정리하고 무모하게 차린 공간에서의 허우적거림을 멈추기 위해 요가를 시작했다. 자꾸 허우적거려 더 깊은 우울의 늪으로 빠지고 있던 나에게 요가는 썩었는지 단단한지 알 수조차 없는 그냥 유일한 동아줄이었다. 회사 생활만 청산하면 무례한 사람들로부터 해방될 줄 알았는데 이 무슨 순수한 백색 같은 생각이었던가? 숨어 있던 무례 빌런들이 죄다 내 가게로 모인 느낌이었다. 나는 그들의 무례함이 싫었던 만큼 내 예민함이 싫었고, 바닥난 인내심과 통장 잔고도 싫었다. 몸을 움직이면 이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내 예민함은 가시가 되었고, 그 가시는 나와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는 남편이자 파트너를 찔렀다. 그랬던 나에게 '아,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라는 괜한 안도감이 들었던 문장이 있었다.
그가 무슨 말을 걸어오면 앞뒤 맥락 생각지도 않고 대답을 퉁명스럽게 내뱉게 됐다. 내가 말하고도 깜짝 놀라곤 했다. 잠깐만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면 될 일을 "그 말 언제까지 계속할 거야?"라고 쏘아붙이고, 무슨 요청이 담긴 이메일에 대부분 짤막하게 답했는데 그마저도 부정적으로 응했다.
그러니까 내 몸은 스스로를 귀하게 여기지 않고 넘치게 사용하기만 하면서도 휴식과 위로를 주지 않은 나 자신에게 강하게 저항을 해온 것이다. (신경숙, '요가 다녀왔습니다' 중에서)
나도 그랬던 것일까? 저항했던 것일까? 그간 열심히 살았는데 몸을 돌보라고,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라고 서로 다른 자아가 싸웠던 것일까? 비록 내 몸의, 내 마음의, 내 말들의 가시는 바로 스르륵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 달라지고 있다고 나는 느꼈다. 적어도 그의 남편처럼 나의 파트너도 느끼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조심스럽게 해봤다.
그는 내가 요가원에 다니겠다고 했을 때 처음에는 미심쩍어하며 한번 해봐, 하는 반응이었다가 나중에는 매우 반겼다. 내가 요가하는 것을 반기는 이유를 그에게 대놓고 물어보진 않았지만 요가를 시작하고 난 뒤에 내가 상냥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신경숙, '요가 다녀왔습니다' 중에서)
몸을 살피고 마음을 다정하게 바라보기까지 오래 걸렸다. 방치한 시간만큼 보상하고 싶어 부단히 노력했다. 어떤 동작을 잘 해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수련하는 시간만큼은 나에게만 집중하는 노력만 했다. 요가 매트 위에 선 나 자신에게 집중했다. 내 골반이 어떤지, 내 관절 어디가 아픈지 몸에서 나는 소리와 통증을 살폈다. 잡생각 따위가 끼어들 틈을 주지 않았다.
어디 하나 빼놓을 데 없이 나의 몸은 불균형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한 게 나에겐 요가였다. 내 육체의 불균형들을 알아챌 수 있었던 것은 요가를 하는 동안 오로지 내 몸에 집중할 수 있어서였다. 나는 그 집중이 좋았다. 그 집중을 통해 나는 처음으로 방치해두었던 내 몸의 처지를 파악할 수가 있었으니까. (신경숙, '요가 다녀왔습니다' 중에서)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끝나면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방전된 배터리를 완충하고 다시 방전되기 전에 알아차리고 스스로를 돌보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그럴 수 있는 힘이 나에게도, 작가님에게도 생긴 것이다. 실제로 복근은 생기지 않았지만 마음의 근육은 더 단단해지고 있는 중이다. 흔들려도 괜찮을 것 같다. 조금 더디 나아가도 괜찮을 것 같다. 그 길을 먼저 걸었던 작가님이 있으니 나는 그저 괜찮을 것만 같다.
후퇴해도 다시 시작하자는 마음을 얻기까지 꽤 시간이 걸렸다. 나는 알고 있다. 다시 시작해도 나는 앞으로 점점 더 요가 실력이 후퇴하리라는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가를 계속하기로 한다. (중략) 예상대로 되지 않는 것. 지금까지 이렇게 살아왔다고 해서 계속 그렇게 살게 되지 않는 것. 결말을 알지 못한 채 앞으로 나아가보는 것. 이것은 희망이기도 하고 절망이기도 할 것이다. (신경숙, '요가 다녀왔습니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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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정민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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