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일자리가 없다] (3)
장애인 고용 선진국, 독일을 가다
편집자주
'물고기를 주면 한 끼를 먹고 물고기 잡는 법을 알려주면 평생을 산다.' 유대인의 경전 탈무드에 나오는 격언으로, 일자리가 없어 고통받는 장애인에게 절실한 말이다. 장애인이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가려면 1회성 지원보다 장기적 일자리 대책이 시급하다. 이에 한국일보는 장애인의 부족한 일자리 문제와 해법을 매주 목요일마다 총 4회에 걸쳐 '장애인, 일자리가 없다' 시리즈로 짚어본다.
"일하는 게 좋아요!"
독일 수도 베를린의 박물관 '훔볼트포럼' 안에 있는 식당 '레벤스벨튼'에서 일하는 호메오 마사무나(21)는 이렇게 말하며 활짝 웃었다. 타인과의 교류 등에 어려움을 겪어 장애 판정을 받은 그는 장애인 직원으로 채용됐다.
"장애는 업무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10일(현지시간) 만난 호메오와 고용주는 입 모아 말했다. 호메오는 온종일 손님이 끊이지 않는 식당에서 요리, 손님 응대, 계산을 두루 담당하는 '만능 직원'이다. 취업한 뒤 성격이 밝아져 "손님에게 가장 친절한 직원"으로도 통한다.
장애인 고용 기준 높은 독일… 성과도 '우수'
독일은 '장애인 고용 선진국'이다. 장애인 고용권이 잘 보장돼 호메오처럼 '일할 자유'를 누리는 장애인이 많다.
독일 사회는 장애인 고용을 제도로 촉진한다. '중증장애인 의무고용률'을 보면, '상시 근무자 20인' 이상을 두고 있는 사업주는 5%를 중증장애인으로 채워야 한다. 한국은 '상시 50인 이상'을 고용한 사업주에게 3%(민간 3.1%, 공공 3.6%)대의 고용 의무만 지운다.
독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장애인 고용 의무 사업장의 장애인 고용률은 목표치에 미달하는 4.6%다. 정부는 목표 달성 방안을 끊임없이 고민한다. 의무고용률을 채우지 못한 사업주는 '장애인 고용부담금'을 벌금 격으로 내야 하는데, 이를 1명당 140~360유로(약 20만~52만 원)에서 720유로(약 104만 원)까지 올리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무엇보다 독일은 구직부터 퇴직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장애인들이 불편하고 부당한 일을 겪지 않도록 제도를 '촘촘하게' 설계했다. 한국일보는 20일 제43회 장애인의 날을 맞아 독일의 촘촘한 제도를 레벤스벨튼의 모범 사례를 통해 살펴봤다.
구직 땐 '매칭' 서비스, 취업 후엔 '전담 직원'이 관리
레벤스벨튼 직원 60여 명 중 20여 명은 장애인이다. 13년째 이곳에서 일하고 있는 관리책임자 겸 수석요리사 슈테판 니게만(57)은 "자폐, 간질, 청각·언어 장애 등 여러 장애를 가진 이들이 함께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수학교 소개로 고용되는 직원이 많다. 호메오도 그렇게 취업했다. 독일에서는 사업장과 특수학교의 고용 연계 프로그램이 활발히 운영되고 있다. 슈테판은 "특수학교에서 학생들이 어떤 직종, 직무에 적합한지 확인하는 덕분에 취업 지망생의 특징, 성향 등을 알아보는 데 있어 사업주의 부담은 크지 않다"고 말했다.
레벤스벨튼에서는 고용을 최종 결정하기 전에 현장 실습을 실시한다. 사업주는 실습을 통해 장애인 고용에 대한 오해를 내려놓을 수 있다. 슈테판은 "현장 실습은 지원자를 거르기 위한 제도가 아니라, 적합한 직무에 배치하기 위한 제도"라고 말했다. 현장 실습 비용은 정부가 부담한다.
레벤스벨튼은 장애인 직원들을 별도로 관리한다. 신체적, 정신적 도움이 필요한 직원들을 세심하게 지원하기 위해서다. 슈테판은 "최소 일주일에 한 번 개별 면담을 진행한다"며 "면담이라고는 하지만 특별할 것은 없고 '생활하는 데 지장이 없는지' 등을 묻는다"고 했다.
미고용 업체가 낸 돈, 장애인 고용 활성화에 투자
레벤스벨튼은 장애인 직원 고용 과정을 전담하는 직원을 따로 뒀다. 로사 윙글스(38)가 담당한다. 로사는 "누군가 '일이 안 맞는다'고 하면 다른 업무로 배치하고, '근무 시간이 길다'고 하면 이를 조정한다"고 했다.
로사와 같은 보직을 따로 둘 수 있는 건 정부의 인건비 지원 덕분이다. 슈테판은 "로사가 입사한 이후 레벤스벨튼이 장애인 직원을 고용하는 게 더욱 수월해졌고, 우리는 점점 더 많은 이들과 일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레벤스벨튼은 장애인 4명을 추가 채용할 계획이다.
정부가 레벤스벨튼에 주는 로사의 인건비는 장애인 고용부담금에서 왔다. 장애인 고용 의무를 다하지 않은 사업주에게 벌금을 물리고 끝나는 게 아니라 벌금을 장애인 고용 친화적 사업장을 늘리는 데 적극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고용부담금은 특수 컴퓨터 등 물품 구비, 휠체어 설치 등 건물 보수에도 투입된다. 장애인 관련 비영리단체 '액션맨쉬' 직원 다그마 그레스캄프는 "부담금은 '장애인과 공존하는 삶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사회적 합의를 뜻한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모범 기업들에 매년 시상… "해보면, 어려울 것 없다"
독일 정부는 장애인 고용을 독려하는 제도를 늘려가고 있다. 연방·지방 정부에서 매년 모범 사업장을 선정해 '포용상'을 주는 게 대표적이다. 이는 다른 사업장에 자극제가 된다. 2020년 포용상을 받은 자동차 회사 메르세데스-벤츠그룹은 "회사 내에 '포용 대표'를 두고 장애인 직원의 권익을 살피고, 직원들이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개별적인 지원을 한다"고 했다.
이러한 캠페인을 하는 건 장애인 고용률을 높이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 '장애인을 고용하는 건 번거롭고 까다롭다'는 편견이기 때문이다. 독일 연방사회부는 "모든 장애가 직장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중증장애인도 회사로부터 어떤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장애인 직원은 회사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강조한다. 다그마는 "장애인은 비장애인이 못 보는 면을 볼 수 있기 때문에 기업의 다양성, 창의성 확보에 도움이 되고, 삶의 여러 장벽을 극복하는 데 훈련이 되어 있으므로 해결 방법을 제시하는 데 능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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