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봉 울산 동구 북경반점 사장
짜장·짬뽕·탕수육 세트 만원
"인건비 줄이고 배달 안 해"
"빈손으로 시작해 이만큼 가졌으면 됐죠. 가격을 더 올릴 이유가 없습니다."
짜장면 2,000원, 짬뽕 3,000원, 1인 탕수육 5,000원.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다 합쳐도 만 원 한 장이면 충분하기 때문이다. 2023년에 가능한 얘기일까. 울산 동구 화정동 중화요리 식당 북경반점의 실제 메뉴판 가격이다. “월급과 자식 성적만 빼고 다 오른다”는 우스갯소리가 절로 나오는 고물가시대에 12년 전 가격을 그대로 받는 식당이 있어 화제다.
18일 만난 북경반점 사장 최재봉(53)씨는 “제 건물이라 임대료 부담이 없고, 배달도 하지 않는다”며 “보통 주방장이나 주방보조 월급이 400~500만 원인데 대부분 일을 아내와 둘이서 하니 인건비 부담도 없다”고 했다. 고정비의 최소화가 저렴한 가격의 비결이라는 얘기다.
최씨가 지금의 자리에 가게를 연 건 2012년. 개업 때부터 짜장면을 2,000원에 팔았으니 12년째다. 오가는 손님은 하루 300여 명. 인근 대학교 학생이나 노인, 택배기사 등이 주요 고객이다. 요리도 깐풍육과 팔보채 중(中)자가 각각 1만5,000원, 2만 원으로 일반 중화요리 식당의 절반 수준이다. 하지만 고객의 80%는 가장 저렴한 짜장면이나 짬뽕을 주문한다. 최씨는 “90세가 넘은 어르신도 매일같이 여기서 한 끼를 해결하신다”며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못한 분들을 위해 처음부터 싸게 팔려고 개업한 가게”라고 말했다.
저렴한 가격에 맞추기 위해 싼 식재료를 쓰지는 않는다. 양파와 대파, 당근 등 야채는 물론 오징어와 홍합, 새우 등 해물까지 모든 식재료는 국내산만 사용한다. 고춧가루도 중국산이 아닌, 경북 의성에서 직접 공수해 올 정도로 신경 쓴다. 이쯤 되면 남는 게 있을까 싶지만 최씨는 “자선사업가도 아닌데 굶으면서 싸게 팔겠느냐”며 “하루 정해놓은 일정 매상만 넘으면 적자는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저렴한 가격으로 식당을 운영하는 데는 고등학교 동창인 아내 서은화(53)씨 도움이 컸다. 1971년 경북 경산에서 태어난 최씨는 8남매 중 막내로 고등학교 때까지 초가집에서 살았다. 최씨는 "당시 고향 경북 경산에서 초가집에 사는 사람은 우리 가족밖에 없었는데 나무껍질을 벗겨 먹을 정도로 가난했다”며 "집에 놀러 온 친구가 민속촌인 줄 알았을 정도”라고 어려웠던 유년 시절을 회상했다. 대학 졸업 직후인 1994년 전공인 금속 관련 일자리를 구하지 않고 중국요리 실력을 익힌 것도 빨리 성공하고 싶어서였다. 외식이라면 열에 아홉은 짜장면, 치킨이던 시절이었고, 실제 친형도 중국요리 식당을 열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최씨는 “아내랑 5년을 일해서 모은 돈으로 처음 가게를 열 때 살 집과 먹을 음식, 약간의 여윳돈만 생기면 절대 더 욕심부리지 않겠다고 스스로 다짐했다”며 “아내 입장에선 이제 좀 살 만한데 무슨 소리냐고 할 법도 한데, 단 한 번도 불평한 적이 없다”고 고마워했다.
최씨 부부는 매일 아침 7시에 일어나 새벽 2시까지 일한다. 한 달에 휴무일은 한 번이다. 이마저도 1년 전부터다. 그전에는 1년에 설‧추석 명절과 여름휴가 3일이 휴일의 전부였다. 해외여행 경험은커녕 흔한 승용차도 없다. 부지런히 일하고, 조금이라도 아껴 손님 주머니 부담을 어떻게든 덜어 보겠다는 생각에서다.
그래서 지난해 15kg 한 망에 만 원 하던 양파가 올해 2만9,000원에 들어오고, 가스비와 밀가루 가격도 올랐지만 가격 인상은 생각도 않고 있다. 최씨는 “양파값이 내린다고 짜장면값을 내리는 것도 아니지 않느냐. 이윤이 10원에서 1원으로 줄면 더 열심히 해서 아홉 그릇을 추가로 팔겠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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