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2022년 정치후원금 사용내역 분석
국힘, 상임위 기탁금 500만 원… 사실상 경선 없어
동료 의원·선거 나선 후보에 '품앗이 후원' 여전
렌터카 인수비·개인 차량 보험료 냈다 벌금도
정치후원금은 정치자금법에 따라 유권자가 기부하는 정치자금이다. 현행법상 국회의원은 지지자들로부터 연간 최대 1억5,000만 원(선거가 있는 해에는 3억 원)의 후원금을 받아 정치 활동에 쓸 수 있다.
후원금의 사용처는 당연히 정치 관련 활동이 대상이다. 대체로 지역사무실 운영이나 간담회 개최 등의 정치 활동에 사용한다. 문제는 정치 활동과 사적 영역의 경계가 모호해 정당한 지출인지 따지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정치자금법에는 국민들의 의혹을 사지 않도록 해야 하고, 사적 경비로 부정한 용도로 지출돼서는 안 된다는 조항만 있다. 정치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차원이다.
과연 정치후원금은 제대로 쓰이고 있는 걸까. 한국일보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받은 국회의원 299명의 2022년도 정치자금 수입·지출보고서를 분석했다. 그 결과 선관위가 후원금 사용의 자율을 강조하는 분위기를 악용한 꼼수가 적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5년간 정치자금 사적 사용 적발 건수를 보면 2021년 18건에서 2022년 90건으로 5배나 늘었다. 선관위도 문제점을 인식하고 후원금 내역을 공개해 사회적 감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을 추진 중이다.
상임위원장· 당직 기탁금… '감툿값'에 써도 되나
가장 논란이 되는 지점은 의원들이 상임위원장이나 당직을 맡을 때 소속 정당에 내는 기탁금 내지 특별당비다. 현행 규정상 불법은 아니지만, 국회의원 개인을 향한 후원금이 과도하게 당으로 흘러가는 것 아니냐는 뒷말이 나온다.
가령 김도읍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해 7월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에 도전하면서 특별당비 500만 원을 자신의 후원금으로 냈다. 지난해 12월 상임위원장에 도전한 김태호(외교통일위), 윤영석(기획재정위) 의원도 후보 등록을 위해 500만 원을 후원금에서 냈다. 세 사람 모두 단독 입후보해 별도의 선출 절차는 없었다. 당내 조율로 선거운동 없이 내정되는 상임위원장 같은 자리를 차지하고 내는 '감툿값'에 후원금을 써도 되느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김도읍 의원실 관계자는 "후원금으로 상임위원장 기탁금을 내도 되는지 확인을 거쳤다"며 "국회에서 직책을 맡는것과 관련한 정치활동"이라고 설명했다.
품앗이 후원… 민주당 46명 이정근 후원
후원금에 여유가 있으면 부족한 의원들에게 '품앗이'하는 관행도 후원금 목적에 부합하는지를 놓고 이견이 적지 않다.
눈에 띄는 건 최근 민주당 돈봉투 사건의 진원지로 알려져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이정근 전 민주당 사무부총장이다. 지난해 3월 서초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했던 이씨는 민주당 의원 46명으로부터 총 4,400만 원을 후원받았다. 의원들은 이씨에게 적게는 30만 원부터 많게는 300만 원까지 후원한 것으로 나타났다. 모두 자신들의 후원금에서 지출했다. 이씨는 송영길 전 대표의 각별한 신임을 받고 있는 최측근 인사였던 만큼 인사치레 내지 보험용일 가능성이 높다. 자기 돈이었다면 무명의 신인에게 이렇게 쉽게 지갑을 열었겠느냐는 평가가 나온다.
현역 의원끼리 '품앗이' 후원하는 관행도 곳곳에서 확인된다. 최영희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해 말 같은 당 김성원, 송언석, 배현진, 이용호 의원에게 각각 100만 원씩 후원했다. 인재근 민주당 의원은 이인영, 김민기 의원에게 300만 원씩 쾌척했다. 지난해 재보궐선거를 통해 국회에 입성한 최재형, 안철수, 조은희 국민의힘 의원과 김한규 민주당 의원도 선거 과정에서 다른 의원들의 후원을 받았다. 정치적 지향이 같은 동료를 후원하는 것도 정치 활동이라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기부자 입장에선 자신이 낸 후원금이 엉뚱한 사람의 정치 활동에 사용되는 셈이다.
미용실·자기계발 '사적 사용' 따지지만… 선관위 "일일이 규정 어려워"
사용처 자체가 사적 용도라는 의심을 낳게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가령 미용실에서 후원금을 사용한 의원은 모두 3명이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미용실에서 43회에 걸쳐 630만 원을 결제했다. 국회에서는 매달 말 31만~56만 원을 결제했고, 지역 일정이 있는 날이면 해당 지역 미용실을 이용했다. 최재형 국민의힘 의원도 지난해 4월 미용실에 110만 원을 결제했고, 이재명 민주당 대표 역시 지난해 7월 미용실에서 헤어 스타일링을 받으며 7만 원을 결제했다.
김 대표 측은 "아침 방송 출연이나 오전 인터뷰 등 이른 시간에 행사를 진행한 경우가 많아 국회 미용실에서 머리 손질, 메이크업 등을 했고, 전당대회 준비를 하면서 외부 행사 빈도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최 의원과 이 대표도 지출 내역서에 각각 '방송출연 및 각종 인터뷰 메이크업' '출마 기자회견'이라고 적었다.
선관위가 배포한 ‘정치자금 회계실무’ 매뉴얼에 따르면 이발소나 미용실 이용, 옷이나 구두, 안경 구입 등은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데 소요되는 비용'으로 분류돼 사용이 제한된다. 만약 후원금으로 내려면 정치 활동과 직접적인 연관관계를 입증해야 한다. 세 사람 모두 이·미용실 이용이 정치 활동과 전혀 관련이 없다고 보긴 어렵다. 하지만 다른 의원들도 방송 출연이나 인터뷰, 연설 기회가 많은 것은 마찬가지여서, 형평성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정치자금 회계실무 매뉴얼에 따르면 대학교 최고위과정 등록비 등 자기계발비도 정치 활동 관련성을 입증해야 사용이 가능하다. 스피치 컨설팅 업체에서 두 차례에 걸쳐 130만 원을 사용한 최연숙 국민의힘 의원의 경우 "선관위 확인 후 정치자금을 집행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다른 의원들은 정치 관련성을 따지기 애매한 경우가 적지 않다. 강선우 민주당 의원은 서울대 환경대학원 도시환경미래전략과정을, 윤영석 국민의힘 의원은 서울대 미래융합기술 최고위과정을 수강하면서 각각 400만 원씩 지출했다. 민주당 의원 10여 명은 '김대중 정치학교'를 수강하며 150만 원씩 내기도 했다. 바쁜 의정 활동을 하는 현역 의원들이 해당 과정을 제대로 이수했는지는 검증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밖에도 직원 식대를 간담회비 명목을 붙여 쓰거나 의정활동용 숙소 임차료를 후원금으로 내면서 가족이 쓰는 경우, 국회사무처에 등록된 보좌진에게 격려금으로 보기 어려운 수준의 상여금을 주는 경우 등도 대표적인 사적 사용 사례다. 차량 운행 중 발생한 과태료나 사무실 관리비 등을 늦게 내 발생한 연체료 등도 사적 지출에 해당한다. 선관위 관계자는 "연체료는 제때 냈다면 쓰지 않아도 되는 불필요한 지출이기 때문에 사적 지출로 보고 규제한다"며 "담당자가 정치자금으로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아 주요 지적사항이 된다"고 설명했다.
김승희 '렌터카 인수' 벌금 300만 원… 동문회비·화환도 사적 지출
2018년 이후 5년간 선관위가 정치자금 사적 사용을 적발한 사례는 총 264건이다. 지난해에는 90건이 적발됐다. 대표적인 적발 사례는 지난해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수사의뢰된 김승희 전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의원이다. 김 전 의원은 의정 활동 목적으로 쓰던 렌터카를 인수하면서 정치자금으로 이미 냈던 보증금 1,857만 원을 제외한 차액만 지불했다. 남편 차 수리비 352만 원을 정치자금으로 처리하기도 했다.
김 전 의원은 지난 2017년에는 의원실에서 별도로 채용한 직원의 근로자 부담분 연금보험료를 정치자금으로 지불했던 사실도 적발됐다. 그는 “회계 실무자 실수”라며 뒤늦게 렌터카 보증금 등을 반납했지만 법원은 1심에서 김 전 의원에게 벌금 300만 원을 선고했다.
선관위가 부정한 지출이라고 판단한 경우에는 돈을 반납하고 회계보고서에도 반영해야 한다. 송석준 국민의힘 의원은 2021년 2월 대학원 동문회비 20만 원을 후원금으로 냈다 적발돼 지난해 반납했다. 선관위는 향우회나 동창회, 종친회, 동호회 등은 개인 간 사적 모임으로 보고 정치자금으로 회비를 지출하는 것을 금지한다. 지난해 말 같은 당 김선교 의원도 동문회비를 지출한 만큼 선관위 규정상 반납 대상이다.
민주당 김병욱 의원과 서영석 의원은 과거 보낸 화환 일부가 선관위로부터 부정지출 판단을 받아 개인 자금으로 이를 채웠다. 정운천 국민의힘 의원은 의정활동용 휴대폰 통신요금에 음악서비스 이용료가 포함돼 있어, 이를 반납하기도 했다. 선관위 관계자는 "정치자금 사적 사용이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부분이 많지만, 정치 활동 범위를 일일이 법률로 규정할 수는 없어 규제에 어려움이 있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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