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인터넷(IoT), 가상현실(VR), 인공지능(AI)과 같은 소프트웨어 중심 테크산업의 연구개발 지식이 현재의 두 배 수준이 되는 데 걸리는 시간, 즉 '지식의 배가기(knowledge doubling)'는 불과 수개월 정도라는 점에 국내외 전문가 대부분이 동의하고 있다. 전통적 지식의 배가기가 1900년에는 100년, 1945년에는 25년 정도였다고 하니, 현재 속도가 얼마나 대단한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테크산업의 대도약기가 인류 사회에 끼치는 영향에 대한 논의도 활발하다. 지난달 29일, 테슬라 최고경영자 일론 머스크 등 이 분야 선도자들은 AI 연구개발을 6개월간 중단하자고 공개 제안했다. 무한 연구개발 경쟁으로 인공지능이 인류 미래를 예측과 통제가 불가능한 시대로 몰아가고 있기 때문에, 당분간 연구개발을 중지하고 성찰과 문제 해결에 집중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구글의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였던 에릭 슈미트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지난 6일 호주의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6개월 연구개발 유예는 기술 퇴보를 의미하고, 결국 미국 테크산업이 중국에 주도권을 넘겨주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슈미트는 연구개발을 중단 없이 지속하면서도, 기업들이 공동으로 모종의 안전장치, 즉 '가드레일'을 만들 수 있으리라고 봤다. 기업들이 합의에 이르지 못한다면 정부가 관련 지침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통적으로 미국 연방정부와 주 정부는 대학의 기초과학 연구개발을 최고 수준으로 지원하되, 기술혁신과 산업화는 철저히 시장 경쟁에 맡겨 왔다. 그래서 미국 테크산업 경영자들의 연구개발 잠정 중단에 대한 자발적 공동 제안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반면 중국은 국내 산업 간 경쟁을 유도하고, 경쟁의 '챔피언'을 정부가 집중 지원하는 방식의 민간·정부 밀착 협력체계로 이끌어 왔다. 챔피언 기업은 시장에서의 성공과 국익 추구라는 두 가지 목표를 요구받는다.
우리도 다음 세대 먹거리인 기술개발과 산업화 혁신전략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우선, 정부의 기초과학 연구와 교육에 대한 적극적 지원이 절실하다. 기초과학의 산실이 되어야 할 대학 연구시설이 과학고등학교 실험실보다 못하다는 탄식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정부와 기업이 기초과학 시설과 우수 연구인력에 투자하지 않으면, 첨단 과학기술과 산업의 미래는 없다.
한편 획기적 연구개발과 신산업 아이템 출시가 불러올 수 있는 혼돈과 무질서로부터 지켜줄 가드레일은 반드시 필요하다. 이를 위해 기업과 정부의 협업이 필요하다. 테크산업 발전이 야기하는 사회문제에 대한 실천적 처방을 위해 중국식 민·관 밀착모델과는 차원이 다른 협업 모델이 필요하다.
우리 정보통신기술(ICT), 반도체, 배터리, 첨단 자동차 산업은 미래 글로벌 대표 주자로서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받고 있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테크산업 지식의 배가기가 불과 수개월인 시대에, 기업은 기민하고 스마트한 도약을 목표로 연구개발의 속도를 더 끌어 올리는 데 열정을 쏟아야 한다. 한편 기업·정부·학계가 함께 지속가능하고 안전한 가드레일을 구축해, 빠르고 순탄한 연구개발과 혁신의 항로를 열어야 한다. 테크산업 대도약기의 기대에 부응하는 국가산업 경쟁력과 가드레일의 동반 구축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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