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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정부 모두 실패한 '지방대 정책'..."1인당 교육비 서울대 수준으로 높여야"

입력
2023.04.26 04:30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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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개혁 SWOT 보고서]
③위기의 대학, 재도약의 필수조건
인구 감소·수도권 쏠림으로 거점국립대마저 추락
과감한 재정지원·양질의 일자리 없인 대학서열화 극복 못해

편집자주

유보통합부터 대학개혁까지. 정부가 교육의 틀을 다시 짜겠다는 계획을 밝힌 지 100일이 지났습니다. 한국일보는 교육계 전문가 13명에게 이번 정부 교육개혁 정책의 기대효과와 부작용, 위기와 기회 요인(SWOT)을 물었습니다. 공정한 출발선은 가능할지, 잠자는 교실은 일어날지, 대학을 위기에서 구해낼 방법은 무엇일지 5회에 걸쳐 분석합니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3월13일 서울 중구 LW 컨벤션에서 열린 2023년 글로컬위원회 제1차 회의에 참석해 위원들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3월13일 서울 중구 LW 컨벤션에서 열린 2023년 글로컬위원회 제1차 회의에 참석해 위원들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1980년대 부산대, 경북대 등 지방거점국립대는 연고대 수준의 인기를 누렸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부산대는 입시업계에서 서강대·성균관대·한양대와 비슷한 수준으로 평가받으며 '지방의 서울대'라 불렸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은 어떨까. 입시업계 관계자는 "의대 등 일부 학과를 제외하면 서울의 중하위권 대학보다 더 외면받는다"고 말했다. 이투스 교육평가연구소가 강원대, 경북대, 부산대, 전남대, 충남대 5개 지방거점국립대 422개 모집단위의 2020~2022학년도 입시 결과를 분석했더니 46.7%(197개)는 3년 연속 수능 국어·수학·탐구영역 평균 백분위 점수가 하락했다. 단 '지방대 몰락' 속에서도 주목할 부분은 있다. 삼성전자와 연계한 채용조건형 계약학과인 경북대 모바일공학과, 공기업의 지역 인재 채용 쿼터로 취업에 유리한 전남대(한국전력)·경상대(한국토지주택공사) 공대 등은 합격선이 높고 수험생들이 몰린다. '지방 대도시+취업 혜택' 조합이 강력한 유인 동기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1990년대 중반 지방 A시에 문을 연 B대학은 소규모 지방 사립대였지만 전국에서 우수 인재들이 몰렸다. 연구보다 교육에 중점을 두고 학생들을 잘 가르치는 데 집중했고, 글로벌 인재 육성을 목표로 국제교육을 강화하는 등 혁신적 대학 모델을 제시했다. 신생 대학이었지만 연이어 정부 재정지원사업을 따냈고, 이 대학의 성공 스토리는 다큐멘터리로 다뤄질 만큼 주목받았다. 하지만 3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지금 B대학에 대한 평가는 예전만 못하다. 한때 눈부신 성장을 이뤘지만 정체의 늪에 빠졌다는 것이다. 한 언론의 대학평가 결과를 보면 2007년 전국 10위권에서 2008·2009년 20위권으로 밀렸고, 2010년 30위를 마지막으로 순위에서 사라졌다. 교육계에서는 B대학이 성장하지 못한 이유로 '지역 사회와의 괴리'로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내지 못한 점을 꼽는다.

그래픽=송정근 기자

그래픽=송정근 기자


'폐교 땐 지역 소멸'… 지방대 생산 유발효과 기초 지자체 지방세와 맞먹어

대학의 위기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특히 인구 감소에 수도권 대학 쏠림 현상까지 여전해 지방대는 '소멸 위기'를 맞고 있다. 2022년 정원 미달 대학 77곳 중 87%(67곳)가 지방대인 상황에서 2040년 만 18세 인구가 지금의 절반 수준으로 감소하면 정원을 못 채우는 지방대는 폭발적으로 증가할 거란 전망이 나온다.

시장 논리에 따라 신입생을 유치하지 못하는 대학은 퇴출시키는 게 정답일까. 2017년 중부대가 충남 금산군에서 경기 고양시로 이전을 추진할 당시 연구에 따르면 중부대가 이전할 경우 지역의 생산액은 372억 원 감소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는 2016년 금산군의 지방세 수입 374억 원과 맞먹는 규모다. 지방대 폐교가 곧 지역 소멸로 이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지역 주민들이 부실대학 퇴출과 대학 이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다.

이런 상황 때문에 역대 정부는 대학 구조조정과 함께 '지방대 살리기' 정책을 쏟아냈다. 노무현 정부는 2004년 '누리사업'으로 불리는 지방대학 혁신역량 강화 사업을 통해 5년간 약 1조2,000억 원을 투입했고, 박근혜 정부는 2014년 대학특성화(CK)사업·특성화 전문대 육성(SCK)사업, 2016년 프라임 사업(산업 연계 교육 활성화 선도대학)으로 지방대에 약 2조1,000억 원을 지원했다.

하지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 누리사업은 "취업의 질이 향상되지 않았고, 졸업 후 출신 대학 지역에 정주하지 않았다"(남기곤 한밭대 교수), CK·SCK·프라임사업은 "지역사회 수요와 연계되지 않은 학과가 41.4%이며, 수도권보다 지방의 연계비율이 더 낮았다"(2022년 감사원 성과감사)는 평가를 받았다.

그래픽=송정근 기자

그래픽=송정근 기자


"지자체 끌고 정부 밀고" 정책 밑그림에 "대학서열화 반전엔 역부족"

지방대 육성을 고등교육 개혁방안의 한 축으로 삼은 윤석열 정부는, 과거 정책의 허점을 보완한 새로운 지방대 육성 정책을 내놨다. △지방자치단체가 지역발전 계획과 연계해 지역 대학을 지원하는 '지역혁신 중심 대학지원체제(라이즈)' △중앙정부 주도로 혁신 의지를 갖춘 지방대 30곳에 학교당 5년간 1,000억 원을 지원하는 '글로컬 대학 30'을 통해 "지자체가 끌고, 중앙정부가 미는 '지역 맞춤형' 지방대 육성정책을 펼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정부 정책에 높은 점수를 주지 않았다. 한국일보 교육개혁 자문단은 "지자체 중심으로 지역별 산학연 클러스터를 구축·운영할 수 있다"(정제영 이화여대 교수), "지역사회와 유리돼 있던 대학이 지역 문제 해결에 동참하는 계기가 될 것"(배상훈 성균관대 교수)이라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하지만 산적한 선결과제와 예상되는 부작용에 따른 정책 실효성에는 많은 우려를 쏟아냈다.

자문단은 지방대 문제의 가장 큰 원인으로 대학서열화를 꼽았다. 지자체의 낮은 재정자립도, 턱없이 부족한 국고 지원 규모를 근거로 대학서열화가 공고히 유지될 것이라고 봤다. 이를 타파할 방법으로는 정부의 과감한 재정지원이 거론됐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는 "모든 영역에서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격차는 현저하므로, 형식적 지원만으론 수도권 선호를 막을 수 없다"며 "학생 1인당 교육비를 서울대 이상으로 높이고, 등록금 및 기숙사를 무상 제공하는 수준의 지원이 있어야 우수 학생들이 부족한 문화 혜택을 감수하고라도 지방대를 선택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사립대 중 희망하는 대학은 자율형사립고처럼 자율성을 보장하는 자율형사립대를 도입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그래픽=송정근 기자

그래픽=송정근 기자


"지역 활성화 핵심은 좋은 일자리… 수도권 규제 완화와 엇박자"

정부의 의도대로 지방대 지원 강화→우수 인재 유치→지역 취업 유도→정주 인구 증가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려면 반드시 선행돼야 할 것이 '좋은 일자리를 제공할 지방 산업 육성'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전제조건인 지방 산업 육성이 빠졌다. 임희성 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은 "현 정부는 지방대를 육성하겠다고 하면서 수도권 자연보전권역 내 공장 신·증설을 허용하는 등 수도권 규제 완화 방안을 잇따라 추진하고 있다"며 "좋은 일자리가 수도권으로 몰리도록 하면서 지방대에 우수인재를 유치해 지역 기업에 취업하라고 하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김병주 영남대 교수는 "수도권 일자리보다 열등한 지역 기업에 취업하는 조건으로 지방대에 우수 인재를 유치하도록 하는 계획은 당근이 아니라 오히려 정책이 외면받는 역효과를 야기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지방대 육성 정책이 사실상 수도권 대학 정원 확대를 허용한 반도체 인재 양성 정책과 상충된다는 지적(박남기 교수)도 나왔다.

지방대 육성은 5년마다 바뀌는 정부의 생색내기식 정책이 아니라 10~20년에 걸친 장기 프로젝트로 추진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제도가 아닌 5년 후 사라지는 사업으로는 정책의 지속성이 떨어져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고(반상진 전북대 교수), 근본적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권인 대학생 1인당 투입 재정을 끌어올려야 한다(이범 교육평론가)는 것이다.

"지자체장 정치적 판단 배제, 대학은 '제2 창학' 마음가짐 필요"

지방대 육성 정책이 되레 지방대 소멸을 가속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성기선 가톨릭대 교수는 "일부 대학에 집중한 '지방 명문대 만들기' 정책은 폐교 위험에 처한 다수 대학과 이들 대학이 있는 지역의 소멸을 더 부추길 수 있다"며 "지방대 내 서열화를 강화할 뿐"이라고 꼬집었다. 실제로 전국교수연대회의는 지난 18일 기자회견을 열고 "글로컬대학 사업을 포함한 현 정부의 시장만능주의 대학 정책은 필연적으로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고등교육 전반의 공공성을 파괴할 것이며, 학문 생태계를 위협하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배상훈 교수는 "지자체와 대학이 위기의식을 공유해 지자체장은 정치적 판단을 배제하고 대학과 기업이 연대할 수 있도록 조율하며, 대학은 '제2 창학'을 한다는 마음으로 지역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뛰어든다면 동반성장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쇠락한 중공업 도시였던 스웨덴의 말뫼가 말뫼대학을 통해 활력 넘치는 정보기술(IT), 미디어 도시로 재탄생하고, 미국 스탠퍼드대학이 실리콘 밸리 탄생의 자양분이 된 것처럼 한국에서도 성공 사례는 충분히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교육개혁 자문단(가나다 순)

구본창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대안연구소장, 김민희 대구대 교수, 김병주 영남대 교수, 민세진 동국대 교수,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 반상진 전북대 교수, 배상훈 성균관대 교수, 성기선 가톨릭대 교수, 송기창 숙명여대 교수, 이범 교육평론가, 임희성 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 정제영 이화여대 교수, 조상식 동국대 교수


※글 싣는 순서

①공정한 출발선은 가능한가

②잠자는 교실 깨우려면 필요한 것들

③위기의 대학, 재도약의 필수조건

④실효성 있는 인재 양성 정책의 실마리

⑤교육계 뒤흔들 남은 쟁점들

김경준 기자
김종훈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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