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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포와 연인들의 후예들

입력
2023.05.01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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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레스보스 소송

사포의 고향인 그리스 레스보스의 에레소스 해변. 노을이 무척 아름답다고 한다. 위키미디어 커먼스

사포의 고향인 그리스 레스보스의 에레소스 해변. 노을이 무척 아름답다고 한다. 위키미디어 커먼스

“나 장담하건대, 언젠가 다른 시대 누군가는 우리를 기억할 것이다.(Someone, I tell you, in another time will remember us.)”

캐나다 시인 앤 카슨(Anne Carson)이 영어로 옮겨 2002년 출간한 ‘If Not, Winter’에 수록된, 시인 사포(Sappho)의 저 예언 같은 시구는, 2500년이 지난 지금 여성 동성애자를 가리키는 ‘레즈비언(lesbian)’이란 말과 더불어 기억을 넘어 신화의 한 형상이 됐다.

에게해의 그리스 섬 레스보스에서 태어난 사포는 고향에 사설 아카데미를 열어 여성 제자들과 연인처럼 어울리며 그들을 향한 정념과 질투의 감정을 여러 편의 서정시로 표현했다. 사포가 노래한 ‘우리’, 즉 레스보스 섬 에레소스 해변을 거닐며 사랑을 나누던 그들 ‘레즈비언’이 그들의 후예에 의해 성 지향을 가리키는 용어로 차용된 배경이 그러했다.

정교회 국가 그리스 시민 다수는, 사포나 플라톤의 시대와 달리 동성애를 금기시한다. 레스보스의 한 잡지 발행인 겸 보수활동가 드미트리스 람브루 등 시민 3명이 2008년 5월 1일 ‘그리스 게이 레즈비언 연합’이란 단체를 상대로 ‘레즈비언’ 용어 사용 금지 소송을 제기했다. 람브루는 “1924년 옥스퍼드 영어사전에도 레즈비언은 레스보스 섬 주민을 가리키는 단어로 소개됐다”며 “여성 동성애자들에 의해 도용당한 그 말을 되찾기로 했다”고 밝혔다. 성소수자 인권단체들은 소송이 동성애자 혐오의 한 방편이라며 반발했다. 소송을 기점으로 극우 보수단체들의 게이프라이드 행진 방해 등 공세가 악화했다.

아테네 법원은 7월 소송을 기각했다. 법원은 “레즈비언이 섬 주민들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것은 아니므로 그리스와 외국 동성애자 단체가 그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정당하다”며 원고 측에 피고 측 소송 비용 230유로를 대납하라고 판결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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