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 동안 네 명 이상 이탈... 시사교양 인력 '마지막 보루' 무너져
OTT 중심 '다큐형 프로' 유행이 바꾼 미디어 권력 사다리... 예능, 드라마 이어 세 번째 엑소더스 시작되나
MBC와 SBS 등 지상파 방송사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에서 불붙은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열풍에 역풍을 맞고 있다. OTT 등에 콘텐츠를 유통해 빛을 본 지상파 시사교양 제작 인력의 이탈이 잇따르고 있는 것. 그간 지상파는 시사교양 인력의 마지막 보루로 여겨졌지만 최근 6개월 새 상황은 급변했다. 시사교양 PD가 지상파에서 나와 제작사(레이블)를 차려 거꾸로 방송사에 납품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방송가에선 예능, 드라마 PD에 이어 시사교양 PD를 중심으로 지상파의 세 번째 인력 대이동 즉 엑소더스가 벌어지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넷플릭스에서 올 상반기 공개된 '피지컬100'과 '나는 신이다'가 잇따라 인기를 끌고 다큐멘터리형 프로그램이 시장성을 확인받으면서 제작 수요가 부쩍 는 데 따른 전망이다. 요즘 방송가 유행을 들여다보면 다큐멘터리형 콘텐츠의 약진은 두드러진다. 글로벌 및 국내 OTT엔 '국가수사본부'(3월·웨이브)를 비롯해 'MBTI vs 사주'(4월·티빙), '풀카운트'(4월·디즈니플러스) 등 다큐멘터리 프로그램들이 쏟아지고 있다.
26일 MBC 등에 따르면 최근 6개월 동안 지상파 방송사를 떠난 시사교양 PD들은 4명 이상이다.
'피지컬100'을 만든 장호기 MBC 시사교양팀 PD는 10일 퇴직 처리됐다. MBC에서 'PD수첩' 등을 제작했던 그는 퇴사 후 넷플릭스와 '피지컬100' 시즌2 제작 여부를 협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SBS는 시사교양 PD들의 연이은 이탈로 비상이 걸렸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등을 만든 최삼호 PD를 비롯해 '당신이 혹 하는 사이'를 제작한 김규형 PD에 이어 '그것이 알고 싶다' 등을 연출한 박경식 PD가 지난달 SBS를 떠난 것으로 확인됐다. SBS 출신 세 PD들은 새 제작사 스토리웹에 둥지를 틀었다. 이들은 '용인 일가족 살인' 등 미스터리한 사건들을 라디오 드라마 형식으로 푼 '듣고 보니 그럴싸'를 제작해 JTBC에 지난달부터 내보내고 있다. 지상파가 그간 주도권을 쥐고 있었던 시사교양 프로그램 편성 권력이 줄어든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지상파에서 10년 넘게 일한 한 시사교양 PD는 "방송사의 경영난으로 시사교양프로그램에 대한 투자가 예년 같지 않다"며 "제작에 제약이 많은 상황에서 외부에서 투자받을 수 있다면 굳이 지상파에 있어야 할 명분도 없어 회사(지상파)를 떠나는 게 위험하다고만 생각하지는 않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콘텐츠 시장의 이런 변화는 지상파가 추구해야 할 콘텐츠 다양성의 위기로 해석되기도 한다. 한석현 YMCA 시민중계실 실장은 "지상파가 유료채널과 비교해 우위에 있는 게 시사교양"이라며 "그런데 그 분야에 대한 투자가 줄면서 다양한 실험이 이뤄지지 않고 수익성을 위해 OTT에 팔거나 협업하는 사례가 잇따르다 보니 기획과 연출이 자극적으로 흐르는 경향이 있다"고 꼬집었다. 이성민 방송통신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는 "신뢰할 정보 제공이 지상파의 역할이고 유튜브 득세에 대한 반작용으로 그 요구 또한 커지고 있다"며 "시사교양도 드라마처럼 문화산업전문회사 설립 등을 통해 외부 투자 유치를 고민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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