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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후 내다본 교통정책, 우리가 할 수 있나

입력
2023.04.28 04:30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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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학자 조중래 마지막 인터뷰 '시민교통'

조중래ㆍ김상철ㆍ전현우 지음ㆍ빨간소금 발행ㆍ270쪽ㆍ1만8,000원

조중래ㆍ김상철ㆍ전현우 지음ㆍ빨간소금 발행ㆍ270쪽ㆍ1만8,000원

“정부나 전문가가 잘 결정하겠지.” 이렇게 생각하면 오산이다. 교통 정책 얘기다. 심각한 혼잡으로 최근 승객의 호흡곤란 사고가 발생한 김포도시철도. 이태원 참사라는 비극을 겪고서야 문제가 공론화됐다. 1조 원이 넘는 민간투자금과 재정이 투입된 용인 경전철 사업. 2013년 개통 이후 해마다 600억 원 가까운 재정 지원금을 잡아먹는 돈 먹는 하마다. 2017년 개통한 우이신설경전철 역시 매년 100억 원대 적자를 내는 실패한 사업이다.

‘시민 교통’은 우리나라 교통 계획이 왜 이 모양일까를 진단하고 해법을 제시한 책이다. 김상철 공공교통네트워크 정책위원장과 전현우 서울시립대 연구원이 교통학자 고(故) 조중래(70) 명지대 명예교수를 생전에 인터뷰해 썼다. “너무 일상적이어서 문제인지도 몰랐던” 교통 정책, “시민의 공적 경험에서 ‘내가 결정할 수 있는 대상’으로 등장한 적 없었던” 거대 사업의 문제가 눈앞에 실체를 드러낸다.

지난 24일 서울 강서구 김포도시철도(김포골드라인) 김포공항역 출구로 연결된 통로가 시민들로 혼잡하다. 연합뉴스

지난 24일 서울 강서구 김포도시철도(김포골드라인) 김포공항역 출구로 연결된 통로가 시민들로 혼잡하다. 연합뉴스

책의 주장은 간명하다. “교통 환경을 만드는 교통 정책을 민주주의 대상으로 만들어야 한다." 교통 사업을 좌우하는 정치인ㆍ공무원ㆍ전문가 카르텔을 깨고, 교통 사업을 정당화할 때 동원되는 경제성 조사 방법론의 한계를 파악해, 시민이 교통 주권을 되찾자는 얘기다. 경제성 조사 방법론을 논의하는 뒷부분은 다소 전문적인데, 교통 정책 문제를 짚은 앞부분만 읽어도 충분히 흥미롭다.

무엇보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전문가도 교통 수요 예측을 잘 못한다. 사업 전 예비타당성조사ㆍ비용편익분석 등의 경제성 조사를 하긴 한다. 부정확하고 조작도 가능하기에 맹신할 필요는 없다. “설사 ‘경제성이 있다’는 결과가 나와도 ‘경제성이 있다고 보자’는 약속일 뿐이다. 거짓일 수 있지만 참이라고 하자는 사회적 합의해 불과하다.” 저자들은 대안으로 소비자잉여접근법 도입, 사업 데이터의 투명한 공개와 사후 검증을 제안한다.

교통 계획은 시민 편의를 최우선으로 여겨야 한다. 하지만 알다시피, 정치적 이유로 결정되곤 한다.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의 경우가 그렇다. 김문수 전 경기지사가 제안하자 표심을 얻기 위한 지역 국회의원들이 맞장구치며 진행됐다. 이를 견제해야 할 교통 전문가도 "안 된다"는 말이 없다. 정부로부터 연구 용역을 받기 위해서다. 모두 한통속이라는 얘기다.

조중래 전 명지대 교수가 생전 저자들과 인터뷰하는 모습. 조 전 교수는 국내 첫 환경운동단체인 '공해연구회' 창립 멤버다. 우리나라 최초 공해병 소송으로 알려진 '상봉동 진폐증 피해자 박길래씨 사건'을 지원하기도 했다. 1990년대 중반 최초로 서울시의 가구통행실태조사를 실시함으로써 현재 사용되는 가장 대표적인 교통실태조사의 토대를 만들었다. 출판사 제공

조중래 전 명지대 교수가 생전 저자들과 인터뷰하는 모습. 조 전 교수는 국내 첫 환경운동단체인 '공해연구회' 창립 멤버다. 우리나라 최초 공해병 소송으로 알려진 '상봉동 진폐증 피해자 박길래씨 사건'을 지원하기도 했다. 1990년대 중반 최초로 서울시의 가구통행실태조사를 실시함으로써 현재 사용되는 가장 대표적인 교통실태조사의 토대를 만들었다. 출판사 제공

조 교수는 특히 GTX 사업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수도권 시민을 전부 서울로 출근하게 한다는 점에서 국가 균형발전을 부정하는 정책이며, 신생도시에 자립할 기회를 빼앗는 근시안적 정책이다. “도시는 천천히 모양을 갖춰 나가요. 10년, 50년 걸릴지 몰라요. 당장 급하다고 단기적인 처방을 하면 도시는 제대로 형성될 수 없어요.”

인권변호사 고(故) 조영래 변호사의 동생이기도 한 조 교수는 지난해 5월 암으로 별세했다. 그는 사망 전 네 차례에 걸쳐 저자들을 만났다. 투병 중에도 “다른 것은 몰라도 구술 작업은 마치겠다”고 인터뷰를 이어갔다. 저자들은 이렇게 그를 기억했다. “조 선생은 민주주의를 위태롭게 만드는 관료와 전문가의 기득권에 맞서 시민 스스로 힘을 길러야 한다는 신념을 가진 민주주의자였다. 이런 강렬함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이다.”

정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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