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 샤넬 No.5- 첫 번째 이야기
가브리엘 “코코” 샤넬(Gabrielle B. “Coco” Chanel, 1883~1971)의 극적인 삶은 패션계에 미친 그의 영향력만큼이나 유명하다. 불우하게 성장해 유럽 패션·사교계의 히로인으로 우뚝 선 과정, 여성을 비롯한 인간의 근원적 욕망을 깊이 꿰뚫어 보며 시대·사회적으로 변주되는 욕망의 역동을 누구보다 능란하게 성취의 동력으로 활용한 여정은 특별한 각색·연출 없이도 16부작쯤 되는 드라마로, 매 회 극적 긴장을 유지하며 재현될 만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비시 프랑스의 나치 스파이로 활동하고 전후 ‘매국노’라는 심판의 구덩이에서도 살아남아 오늘의 패션 제국을 구축해 냈다.
그의 수많은 삽화 가운데, 불멸의 향수라는 평을 듣는다는 ‘샤넬 No.5’도 있다. 모자에서 의상으로 확장해 가던 그의 패션이 몸을 가려 보여주는 시각의 영역을 넘어 감추어진 몸을 후각으로 드러내는 자리로, 다시 말해 몸이라는 본질 자체로 나아가려던 도전.
조향사 에르네스트 보(Ernest Beaux)에게 그가 던진 주문은 단 한마디 ‘여인의 향기’를 구현하라는 것이었다. 당시 유수의 향수들이 담고자 했던 꽃 향기나 과일 향기가 아닌 몸의 향기. 몸이 욕망하고 몸에 욕망하는, 제1차 세계대전 전후 유럽인이 갈구하던 영혼의 갈증을 해소시켜 줄 향기였다.
그 도발적 주문에 조향사는, 고급 향수라면 천연재료로만 만들어야 한다는 당시의 불문율을 과감히 내던지고 작업대에 화학물질 알데히드를 올렸다. 일설에 의하면 한 조수의 실수로 알데히드가 과하게 첨가돼 만들어진 게, 다섯 번째 샘플 ‘샤넬 No.5’라고 한다. 코코 샤넬은 별 망설임 없이 그 샘플을 선택, 1921년 5월 5일 파리 캉봉 거리 자신의 부티크 패션쇼에서 세상에 소개했다.
“나의 잠옷은 몇 방울의 샤넬 No.5가 전부”라고 했던 1954년의 매릴린 먼로는 샤넬 서사의 가장 탁월한 비평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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